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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검찰 수사, MB까지 갈 수 있을까

등록 2012-03-30 18:48수정 2012-04-18 11:30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대통령 비서·동문 출신 수뇌부
최종석·이영호의 윗선을 잡아라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은 여러모로 워터게이트 사건과 닮았다. 일을 저지른 조직부터 그렇다. 1972년 5월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의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에 침입해 도청을 시도했던 이들의 상당수는 1971년 7월 출범한 백악관 특별조사팀 소속이었다. ‘배관공들’이란 이름의 이 비밀조직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피해망상의 산물이다. 닉슨 쪽은 1968년 대통령선거에서 고전했던 게 베트남전쟁 반대자들과 민권운동가 등 ‘정권의 적들’ 때문이라며, 이들을 감시하는 데 이 조직을 동원했다. ‘배관공들’은 공식 정보기관이 차마 하지 못한 불법 도청 등 온갖 지저분한 일을 도맡았다.

민간인 불법사찰을 벌인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도 이명박 정부의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장애)라는 촛불시위가 끝난 2008년 7월 출범했다. 수천명에 이른다는 사찰 대상의 공통점은 ‘대통령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의심이었던 듯하다.

파문이 다시 불붙게 된 계기도 닮았다. 워터게이트 배관공들은 가택침입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973년 3월23일 선고공판에서 판사는 피고인 중 한 명인 제임스 매코드 2세가 법원에 보낸 편지를 읽었다. 편지는, 백악관이 사건 은폐를 지휘하고 관련자들에게 입을 다물라고 압박했다는 고발이었다. 닉슨 행정부는 전면 재조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불법사찰 사건 재수사도 이 사건으로 기소된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이 대법원 상고심을 앞두고 청와대 관계자들의 입막음 시도를 폭로한 데서 시작됐다.

이런 닮은꼴이 앞으로도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드러난 증거로만 보면 사건 자체는 명백하다. 워터게이트 은폐 공작의 증거가 백악관의 방대한 녹음테이프였던 것처럼, 증거인멸과 입막음 시도도 수십시간의 대화 녹음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전방위 불법사찰도 2만여쪽의 문서로 생생하게 드러났다. 이조차 빙산의 일각이라니, 이젠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다. 수사 자체로만 보면 이만큼 쉬운 사건도 없겠다.

걸림돌은 있다. 닉슨은 자신을 향하던 사건 수사를 막아보겠다고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했다. 특별검사의 임면권자가 바로 수사의 대상이었던 탓이다. 이번 사건도 그런 위험이 있다. 법무·검찰의 수장인 권재진 법무장관은 입막음 시도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 불법사찰의 결과를 보고받았는지, 사건 축소에 관여했는지에 대해 언젠가는 답해야 할 이명박 대통령은 검사 임면권자다. 누구든 칼을 들어 제 몸을 찌르도록 하는 게 쉽지는 않을 터이다.

실제로 수사 왜곡으로 의심할 만한 일도 있다. 은폐 시도를 폭로한 장 전 주무관에 대해 검찰은 압수수색으로 강제수사를 벌였다. ‘불순한 정치적 배후’와 억지로 연결지으려는 시도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그런 일이 필요하다고 수사 검사들은 과연 생각했을까.

정치적 고려도 있었겠다. 총선 선거전은 그제부터 시작됐다. 수사가 아직 초입이긴 하지만, 그래선지 검찰 수사는 매우 조심스럽다. 앞서 검찰은 결정적인 증거가 새로 나왔는데도 고발을 기다리겠다며 재수사 착수를 미적댔다. 정치적으로 폭발력 높은 사안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일까.

검찰의 재수사는 다음주에 기로에 서게 된다. 산더미처럼 나온 움직일 수 없는 증거 앞에서, 2년 전 1차수사처럼 이런저런 눈치를 보며 멈칫거릴지, 혹은 치고 나갈지가 드러날 것이다. 당장의 수사과제는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과 이영호 전 비서관을 넘어 그 ‘윗선’은 어딘지, 장 전 주무관에게 입막음용으로 전달됐다는 1억여원의 출처는 어디인지 등이 될 것이다. 워터게이트 사건도 배관공들이 갖고 있던 수표 추적 결과 닉슨 재선위원회가 나오면서 본격화했다.

새벽 2~3시에야 퇴근한다는 일선 검사들의 수사 의지는 굳다고 한다. 이제 수사가 제대로 될지는 대통령의 비서, 혹은 대학동문 출신인 법무장관·검찰총장·서울중앙지검장 등 수뇌부의 용기에 달렸다. 닉슨의 특별검사 해임에 항의해 사표를 던졌던 당시의 법무장관처럼 직을 거는 각오가 필요하다. 적어도 제동을 걸거나 비틀어 수사를 방해하진 말아야 한다.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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