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윤 국제부 국제뉴스팀 기자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국제부 기자가 국내 대통령선거 기사를 쓸 일은 거의 없는데, 이번에 제가 그 드문 기회를 잡았습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제안한 대선 결선투표제 말입니다. 그거 유럽 담당인 제 ‘구역’ 프랑스에서 반세기 넘게 잘 써먹고 있는 제도입니다. 제 전공이라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토요판 담당자와 에디터를 ‘투트랙’으로 공략한 끝에 지면을 얻는 영광을 쟁취했습니다. 전 사실 ‘친절한 기자’가 아니라 ‘치밀한 기자’입니다!
문 후보 제안에 새누리당이 펄쩍 뛰며 반대하는데, 여당 혹은 우파 또는 보수 쪽에서 반대만 할 일은 아닙니다. 프랑스에서도 1958년 제5공화국 시작과 함께 결선투표제를 도입한 건 바로 우파 민족주의자의 상징 샤를 드골이었어요. 드골을 포함해 5명의 대통령이 우파였고요. 좌파 사회당 소속은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수아 올랑드 2명뿐입니다.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니까요.
결선투표제는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차지한 후보가 없을 때, 1·2위 후보를 대상으로 2차 투표를 실시해 과반수 이상 득표한 후보를 뽑는 제도예요. 핀란드, 루마니아, 포르투갈, 브라질, 에콰도르, 러시아에서도 시행하고 있죠. 중남미와 동북유럽의 과거 권위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로 이행하면서 많이 채택했어요. 아르헨티나처럼 경우에 따라 과반 대신 40~45%를 기준으로 하는 나라도 있답니다. 그런데 왜 선거를 두번이나 하느냐고요? 정파적 유불리를 떠나 민주주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구석이 많은 ‘똘똘한’ 제도이기 때문이지요.
선거 제도는 가능한 한 많은 유권자의 의사가 최대한 정확히 반영되는 것이 좋습니다. 결선투표제를 시행하면 유권자들이 ‘사표’ 걱정 안 하고 1차 투표에서 가장 좋아하는 후보를 찍을 수 있어요. 1차에서 득표율로 깔끔하게 승부를 보고 2차 때 정책연대를 하면 되니까요. 올해 프랑스 대선도 사회당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와 대중운동연합(UMP)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가 1차에서 28% 대 27%을 기록할 정도로 ‘박빙’이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공산당-좌파전선 연합 장뤼크 멜랑숑 후보나 중도파 프랑수아 바이루 후보한테 단일화하라, 사퇴하라, 안 그랬어요. 결국 1차에서 멜랑숑은 11%, 바이루는 9% 지지를 ‘확인’한 뒤에야 2차에서 올랑드 지지를 선언했지요. 유권자들은 보통 1차 때 가장 좋아하는 후보를 선택하고, 그 후보가 결선에 못 오르면 2차 때는 싫어하는 후보를 배제하는 ‘전략적 투표’ 양상을 보여요. 제일 좋아하는 후보도 뽑아보고, 제일 싫어하는 후보도 거부해 보면 선거 결과에 승복하기도 쉽지 않겠어요?
결선투표 제도는 대통령의 대표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해요. 우리나라 전·현직 대통령들의 득표율은 최대 51.44%에서 최소 36.64%였어요. 투표율까지 고려하면 전체 유권자 대비 지지율은 최대 30% 정도밖에 안 돼요. 투표권이 있는 국민 10명 중 3명이 투표한 후보가 대통령이 된 거예요. 결선투표는 과반 수준의 득표를 ‘강제’해 대표성을 보장해주지요.
아 참, 새누리당에서는 사실상 양당제로 운영되는 우리나라 사정상 결선투표제가 안 맞는다고 했어요. 그런데 정당 스펙트럼을 넓히고, 다양한 정치세력의 제도권 진입을 보장하려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제까지 도입한 거 아닌가요? 한국 정당정치의 현재와 미래는 다당제라고 봅니다. 1표라도 많이 얻은 후보가 당선되는 단순다수제는 미국처럼 양당제의 발전으로 이어져요. 새로운 정치세력의 진출과 기성 정당의 변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거든요. 반대로 결선투표제는 다당제 정착에 긍정적인 구실을 합니다. 2차 때 이념적으로 가까운 정당들이 결집하더라도, 1차 때는 다양한 정당들이 정책 대결을 펼칠 기회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결선투표제를 어떻게 도입하느냐의 문제가 남았습니다. 개헌이 필요한 사안인지, 법률 개정만으로도 가능한지는 헌법학자들도 의견이 갈립니다. 헌법 제67조 5항에서 대통령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돼 있습니다. 이에 따라, 공직선거법의 단순다수제 규정을 고치면 된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반면 헌법 제67조 2항에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의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는 점을 근거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려면 개헌이 필요하다고 보기도 합니다. 학계와 국회·시민단체의 공론화, 충분한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결정돼야 할 사안으로 보입니다. 혹시 헌법이고 법률이고, 비용이 많이 들어가서 싫으신가요?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사회갈등 비용을 고려하면, 차라리 선거를 두번 하는 게 더 저렴하지 않을까 하는 ‘사견’을 끝으로 ‘치밀한 기자는’ 물러갑니다.
전정윤 국제부 국제뉴스팀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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