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4월 일본 국철의 분할 민영화를 전후해 국철 노조원 200여명이 자살합니다. 사업장에서 목을 맨 젊은 노동자들이 줄을 잇는 등 노동자들은 추풍낙엽처럼 스러져 갔습니다. 그때 제발 죽지 말고 살아서, 살아서 싸우자며 간절히 염원하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깊은 상처 안고 사는 지친 어깨에/ 작은 눈길 건네는 친구는 있는가/ 고통 속에 누워 서러웁게 식어가는/ 차가운 손 잡아줄 동지는 있는가// ~살아서, 살아서 끝내 살아서/ 살아서 살아서 끝끝내 살아내어/ 나는 부르리 자유의 노래를/ 함께 부르자 인간의 노래”
지난 11월 말 ‘한겨레 평화의 나무 합창단’ 정기공연에서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인간의 노래’는, 과장된 비장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목부터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똑같은 폭력이 저질러지고, 비슷한 불행이 예고되면서, 나의 소견이 얼마나 짧았는지 절감했습니다. 일본 국철 민영화 전후해 발생한 비극은 그야말로 인간의 비극이었습니다. 그 비극을 극복하려는 처절한 안간힘, 눈물겨운 몸부림이 그 노래엔 스며 있었습니다.
국철 민영화의 희생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만이 아닙니다. 민영화 1년 전까지만 해도 국철노조 소속 조합원은 16만여 명이었습니다. 일본 정부와 국철이 민영화를 선포하고 나서, 조합에서 탈퇴하지 않으면 민영화 이후 재고용 하지 않겠다고 압박했습니다. 전원 해고 후 선별 재고용이란 악랄하게 폭력적인 방식을 강행했습니다. 맞서 싸운 조합 집행부와 조합원 1047명은 해고됐습니다. 불과 1년 만에 12만명이 조합에서 이탈했습니다. 조합은 소수자로 전락하고, 민영화를 막을 힘을 상실했습니다. 그때 이탈한 사람들조차 평생 배반자라는 자책감 속에 살아가야 했으니, 그들 또한 희생자였습니다.
민영화 이후 철도 노동자는 27만명에서 21만명으로 줄었습니다. 무려 6만여 명이 생업을 잃어버렸습니다. 정도의 차는 있었지만 남은 자의 비참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회사쪽은 업무를 분할해 하청 재하청, 위장도급 등으로 쪼갰습니다. 그리고 한때 정규직이었던 이들을 모두 업무에 따라 자회사 협력회사 혹은 파견회사로 쪼갰습니다. 20만여 명이 비정규직으로 떨어졌습니다. 쫓겨난 이건 남은 이건 안녕한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노래’가 될 수밖에 없었고 또 비장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입니다.
그러면 정권의 ‘장밋빛 약속’처럼 민영화 이후 국민은 비용도 덜고 또 편해졌을까요. 일본 신칸센 가운데 가장 느린 고다마의 경우 우리 케이티엑스(KTX)보다 3.5배 정도 비쌉니다. 민영화된 영국의 기차 요금(5배 수준)보다는 조금 저렴하지만, 비싸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신칸센은 사고가 없지만, 다른 저속 기차들이나 저속 노선의 경우 ‘사고철’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철도는 안전이 생명이지만,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력을 대거 감축했으니 안전은 희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철도 민영화가 일본 국민에게 준 것은 안녕과 저비용이 아니라, 불안과 고비용입니다. 국철이 가장 먼저 민영화된 영국은 사고가 빈발하자, 시설 부문을 다시 공영화했습니다. 애초 민영 사업으로 출발한 미국의 철도는 아예 사업성을 잃어 국가에 의해 공영화됐습니다. 뉴질랜드는 민영화했다가 두 배의 비용을 들여 다시 공영화했습니다.
오비이락인지는 몰라도 철도 민영화 이후 1990년대부터 일본의 경제는 장기 침체에 빠집니다. ‘잃어버린 10년’ 혹은 ‘잃어버린 20년’이라고들 했습니다. 지금도 그 악몽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철도 민영화와 국철 노조 붕괴 이후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총평)는 해산되고, 노동권은 현저히 약화됐습니다. 자민당 정권의 ‘정경 복합체’는 더욱 강고해지고 부자가 됐지만, 국민은 가난해졌습니다. ‘평생 직장’ 개념은 허물어지고, 안정된 일자리는 대거 사라졌고, 사회는 활력을 잃어갔습니다. 뒤이어 자산 가치가 폭락하고, 금융 부실은 커졌습니다. 정부가 돈을 주면서 쓰라고 해도, 국민들은 쓰지 않습니다. 쓸 수가 없습니다. 국민을 가난하게 했으니, 국가가 편할 리 없습니다. 자민당 정권도 결국 흔들리고 야당에 정권을 내줍니다. 장기불황의 출발점에 있던 것이 국철 민영화였습니다.
여야가 철도산업 발전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오늘 노조가 파업을 풀기로 했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러나 이번 합의가 또 다른 ‘사기’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노동자는 적이 아닙니다. 이 나라의 국민이자, 우리 경제 체제를 지탱하는 지주입니다. 생산자이자 소비자이며 자본의 횡포를 견제하는 주체입니다. 민주주의와 정의 그리고 평화를 지키는 힘입니다. 그들을 버리지 말기 바랍니다. 더 이상 국민을 향해 폭주하지 말고, 인간의 노래를 짓밟지 말기 바랍니다. 부당한 권력이 기대는 것은 폭력입니다. 반대로 오로지 폭력에 기대다 부당한 권력으로 축출되기도 합니다. 노래 가사는 이렇습니다. 그 염원을 음미하며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시중에 음반이 없으면, 한겨레 평화의나무합창단에 문의하십시요.)
“깊은 상처 안고 사는 지친 어깨에/ 작은 눈길 건네는 친구는 있는가/ 고통 속에 누워 서러웁게 식어가는/ 차가운 손 잡아줄 동지는 있는가
희망의 날개 아래 어둔 슬픔 가두고/ 잊혀진 우리들의 기쁨을 노래하리/ 나는 부르리, 희망의 노래를/ 함께 부르자 인간의 노래
고단한 삶의 아픔 미소 뒤에 감추며/ 함께하는 동지들을 믿고 있는가/ 앞서 스러져간 소중한 벗들을/ 가슴 뜨겁게 기억하며 싸우고 있는가
모두가 미소짓고 노래 넘치는/ 아름다운 세상을 이 땅에서 이루자/ 아픔을 함께하고 기쁨을 나누며/ 한 걸음씩 나아가자 인간의 길로
삶의 괴로움을 날개로 바꾸어/ 생명의 숭고함을 노래에 가득 실어/ 나는 부르리 평화의 노래를/ 함께 부르자 인간의 노래
살아서, 살아서 끝내 살아서/ 살아서 살아서 끝끝내 살아내어/ 나는 부르리 자유의 노래를/ 함께 부르자 인간의 노래
살아서 살아서 끝내 살아서/ 살아서 살아서 끝끝내 살아내어/ 나는 부르리 인생의 노래를/ 함께 부르자 인간의 노래”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