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인천 자유공원에서 열린 맥아더 동상 철거 집회에서 장군으로 분장한 참가자가 맥아더의 포고문이 적힌 현수막을 찢고 있다.(인천=연합뉴스)
[분석] 맥아더 논란에서 나타난 동상의 상징투쟁
1950년 9월14일, 한국전쟁의 전세가 역전된 날이다. 이날 새벽 2시 261여척의 전함에 승선한 7만5천여 연합군 병력이 함포사격과 항공기 폭격을 퍼부으며 인천상륙작전을 벌였다.
55년이 지난 오늘(2005년 9월15일) 인천 앞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 앞에서 두 세력이 첨예하게 대치하면서 충돌하고 있다.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연합군 사령관의 동상 철거논란을 둘러싼 대치는 이미 ‘동상’에 대한 논쟁의 차원을 넘어섰다. 동상은 바로 밑에서 올려다 볼 때보다 한발 떨어져 볼 때 바라보면 전체적 모습이 더 잘 보이는 법이다.[편집자]
이승복, 이순신, 고교설립자, 레닌…그리고 맥아더
기자의 기억에 등장하는 첫 동상은, 1970년대 ‘국민학교’를 다닌 대부분의 이들이 그렇듯이 ‘반공투사 이승복’이었다. 그 시절이 그리운 몇몇 신문들은 이승복이 사라지고 있다고 개탄하지만, 그 당시 국민학교엔 이승복 동상이 이순신 동상만큼 많았다. 그 동상들은, 신비스런 신화를 안고 태어나 티 없이 훌륭한 삶을 살다간 이들을 그린 위인전처럼, 매일 아침 수많은 ‘장난꾸러기’ 국민학생들을 주눅들고 부끄럽게 만들거나 무언의 가르침을 심어주는 상징이었다.
그 동상들을 별 감흥없이 바라볼 즈음, 기자는 또다른 동상을 만났다. 서울 ○○고등학교 교정 한 켠에 ‘모셔져 있던’ 설립자의 흉상이었다. 그는 살아서 동상을 만들었고, 죽어서는 “님이 나셔서 배움길 여시니 크신 공덕 가이 없네~”라는 교가에 이름을 남겼다. 한국전쟁의 영웅으로만 알려졌을 뿐, 일본육사를 졸업한 뒤 만주사변에서 일본을 위해 싸우다 공을 세웠다는 구체적 행적은 당시에 알려지지 않았다. 눈밝은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그가 ‘친일파’였다는 소문이 돌기는 했다. 하지만 다른 학교보다 ‘군기’가 확실했던 ‘장군의 학교’에서 함부로 지껄여서는 안되는 천기였다. 그 김석원 장군은 최근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에 포함됐다. 고등학교 설립자로는 유일했다.
다시 몇 년을 건너뛰어 역사적 장면에 또다른 동상이 등장했다. 레닌이었다. 성난 군중에 의해 끌어내려진 것은, 시대를 풍미한 혁명가 레닌을 본뜬 구리덩어리가 아니라 억압적 이데올로기이자 관료주의체제였다. “동상은 세우면 생명체가 된다. 허무는 것이 세우는 것보다 더 힘들다”
그뿐 아니다. 최근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동상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진영의 폭력사태에서도 보여지듯, 동상은 조형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다. 동상 속 인물과 그가 표상하는 이데올로기가 지지자들과 끈끈하게 결박되어 있다. 처음엔 단순한 조형물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동상은 인격과 이데올로기를 뿜어내며 강력한 생명체로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동상을 부수는 것은 세우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다”고 말한다.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 서울 광화문의 충무공 동상 등이 세워진 때는 한국 전쟁 이후인 이승만 정권 때지만, 본격적인 ‘동상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군사쿠데타 이후였다. 이는 서구사회에 절대주의 국가가 등장한 이후, 정치적 기표로서의 동상이 우후죽순처럼 건립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본 군국주의도 자신들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해 무사들의 동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야스쿠니신사에 남아 있는 동상들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쿠데타로 집권해 정통성의 뿌리가 없던 박정희정권은 이순신동상을 통해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해낸 군인’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이승복동상은 반공의 표상이었다.
최근 국가가 만든 동상에 담겨 있는 정치·사회학적 의미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한 정호기 전남대 연구교수(사회학)는 “동상은 상징하고자 하는 인물의 이념적·인격적 아우라를 이용해 국가가 사회를 통합하고 지배이데올로기의 완성을 위해 만든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한국 사회는 지금 거대한 상징투쟁의 한복판에 있다”며 “한편에선 과거와 구체제의 상징물을 해체하고, 다른 한편으로 민주화된 사회에 맞게 새로운 상징을 만들어야 하는 과정에 있다”고 진단한다. 큰 틀에서 보면 맥아더동상 철거 논란도 그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일단 해체된 동상은 낡은 체제와 이데올로기의 ‘시체’일 뿐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맥아더동상을 둘러싼 논란은 어떤 의미인가? 레닌 동상이 성난 군중에게 무자비하게 쓰러져나가는 것에서 보여지듯 일단 해체된 동상은 낡은 체제와 이데올로기의 ‘시체’일 뿐이다. 그것은 동상 속 인물이 풍미하던 한 시대의 종말이다. 맥아더 동상도 마찬가지다. 맥아더 동상의 철거는 그것이 상징하는 이데올로기가 더이상 한국사회에서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맥아더 동상 철거를 둘러싼 대립은 격렬한 이념 논쟁으로 나타난다. 맥아더 동상 철거를 주장하는 진보단체들은 “맥아더 동상은 미국에 의한 한국전쟁의 승리를 보여주고, 미국이라는 반공블럭화의 보호막에 한국이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며 “동상 철거는 반공주의와 제국주의 상징을 깨자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보수단체들은 “맥아더와 미국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도 없다”며 “동상 철거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고 한미동맹을 뒤흔드는 행위”라고 반박한다.
동상 철거로 문제가 끝나지 않아
학문적·대중적 동조 없는 ‘투쟁’은 반발만 부를뿐 결국, 동상을 세우는 것도, 철거하는 것도 상징적인 정치행위다. 동상을 세우는 쪽도 철거하려는 쪽도 정치적 의도가 명확하다. 그러나, 동상을 세우는 쪽은 현재의 권력자들이지만 부수려는 쪽은 구 체제의 전복자들인 경우가 더 많다. 소련의 붕괴처럼 사회가 뒤집어지는 상황이 아니라면 동상을 철거하는 것은 세우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 정 교수는 “동상을 철거하는 것은 단순히 조형물을 파괴하는 행위가 아니다”며 “그것이 상징하는 이데올로기, 역사적 평가, 사람들에 투영된 인격과 의식 등 하나의 유기체를 해체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는 사람들은 단순히 동상을 깨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며 “동상을 깨는 행위에 앞서 맥아더와 한국전쟁에 대한 평가와 학술적 조명이 먼저 이뤄져 국민들을 설득하고 호응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조형물을 깨는 폭력적인 투쟁은 동상과 이데올로기적 일체감을 형성하고 있는 반대론자들이 목숨걸고 반발하는 사태만 부를 뿐이라는 것이다. 맥아더 동상은 인천 자유공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분단 55년 동안 국민들의 의식 속에도 각인돼 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보협 박종찬 기자 bhkim@hani.co.kr
1957년6월18일 인천상륙작전 7주년 기념을 맞아 제작 중이던 맥아더 동상의 모습.(출처 : 국정홍보처 대한민국정부기록사진집 3권) (인천=연합뉴스)
다시 몇 년을 건너뛰어 역사적 장면에 또다른 동상이 등장했다. 레닌이었다. 성난 군중에 의해 끌어내려진 것은, 시대를 풍미한 혁명가 레닌을 본뜬 구리덩어리가 아니라 억압적 이데올로기이자 관료주의체제였다. “동상은 세우면 생명체가 된다. 허무는 것이 세우는 것보다 더 힘들다”
인천상륙작전 55돌을 앞두고 지난 11일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는 인천 자유공원 주변에서 진보단체 회원들이 집회 뒤 맥아더 동상 주변을 둘러싸는 인간띠잇기 행사를 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장면이다. 이정아 기자 rpqkfk@hani.co.kr
한때 미국의 동아시아지역 관리자였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 대한 평가는 이미 본국 미국에서는 오래전에 끝났지만, 미 점령지였고 지금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이 땅에서는 여전히 그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논란이 극단으로 나뉜 채 계속되고 있다. 반세기도 더 지난 그의 행적을 둘러싼 ‘맥아더 논쟁’은 냉전 붕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분열된 한국사회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자료사진
학문적·대중적 동조 없는 ‘투쟁’은 반발만 부를뿐 결국, 동상을 세우는 것도, 철거하는 것도 상징적인 정치행위다. 동상을 세우는 쪽도 철거하려는 쪽도 정치적 의도가 명확하다. 그러나, 동상을 세우는 쪽은 현재의 권력자들이지만 부수려는 쪽은 구 체제의 전복자들인 경우가 더 많다. 소련의 붕괴처럼 사회가 뒤집어지는 상황이 아니라면 동상을 철거하는 것은 세우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 정 교수는 “동상을 철거하는 것은 단순히 조형물을 파괴하는 행위가 아니다”며 “그것이 상징하는 이데올로기, 역사적 평가, 사람들에 투영된 인격과 의식 등 하나의 유기체를 해체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는 사람들은 단순히 동상을 깨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며 “동상을 깨는 행위에 앞서 맥아더와 한국전쟁에 대한 평가와 학술적 조명이 먼저 이뤄져 국민들을 설득하고 호응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조형물을 깨는 폭력적인 투쟁은 동상과 이데올로기적 일체감을 형성하고 있는 반대론자들이 목숨걸고 반발하는 사태만 부를 뿐이라는 것이다. 맥아더 동상은 인천 자유공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분단 55년 동안 국민들의 의식 속에도 각인돼 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보협 박종찬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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