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려고 자리로 향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3 ‘국회법 개정안’ 충돌의 본질
현재의 권력과 미래의 권력 사이 투쟁은 이미 시작됐다
역대 정권 유사한 충돌에서 현재가 미래를 이긴 적 없어
지금은 박근혜 집권 3년차… 뒤집기 한판은 뒤로 미룰 것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싼 여권 내부의 갈등이 점입가경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당 지도부인 김무성 대표 및 유승민 원내대표 사이에, 그리고 당내에서는 소수 친박근혜 성향 의원들과 다수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 긴장이 높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한쪽도 섣불리 물러서기 어려운 형국입니다. 자칫하면 대통령이나 여당 지도부 어느 한쪽이 치명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6월2일 아침 유승민 원내대표가 의원회관에서 원내대책회의를 열었습니다. 회의가 시작되자 유승민 원내대표와 이군현 사무총장이 6월 국회 일정을 잡아주지 않는 야당을 비판했습니다. 공개석상에서 국회법 개정안이나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기는 곤란했을 것입니다.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는 ‘일부 언론’의 ‘국회법 개정안 위헌’ 보도에 대해 “법안심사소위에서 결론을 미룬 것인데 이런 보도가 나가 유감”이라며 “국회 사무처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별도로 해명자료를 냈다”고 설명했습니다. 조해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성향 의원들이 이번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이어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박민식 의원이 입바른 소리를 쏟아냈습니다.
“국회법 개정안은 지도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 지도부는 강제당론을 요구하지 않았다. 새벽까지 의원총회를 하면서 의견을 수렴했다. 지금에 와서 특정 지도부의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의 양심상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도 법조인이다. 국회 사무처에서 지적했듯이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삼권분립에 반하는지 면밀히 살펴보며 치유하고 극복할 문제다. 치유할 수 있는 흠을 우리 스스로 침소봉대하지 말자.”
유승민 “드릴 말씀 없다, 드릴 말씀 없다”
아마 유승민 원내대표가 꼭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다른 발언도 나왔습니다. 친박연대 대표 출신인 노철래 정책위 부의장은 “국회법 개정안에 강제성이 있는지 없는지 여당 지도부가 국민에게 해명하고 수습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당 지도부를 추궁했습니다.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는 “시행령 개정을 정부측에 요구해 처리하고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정부측에 보고할 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정부가 안했을 때 강제할 절차는 정해져 있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비공개회의가 끝난 뒤 회의실에서 나오는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노철래 의원이 사과 요구 발언을 했는데요? =드릴 말씀 없습니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여야가 입장이 다른데요?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입장을 밝힐 때가 올겁니다. 그 때 가서 한꺼번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계파갈등으로 번진다는 당내 우려가 있는데요? =드릴 말씀 없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강제성 부분에 대해서 야당 여당이 붙어서 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변인들이 얘기할 겁니다.
-노철래 의원은 국민에게 말해야 한다고 했는데요? =나중에. 때가 되면.
유승민 대표의 곤혹스런 처지가 느껴집니다. 이날 원내대책회의에는 이례적으로 김무성 대표도 참석했습니다. 회의실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김무성 대표를 기자들이 붙잡았습니다.
김무성 “청와대와 인식의 차이”
-안에서 무슨 얘기를 나눴나요? =(헛기침 뒤 잠시 침묵) 무슨 얘기 나눴냐고? (잠시 침묵) 내 뭐 어저께 오늘 한 말 그대로 그 내용을 종합해서 이야기했어.
-그게 무슨 얘기지요? 당내 갈등 관련해서인가요? =이 문제는 당내 갈등이나 당청 갈등으로 가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의총에서 모든 정보를 공개했고 최고위에서도 다 상의한 결과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의총에서 제가 분명히 마지막에 이야기하기를 ‘공무원연금법이 아무리 급해도 위헌 소지 있는 법을 만들 수는 없다. 위헌성이 있다 없다 양론이 갈리니 법사위에 가서 위헌 소지가 있다면 자구 수정해서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의원들이 그걸 다 동의했어요. 그래서 법사위 갔는데 법사위 전문위원이 위헌 소지가 없다고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래서 이게 진행이 된 겁니다. 우리 당은 강제성 없다는 전제 하에 일을 진행 중인데 야당은 강제성 있다는 전제 하에 일을 진행 중입니다. 강제성이 있다는 결론이 나면 위헌 소지가 있는데 이 판결을 어떻게 받는지 연구 중입니다.”
-갈등을 수습해야 하지 않나요? =우리끼리 싸울 이유가 없지. 이렇게 내가 말한 내용대로 인식을 같이 한다면 당내 갈등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당내 몇몇 의원들은 그런 갈등의 소지를 지도부가 열어놓은 것 아니냐고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야당 합의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데. 이건 유승민 대표가 제안한 게 아니잖은가. 야당에서 제안한 거 아닙니까.
-오늘 회의에 직접 온 이유가 뭔가요? =상당히 예민한 사항이기 때문에 참석해서 내 의견도 말하고.
-청와대는 오해하고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인식의 차이지요. 당에선 강제성이 없다는 것이고 청와대도 이야기하길 강제성 있냐 없냐는 국회에서 결정하라는 그런….
-대통령 어제 발언 이후 청와대와 연락을 했나요? =그런 건 이야기 안 합니다.
유승민 원내대표와 마찬가지로 김무성 대표의 곤혹스런 처지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이날 의원회관 간담회장에서는 국가경쟁력강화포럼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은 친박 성향으로 해양수산부 장관인 유기준 의원이 주도해서 만든 모임입니다. 따라서 친박 성향 의원들이 대거 회원으로 가입해 있습니다.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 정무특보인 윤상현 의원이 총괄간사로 포럼을 이끌고 있습니다.
전날 회원들에게 “제정부 법제처장의 발표로 ‘국회법 개정안 위헌 논란’을 주제로 포럼 세미나를 개최하오니 바쁜 일정이 있으시더라도 참석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라는 문자가 전송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윤상현 의원은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세미나에는 의원 20여명이 참석했는데 대부분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이번 논란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상 원칙일까요, 행정부와 국회의 대립일까요? 아니면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과 국회선진화법으로 무장한 야당의 대치일까요? 6월2일 몇몇 신문 1면 제목과 사설 제목을 살펴보았습니다.
<1면 기사>
법 만들어 놓고 딴소리 코미디 국회(조선)
박 대통령-문재인 국회법 충돌(중앙)
박 대통령 “수용불가” 야 “재협상 불가”(동아)
“유승민 사퇴하라”(문화)
<사설>
전면전으로 번지는 당청 국회법 갈등, 국민은 안중에도 없나(조선)
시행령 수정권한 법안 파동 합리적으로 해결돼야(중앙)
국정마비 없도록 여야가 국회법 개악 결자해지하라(동아)
국회법 개악 뒤 자중지란 새누리당 집권 다수당 맞아(문화)
이번 사태에 대한 언론의 시각이 매우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정면충돌이라는 ‘핵심’을 정확히 짚은 제목은 찾기 어렵습니다. 대체로 국회나 여당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감싸려다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사건의 배경에 ‘현재의 권력’과 ‘미래의 권력’ 사이에 벌어지는 권력투쟁이 깔려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권력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우선 관심사는 자신의 영향력 유지입니다. 강제력이 있건 없건 행정부의 권한을 침해하는듯한 국회의 시도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야 레임덕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7년 대선으로 가는 새누리호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입니다. ‘대통령 1인 지배’, ‘행정부의 확고한 우위’, ‘효율성’, ‘일사불란’에 익숙합니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 정부는 ‘과거의 권력’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그리고 다수의 새누리당 의원들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권력’입니다. ‘미래의 권력’이 ‘현재의 권력’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집권을 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야 임기를 마치고 물러가면 그만이지만 이들은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면 정치적으로 몰락하게 됩니다.
정권재창출을 위해 새누리당은 박근혜식 원칙적 보수에 머물 수 없습니다.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로 진화해야 합니다. 국회에서 성과를 내야 하고 성과를 내려면 야당과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무성 대표나 유승민 원내대표가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하는 것은 유약해서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과 달리 그들이 절차와 성과를 중시하는 ‘정치인’들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런 설명도 가능합니다. 고연령층 중심의 전통적 보수 세력에 기반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지지율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권재창출이 절박한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그리고 다수의 새누리당 의원들은 젊은 세대를 겨냥한 개혁적 보수를 지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현재 또는 과거를 상징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미래를 상징하는 김무성-유승민 대표의 충돌은 오래전에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 합니다. 두 사람은 ‘원조친박’에서 탈퇴한 이른바 ‘탈박’, 또는 밀려난 ‘짤박’ 인사들입니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해 7월 친박 서청원 최고위원을 꺾고 대표가 됐습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지난 2월 ‘반박’과 ‘비박’ 성향 의원들의 지지로 원내대표에 당선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이들의 존재 자체가 마음에 들 리가 없습니다.
특히 유승민 원내대표는 지난 4월8일 파격적인 내용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운 전례가 있었습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당시 진영을 넘어선 ‘합의의 정치’를 강조했습니다. ‘보수의 새로운 지평’으로 성장·복지의 균형발전과 ‘중부담-중복지’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친박 성향의 의원들은 “당내 조율 과정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그런 사안에 대해서도 어제 언급을 했다”(이정현), “많은 의원이 동의하지 않는 것 같다”(홍문종)고 유승민 원내대표를 비판했습니다.
‘원조친박 ’유승민 “청와대 얼라들이”
정치무상일까요? 원조친박 유승민 원내대표는 2005년 1월부터 10월까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을 지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2007년에는 박근혜 선거대책위 정책메시지 총괄단장으로 일했습니다. 당시 당에서 실력있는 인물들은 대부분 이명박 캠프로 갔지만,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례적으로 박근혜 캠프를 선택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승민 원내대표를 깊이 신뢰하고 의존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은 2011년 말부터 서서히 멀어졌습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 취임 뒤에도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의 참모들을 겨냥해 “청와대 얼라들”이라고 한 일이 있을 정도입니다.
현재의 권력, 또는 과거의 권력인 박근혜 대통령과 미래의 권력인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의 대결은 누구의 승리로 끝날까요? 길게 보면 미래의 권력이 승리할 것입니다. 역대 정권에서 유사한 충돌이 벌어졌지만 미래를 현재가 이긴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 집권 3년차입니다. 현재가 미래에 굴복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이른 것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중적 지지, 특히 대구·경북 고연령층의 ‘묻지마 지지’를 철갑처럼 두른 강자입니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당장 그의 적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로서는 정면충돌을 피해 이번 싸움을 뒤로 미루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대표직이나 원내대표직을 내놓고 물러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건 정치적 사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거부권 행사→재의 요구’ 정면충돌 원치 않아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실제로 행사하면 당장 국회법 개정안 재의가 정국 최대 현안이 될 것입니다. 이와 별도로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와 임명동의안 처리도 눈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과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새누리당의 정치적 활로를 모색하는 묘수를 과연 찾아낼 수 있을까요?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