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해킹 의혹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
정권마다 정치공작 개입
수사권까지 가져 권력 비대화
“국내정보 수집권한 없애야” 지적
정권마다 정치공작 개입
수사권까지 가져 권력 비대화
“국내정보 수집권한 없애야” 지적
“동그라미를 보면서 세모나 네모라고 우기는 일은 정말 곤란하다. 실체 없는 뜬구름 같은 의혹으로 우리 방어막을 스스로 허무는 안보 자해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30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말이다. 야당의 의혹 제기를 “세모나 네모라고 우기는 일”로 평가절하하며 ‘동그라미’(국가정보원의 해명)를 믿으라고 비유한 것이다. 이병호 국정원장도 지난 27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직을 걸고 불법을 저지른 일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자료 제출은 ‘보안’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이처럼 여당과 국정원이 ‘믿으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국정원의 자료 제출 거부도 주요 원인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그간 국정원이 대북·대테러 활동보다, 국내정치에 개입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하며 국민들의 신뢰를 스스로 저버려 왔던 탓이 크다.
역대 정권마다 국정원은 국내 정치 공작의 중심에 있었다. 1997년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기획한 ‘북풍 공작 사건’이 대표적이다.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안기부가 재미동포 윤홍준씨에게 1만9천달러를 주고 대선 직전 ‘김대중 후보가 북한으로부터 대선자금을 받았다’는 거짓 기자회견을 하도록 공작한 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으로 권영해 전 안기부장을 비롯해 안기부 1차장, 대공수사실장 등 안기부 고위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이 별도의 팀을 만들어 오피스텔에서 야당에 비판적인 인터넷 댓글과 트위터 활동 등을 통해 선거에 개입한 ‘댓글 공작’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7일 국회 정보위에서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팀과 거래한 다른 나라에선 이런 의혹 제기가 없다’고 항변하자, 일부 의원들로부터 “다른 나라 정보기관들은 댓글을 달지 않지 않느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으로 국정원 관계자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됐다. 이번 국정원 민간인 해킹 의혹 사건까지 합치면 국정원이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은 이 정권 들어서만 세번째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5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0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2.9%가 국정원 설명과 달리 ‘내국인 사찰도 했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국정원 주장대로 ‘대테러나 대북 공작활동을 위해서만 해킹했을 것’이라는 응답은 26.9%에 그쳤다.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지난 20일 “국정원이 정치적 소용돌이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자업자득의 면도 있다”며 “불법도청을 비롯한 많은 의혹으로 국정원은 지금 믿는 사람보다 믿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새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국정원이 신뢰받는 정보기관으로 재탄생하기 위해서는 수사권 분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김지미 변호사는 “밀폐성을 속성으로 하는 정보기관이 수사권까지 보유하고 있는 것은 권력 비대화와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며 “수사권을 분리하고 국내정보 수집 권한을 없애는 것이 국정원의 탈권력화와 신뢰 회복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정원을 비밀정보기관으로 규정하고 이를 오로지 대통령만 독점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며 “국회 정보위 권한을 강화해 국정원에 대한 통제권을 대통령이 아니라 의회와 국민에게 되돌려 놓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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