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지난해 4월1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신의 형수 별세 소식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어머님 같은 형수가 돌아가셨다. 편안히 잠드소서.” 이 최고위원은 13일 뒤인 같은 달 30일 형수 장례식에 보낸 조화 대금 10만원을 정치자금 후원금 계정에서 지출했다. 이 최고위원 쪽은 “법규에 어긋나게 쓴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논산시선거관리위원회는 “사적 사용으로 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지출이라 3월21일 구두경고 조치했다”고 <한겨레>에 밝혔다.
국회의원들은 정치자금 대부분을 후원금을 통해 충당하는데, 정치자금법은 후원금을 사적 경비로 쓰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국민이 정치활동에 쓰라고 준 돈이기 때문에 목적에 맞게 쓰라는 것이다. ‘사적 경비’로 사용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한겨레>가 19대 국회의원 298명의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를 분석해보니, 일부 의원들은 사적 경비로 규정된 향우회비, 사적 모임 회비 등 명목으로 정치자금을 지출했다. 박맹우 새누리당 의원도 지난해 1월 사적 모임인 ‘신라회’ 회비 100만원과 경남중고등학교 동창회비 10만원을 정치자금으로 지불했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충청향우회비 100만원을 정치자금으로 냈다. 박 의원 쪽은 “동창회비 등 지출이 문제가 돼 지난달 회계책임자가 선관위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았다”고 밝혔고, 김 의원은 “문제가 될 수 있겠다”고 인정했다. 김 의원은 또 “선관위 등에도 질의를 하였으나, 회계책임자가 바뀌면서 관련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사적용도로 사용한 것에 책임감을 느낀다. 즉시 반납하겠다”라고 말했다.
중앙선관위의 ‘정치자금 회계실무’를 위반해 정치자금을 집행한 의원도 상당수였다. 이 회계실무는 의원실 회계책임자의 질의에 대한 답변 등을 정리한 일종의 ‘지출 기준서’ 역할을 한다. 회계실무에는 정치활동과 관련이 있어도 유흥주점·노래방 등 술집에서의 정치자금 사용은 ‘사적 용도 지출에 해당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김재원쪽 “바에서 정치활동 했다”
박맹우 사적모임 회비로 지불
김상희 향우회비로 사용 불법·부적절 정치자금 차입
회계책임자에 돈빌린 홍의락
이자 변제 계획 명확치 않아
김동완도 비서관 부부에 돈 빌려
청와대 정무특보를 지낸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단란주점으로 등록된 서울 여의도의 한 노래방에서 지난해 1월 30만원을 정치자금에서 지출했고, 양주 등을 파는 여의도 ‘비즈니스 바’에서 11차례 202만5천원을 썼다. 김 의원 쪽은 “의원님이 (해당 업소에) 정치활동으로 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같은 당 김한표 의원도 단란주점으로 등록된 노래방에서 15만원을 정치자금으로 지불했다. 김 의원은 “착오로 정치자금 카드로 결제했다”고 말했다. 김재원 의원은 <한겨레>가 이를 취재하자 지난달 31일, 단란주점으로 등록된 업소 등에서 사용한 정치자금 232만5천원을 선관위에 반납했다. 김한표 의원도 노래방에서 쓴 정치자금에 대해 31일 “반환 절차를 거치고 있다”고 <한겨레>에 밝혔다.
지난 3월23일 찾은 서울 중구의 한 쿠키점. 김영환 국민의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딸이 운영하는 이 쿠키점에서 간담회를 열었다며 192만원을 썼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지난 3월23일 찾은 서울 영등포구의 한 카페.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남동생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직원과 회식을 하고 간담회로 지출했다고 허위 기재했다. 권승록 기자 rock@hani.co.kr
김영환 국민의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도 지난해 74만3천원의 정치자금을 와인바, 와인레스토랑 등에서 지출했다. 김 위원장 쪽은 “저녁 식사시간을 놓쳐 식사를 하기 위해 이용한 것으로 문제없다”고 밝혔다.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은 30만원의 노무사회비를 정치자금으로 지출했다. 이 의원은 “정치활동 비용”이라고 밝혔지만 회계실무는 노무사회비와 유사한 변호사협회비를 정치자금으로 납부하는 행위를 사적 이용으로 규정하고 있다. 중앙선관위도 “노무사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 (해당 의원의) 직업적 신분으로 의정활동을 하기 전부터 회비를 내온 것이라면 개인적 지출로도 볼 수 있다”고 <한겨레>에 밝혔다. 송광호 전 새누리당 의원은 시계수리비 3만원을 정치자금에서 지출했다. 송 전 의원 쪽은 “합법적 지출이라 생각하지만 도덕적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불법적이거나 부적절한 정치자금 차입 문제가 취재 과정에서 새롭게 확인됐다. 의원들이 모자라는 정치자금을 보좌진, 지역구 기초의원에게 빌리면서 차용증을 쓰지 않거나 이자를 지급하지 않은 사례 등이 확인됐다. 각각 정치자금법 위반과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 정치자금 차입금을 회계장부에 기록하는 이유는 빚을 나중에 후원금으로 갚는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홍의락 무소속 의원(전 더불어민주당)은 자신의 회계책임자에게 차용증을 쓰지 않고 2100만원을 정치자금으로 빌린 뒤 선관위로부터 소명을 요구받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의원이 정치자금을 빌릴 때는 회계보고서에 반드시 차용증을 첨부해야 한다. 중앙선관위가 소명을 요구해 홍 의원이 뒤늦게 차용증을 제출했으나, 이자 변제 계획이 명확하지 않아 중앙선관위가 현재 위법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신학용 국민의당 의원도 자신의 보좌관 출신 시의원에게 정치자금으로 1천만원을 빌리고 원금은 갚았으나 이자는 지급하지 않았다. 신 의원 쪽은 “시의원이 이자를 받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정치자금을 빌리고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행위는 선거법상 기부행위에 해당돼 불법이다.
김동완 새누리당 의원도 지난해 자신의 비서관이자 회계책임자인 정아무개씨와 정씨의 아내로부터 각각 4300만원과 3천만원을 빌린 것으로 확인됐다. 김 의원은 정씨의 빚 원금은 변제했으나 이자 일부를 아직 갚지 않았다. 정씨 아내에게서 빌린 원금과 이자는 아직 갚지 않고 있다. 김 의원 쪽은 “남은 돈과 이자는 모두 올해 말까지 갚기로 차용증에서 약정했으므로 문제없다”고 밝혔다.
차용증이 존재하면 불법은 아니지만, 김동완 의원의 이런 차입행위도 도덕적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298명의 회계보고서를 보니, 정치자금이 모자라는 의원들은 차입을 한 경우 거의 다 본인 명의로 꿨다. 18대 국회에서 활동한 한 전직 보좌관은 “정치자금이 모자랄 경우 의원 본인이나 배우자 차입이 일반적”이라며 “보좌관이나 지역구 기초의원에게서 차입하는 행위는 ‘갑질’로 충분히 비난받을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욱 고나무 김민경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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