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5월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묘지에서 열린 제3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위한행진곡 합창순서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고 있다. 한겨레 자료
올해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이뤄지지 않게 됐습니다. 국가보훈처는 16일 자료를 내 “올해 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합창단이 합창하고 부르고 싶은 사람은 따라 부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부르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습니다. 13일 박근혜 대통령과 3당 원내대표 회동 때 박 대통령이 “국론 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찾아볼 것을 국가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말했지만, ‘좋은 방안’은 결국 나오지 않은 겁니다. 국가보훈처는 되레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께서 참석하는 정부기념식이 국민통합을 위해 한마음으로 진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의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나뉘고 있는 상황에서 참여자에게 의무적으로 부르게 하는 ‘제창’ 방식을 강요하여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보훈안보단체와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이라고 밝혔습니다. ‘제창은 안 되고 합창은 되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제창은 안 되고 합창은 되는’ 까닭
‘임을 위한 행진곡’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7년 5·18민주화운동이 정부기념일로 제정된 이후부터 기념식에서 제창돼 왔습니다. 하지만 2004년에 벌어진 하나의 장면을 통해 갈등의 실마리를 상징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2004년 5월18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24주년 기념식에서 찍힌 장면입니다. 군악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하는 동안 노무현 대통령은 가사도 보지 않고 노래를 부릅니다. 진보 정당인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당시 대표는 오른 주먹을 꽉 움켜쥐고 아래로 흔들며 노래를 부릅니다. 반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악보 또는 식순표로 추정되는 종이만 볼 뿐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악보만 보고 노래는 안불렀던 박근혜 대표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정치적 견해 차이를 보여준 이 장면은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바뀐 2008년 본격적인 갈등으로 번집니다. 2008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자, 보수 단체가 나서서 “애국가 대신 부르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노래”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겁니다. 그러면서 2009년 기념식부터 이명박 정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본 행사에서 제외하고 식전행사에서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바꿨습니다. 30주년 기념식이던 2010년에는 국가보훈처가 기념식에 흥겨운 경기민요인 ‘방아타령’ 연주를 편성했다가 논란이 일자 민중가요로 대체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2년 연속 본 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외되면서 야당과 민주 사회단체 등에서 반발이 일자, 2011년부터는 본 행사에 넣되 제창이 아니라 합창단의 합창으로 부르게 했습니다.
자 그럼 여기서, 제창과 합창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두산백과를 보면, 제창은 ‘똑같은 선율을 두 사람 이상의 가수가 동시에 노래하는 창법’이라는 뜻이고, 합창은 ‘다성악곡의 각 성부를 각각 두 사람 이상이 맡아서 부르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음악적인 의미로는 화성을 나누어 부른다는 점 외엔 ‘여러 사람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는 뜻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보훈처의 유권해석은 제창은 필수, 합창은 선택
하지만 국가보훈처는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제창은 참석한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부르는 노래이고, 합창은 무대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는 대신 참석자들은 부르고 싶은 사람이 따라 부르는 선택적인 사항”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창은 의무적으로 따라 불러야 하는 노래, 합창은 참석자가 부를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노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국가보훈처는 “노래 제창은 정부기념식에서 ‘4·19기념식은 4·19의 노래’ 등 기념일과 동일한 제목의 노래는 제창하고 기념일 제목과 다른 제목의 노래는 합창단이 합창하여 원하는 사람은 부르게 하는 것이 정부의 관례”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의문이 듭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2004년 기념식 때를 돌아보자고요. 당시에는 분명히 본 행사 때 국가보훈처의 방침에 따라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 형식으로 불러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국가보훈처의 설명대로라면, 이 당시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기는 참석자 의무 사항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노래를 부르지 않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국가보훈처의 방침과 정부의 관례에 따르지 않은 돌출 행동을 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대통령이 12년 전 ‘돌출 행동’을 했다고 말하는 국가보훈처의 이런 억지 논리,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으신지요?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관련 기사 : 정국 강타한 ‘임을 위한 행진곡’, 한 번 들어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