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25일 제주포럼 참석을 위해 전용기 편으로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차량으로 옮겨타고 있다. 제주도청 제공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25일 ‘화려한 출정식’을 가졌다. 이튿날 본인은 “과대해석됐다”고 했다지만, 모든 언론들은 “내년 1월1일 임기를 마치고 돌아오면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는 그때그때 고민하고 결심하겠다”는 그의 발언을 ‘대선 도전 시사’로 받아들였다.
국제기구의 수장인 반 총장이 일국의 대통령 자리에 도전한다는 것의 적절성 시비는 잠시 접어두자. 국내 정치 상황만을 보자면 그의 이번 발언은 세간의 주목을 받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에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4·13 총선 이후 한달이 훌쩍 지났지만 참패의 당사자인 새누리당은 여전히 무기력한 모습이다. 김무성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안대희 전 대법관 등 여권의 잠재적 대선 주자 진영은 이번 선거를 거치며 초토화됐다. 구심점이 없으니 친박이든 비박이든 주도권을 쥐고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충돌의 에너지를 새로운 시스템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여권의 지지부진한 상황은, 아직 소설 수준에도 못 미치는 ‘여권발 정계개편설’을 퍼뜨리기에 이르렀다. “절 싫으면 중 떠나라”는 초선 친박의 얘기는 비박 탈당설로 확대되고, 비박계가 툭 던진 “손학규도 여권에 모셔올 수 있다”는 얘기가 널리 회자될 정도의 설익은 수준인데도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기문의 등장은 여권에 호재다. 반 총장 본인의 요청으로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설문조사에 반 총장을 넣지 않았던 한국갤럽은 앞으로는 반 총장을 포함시켜 조사를 실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반 총장이 강력한 여권의 대선 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되면, 탈당설과 분당설이 나오던 여권의 원심력은 축소되고 대선 레이스도 한층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반 총장은 앞으로 대선 판을 흔들 파괴력을 지니고 있을까? 일단 그가 너무 빨리 등장했다는 사실이 그만큼 그의 정치적 영향력을 반감시킬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는 다급했겠지만, 본인으로선 대선 주자로서 검증의 시기를 그만큼 앞당김으로써 생채기가 날 확률을 높인 셈이다.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활동에 대한 평가도 본격화될 것이다.
그의 권력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가도 변수다. 정치권에선 반 총장 본인이 충청권 인사들에게 대선에 대한 구체적인 뜻을 밝혔다는 얘기가 흘러다니고 있는데, 그것이 100% 반 총장의 의지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유능하고 원만하지만 무난한 외교공무원 출신인 그가 과연 혹독한 검증과 정글 같은 여의도 정치를 견뎌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참여정부 때 반 총장을 외교보좌관으로 추천했던 유인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대중의 지지가 있고 강력히 추동하는 사람이 있으니 고민은 하겠지만 반 총장의 품성을 고려할 때 고건 전 총리만큼도 가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에겐 친박의 지지를 업었지만 친박과의 고리를 끊어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총선에서 혹독한 평가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당권에만 매몰돼 민심을 무시하는 친박의 행태는 보수 진영에서조차 험한 말로 공격받고 있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정치권 내에 자기 세력기반이 없는 그를 돕겠다고 나서는 원군이 하필이면 친박계”라며 “호랑이 등에 올라탔는데 그 호랑이가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평했다. 반 총장이 과연 이런 딜레마를 풀어낼 수 있을까?
이유주현 정치 디지털데스크 edigna@hani.co.kr
[언니가 보고있다 #20_반기문의 ‘구직 활동’, 성공할까?]
이유주현 정치 디지털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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