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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단독] 구제 못 받는 탈락자들…바뀌지 않는 운명

등록 2017-09-26 07:31수정 2017-09-26 09:27

광물자원공사 직원 김○○씨
부정합격자에 밀려 불합격
재도전해 6개월 뒤 같은 곳 입사
억울한 탈락자들 구제책 필요
강원 원주에 있는 광물자원공사 본사 전경.
강원 원주에 있는 광물자원공사 본사 전경.
있어선 안 될 ‘동거’다. 부정하게 입사한 이와 그이 때문에 떨어진 이가 한 직장에 다닌다. 입사가 늦은 이는 영문도 모른 채 반년을 허비했다. 뒤늦게 실력으로 입사한 후배는 자신을 탈락시키고 먼저 입사한 이를 알게 됐다. 그는 부정 채용자를 선배로, 언젠가는 상사로도 ‘모셔야’ 할지 모른다.

2013년 7월, 스물넷 김아무개씨는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공공기관 취업에 성공했다. 10년쯤 다니면 연봉 7천만원이 넘는 남부럽지 않은 직장이다. 반년 넘게 이곳에서 인턴까지 했다. 직후 신입 공채에 응시했다가 실패한 터라, 합격의 기쁨은 더욱 컸다. 그에게 입사 뒤 상상도 못한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알게 된 건 아니었어요. 입사한 지 한참 지났을 때 소문으로 전해 들었죠.” 김씨는 <한겨레> 기자에게 어렵게 입을 뗐다. 소문은 사실로 드러났다. 그가 지금도 다니고 있는 광물자원공사는 2012년 신입사원을 뽑으면서 유아무개씨를 합격시키기 위해 점수를 조작하고 모집 정원을 늘렸다. 그 결과 유씨와 김씨의 운명이 뒤바뀐다. 다섯을 뽑는데 6위였던 유씨는 5위였던 김씨를 밀어냈다. 사건은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를 거쳐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청탁을 한 몸통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고 부정채용된 유씨는 지금도 다닌다.

부정 합격자에 밀려 탈락한 김씨는 재도전하기까지 다른 곳은 시험도 보지 않았다. 자원공학을 전공한 그에겐 처음부터 광물자원공사가 목표였다. “(부정채용으로) 떨어졌을 당시 알았다면 더 억울한 마음이 있었겠죠.” 그는 부정하게 채용된 이가 누군지 알지만, “마주칠 일이 없어서” 어떻게 지내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태연한 척했지만, 그는 유씨의 부정채용으로 여섯달의 청춘을 날렸다.

부정채용이 있었던 공공기관은 피해자 구제에 인색하다. 2012~13년 강원랜드에서 518명 채용에 95%가 넘는 493명이 청탁을 뒷배 삼은 것으로 확인됐지만 탈락자 4775명 중 단 한명도 구제받지 못했다. 취업 준비에 쏟은 불합격자의 노력과 시간은 대개 보상받지 못한다. 광물자원공사의 김씨도 구제받지 못했다. 불법과 부정의 구제 절차를 밟아 채용된 게 아니라, 실력으로 입사했다. 공공기관 부정채용 문제를 적극 제기해온 이찬열 국민의당 의원은 “광물자원공사에 부정채용에 밀려 탈락한 이를 구제하는 절차는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부정채용의 피해자가 채용되는 경우는 미담으로나 소개할 만큼 예외에 가깝다. 25일 <한겨레>가 확인해봤더니, 2013년 이후 지난 6월까지 심각한 채용비리가 있었던 37개 공공기관의 관리감독 부처나 감사원 등이 탈락자 구제를 조치사항에 담아 해당 기관에 내려 보낸 경우는 없다.

지난해 청탁을 받아 부정합격자가 발생한 대전도시철도공사는 드물게 탈락자를 구제했다. 당시 사건을 세상에 알린 황재하 전 대전도시철 경영이사는 어렵게 인사위원회까지 소집해 탈락자 중 2명을 건졌다. "바깥에 알리게 된 계기도 억울한 탈락자를 구제하기 위해서였다." 공공기관이 탈락자의 사후 합격 처분에 왜 인색한 걸까? 황 전 이사는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부정행위 자체를 끝까지 부정하면서 2~3년씩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는 새 탈락자는 자연스럽게 잊혀진다는 것이다.

임지선 조일준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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