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수도권 압승과 호남 재탈환을 기대한다. 이해찬 당 대표가 지난 3월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선대위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 선거일 6일 전부터 선거일 마감 시각까지 한 여론조사는 공표가 금지된다. 다만 그 직전까지 한 여론조사를 활용한 전망은 가능하다. 유권자들은 각 정치세력이 전망하는 판세나 6일 이전에 한 여론조사를 보고 지지 후보를 결정해야 한다. 선거전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이번에도 어김없이 여론조사 신뢰도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선거를 치러보면 일주일 남겨놓고, 일주일 만에 변하는 것은 많지 않다.”(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7일 유튜브 방송 ‘유시민의 알릴레오’ 인터뷰)
“여론조사 자체를 보지 않는다. 초장에 나타나는 여론조사가 반드시 선거 결과와 일치하지는 않는다.”(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 같은 날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
여론조사는 빈 그릇이다. 민심을 드러내는 지표로 여겨지지만, 때로 음습한 공작의 도구로 쓰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공직선거법상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하는 깜깜이 선거 기간이 시작되기 직전 등장한 정치 9단의 말들은 얼핏 충돌되는 듯하나 같은 맥락 위에 있다.
같은 여론조사, 다르게 읽는 여야
여론조사에 휘둘리지 말고 ‘추세’를 보자는 이해찬 대표의 말은 상식에 가깝다. 유권자들은 여론조사의 흐름을 참고해 지지를 결정하면 된다는 뜻이다. 현재 여론 판세를 읽은 뒤의 자신감이 엿보인다. 김종인 위원장의 말도 가볍지 않다. 그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20% 넘는 무당층에 주목하고 있다. 초반 여론조사가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이 지점이다.
여의도연구원(여연)의 사정을 잘 아는 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여연의 여론조사는 선거를 시기별로 나눠 초반, 중반, 후반 모두 보정을 달리해 여론을 판별한다”며 “연령, 성별, 지역 등 보정을 어떻게 하느냐는 연구원만의 노하우다. 김 위원장의 여론조사를 보지 않는다는 말은 현재 여론 지형 자체를 흔들어보겠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 8일 차명진 미래통합당 후보(부천병)의 세월호 막말 뒤 대국민 사과에 전격 나서고 그 자리에서 특별장학금 지급 카드를 꺼낸 것은 여론을 더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앞선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특히 대학생·대학원생에게 지급하겠다는 특별장학금 100만원은 20대와 50대를 직접 겨냥한 것이다. 재난기본소득 논의부터 긴급재난지원금까지 현금성 지원을 두고 우물쭈물하다가 지지 여론이 흔들린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여론을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한 노력은 진영을 불문한다. 다만 이번 선거에서 여론 지형에서 좀처럼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는 보수진영의 공세는 여론조사 자체를 문제 삼는 데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연이 각종 여론조사를 두고 ‘과대표집’(특정집단의 여론이 실제보다 크게 수집되는 것)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여연이 4월2일 낸 ‘이슈브리프’라는 보고서를 보면, 3월12~14일자의 한국리서치 판세 조사의 예를 들어 “각 조사의 응답자 지지자가 실제보다 20~30% 과대표집 돼 응답자 정치성향의 비대칭이 상당한 수준”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 광진을 지역구에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앞서는 결과의 여론조사(한국리서치 3월12~14일 실시)에서 민주당과 정의당 지지의 합이 62.7%인데 이는 2017년 대선 당시 이 지역에서 문재인 후보와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 합(47.3%)보다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이 조사가 정치성향별 표집의 불균형을 방치해 여권에 편향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여론조사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모른 척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맞선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2017년과 현재를 비교하는 것은 정치적 선택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것이다. (여연의) 논리 자체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한 지역은 어떤 시대적 상황이 벌어져도 지지하는 정치집단이 늘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대표집 비판의 근거로 “2017년 대선에서 누구를 뽑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최근 여론조사 응답자 비율과 2017년 당시의 실제 득표율의 차이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다수 여론조사기관의 응답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찍었다는 답은 50%를 넘어서지만 실제 2017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얻은 전체 유권자 중 득표율은 31.6%에 불과하니 문재인 지지자가 과대표집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차이는 여론조사의 결함이 아니라 유권자의 심리가 반영된 지표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여론조사전문기관 케이스탯컨설팅 이상일 소장은 “대통령 선거에서 진 쪽이 상대적으로 위축된다. 이후 여론조사에서 유권자들은 진 후보를 지지했다고 말하기 꺼려하는 경향이 생겨나고 그런 심리가 여론조사 결과로 나타난다”며 “박근혜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2012년 대선에서 진 문재인 후보 지지가 제대로 표집되지 않아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실제 득표율보다 과대표집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우리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선거 때마다 여론조사를 향한 비판은 반복돼왔다. 특히 여론조사에 사용되는 표집틀을 둘러싼 논란은 같은 주제를 두고 입장을 달리하며 계속될 정도다. 표집틀은 크게 전화의 종류(유·무선), 질문의 방식(자동응답, 전화면접), 여론조사 대상(무작위 추출 번호, 이동통신사업자로부터 제공받은 휴대전화 가상번호인 ‘안심번호’, 조사기관이 구축한 휴대전화 번호) 등에 따라 구성되는데, 각각의 요소를 어떻게 얼마나 결합하느냐가 여론조사의 신뢰도를 결정한다.
논쟁은 공인된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무선전화와 유선전화 비율의 논쟁도 마찬가지다. 이는 지난 총선에서도 도마 위에 올랐던 주제다. 지난 20대 총선의 경우 유선전화가 응답률이 낮고, 30~40대나 직장인이 표집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됐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방법이 무선전화 비율을 높이는 것이었다. 이번 총선부터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도 사용 가능하도록 한 안심번호를 이용한 무선전화 방식이 여론조사의 신뢰도를 높였다는 데에는 대다수 전문가들이 공감한다. 현재 안심번호를 통한 무선전화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일반적으로 80~90% 무선전화 방식과 10~20%의 유선전화 방식을 섞어 조사한다.
미래통합당은 선거 막판 김대호 후보(서울 관악갑)에 이은 차명진 후보(경기 부천병)의 막말로 중도 지지층 이탈에 고심하고 있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지난 8일 국회에서 총선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유·무선 비율 논란은 계속
하지만 선거운동이 본격화하자 몇몇 격전지에서 다시 유선전화 비율을 높인 여론조사가 실시됐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지역별 유권자 성향(영·호남, 수도권 등), 후보 지지 기반 등에 따라 조사기관들이 유선전화 비율에 변화를 준다”며 “이는 정치적 유불리를 조사 결과에 반영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보수성향 후보와 진보성향 후보의 순위가 뒤바뀌는 곳이 등장하면서 유선전화 비율 논란은 가속화됐다.
대표적인 선거구가 서울 동작을이다. <국민일보>와 <기독교방송>이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지난 4~5일 실시한 동작을 조사(유선전화 비율 34.1%)에서 나경원 미래통합당 후보는 44.1%, 이수진 민주당 후보 40.9%였지만, 유선 비율을 9.5%로 낮춘 <문화일보>의 5~6일 엠브레인 조사에서는 이 후보 47.2%, 나 후보 34.3%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이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다른 격전지에서는 이런 흐름과 어긋나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미래통합당 소속의 서병수 전 부산시장이 맞붙은 부산 부산진갑의 경우, 먼저 4월4~5일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는 김 후보 44.5%, 서 후보 36.2%로 김 후보가 서 후보를 앞섰다. 같은 시기 한국갤럽의 조사는 김 후보(39.1%)가 서 후보(36.8%)를 오차범위(±4.4%) 안에서 우위에 있다. 한길리서치센타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반대로 서 후보(44.7%)가 오차범위(±3.7%) 안에서 김 후보(40.5%)를 4.2%포인트 앞선다. 각 조사의 유선전화 비율은 리얼미터 30%, 갤럽은 16.8%, 한길리서치센타 21.8%다. 유선전화 반영 비율이 높을수록 보수층의 여론이 더 표집될 수 있다는 논리대로라면 리얼미터 조사는 서 후보가 앞서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박종희 서울대 국제정치데이터센터장(정치외교학부 교수)은 “유선전화의 비율과 여론조사에 정치적 성향이 반영되는 정도의 상관관계를 찾기는 어렵다”며 “미국 여론조사에서는 유선전화와 여론조사 신뢰도의 상관관계가 드러난 바 있지만 우리와 상황이 달라 이를 직접 대입하는 것은 무리”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여론조사를 할 때 집(유선)전화 비율이 높을수록 흑인 등 소수자 여론을 반영하기 어렵다고 받아들여진다.
‘샤이보수’ 5~10%
말도 탈도 많은 여론조사지만 지지 후보 결정 과정에서 참고자료가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추세’를 읽는 것 외에 해당 조사가 자동응답 방식을 사용했는지 여부(보수층 과대표집 가능성)를 들여다보고, 여기에 ‘샤이보수’와 같은 숨겨진 보수 표심을 감안해서 ‘독해’하는 것을 추천한다.
보수층이 과대표집되는 이유에 대해 업계에서는, 최근 진보 우위의 정치 지형을 고려할 때 전화면접(CATI)보다 자동응답(ARS)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층의 답변이 용이해 보수층 과대표집의 결과로 나타난다고 본다.
박종희 서울대 교수는 “자동응답 방식을 쓰면 보수층 유권자들의 과대표집 결과가 생기는 것은 맞다”며 “유권자들이 여론조사에서 후보별 지지율을 볼 때 해당 조사가 자동응답을 사용했다면 보수 표심이 다른 조사보다 더 반영돼 있을 가능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상일 소장도 “정당별로 진행하는 자동응답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언론사에서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조사원 인터뷰를 한 것보다 민주당과 통합당의 지지율 차이가 줄어드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자동응답의 과대표집 경향에도 불구하고 각 정당은 여전히 비용 등을 이유로 자동응답을 여론조사 방법으로 쓰고 있다.
실제 ‘샤이보수’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이상일 소장은 “2017년 탄핵 직후 스스로를 보수라고 했을 때 문제 있는 집단으로 여겨지는 것을 고려해 응답 자체를 안 하는 부류를 샤이보수로 분류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여권에서는 5%, 야권에서는 10%까지 추산하고 있다. 윤희웅 센터장은 “정권의 중반기를 넘어서 치르는 대부분의 선거에서 야당을 평소에 지지하지 않더라도 여권에 실망한 층이 야당을 도구로 심판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샤이보수라고 규정짓지 않더라도) 사전 여론조사보다 실제 투표 결과에서 야권 프리미엄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유권자들이 깜깜이 선거 기간 중 여론조사를 읽어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하나의 여론조사기관을 정해 해당 기관이 내놓은 조사 결과를 되짚어가며 흐름의 변화를 읽는 것을 추천한다. 격전지라면 언론사에서 주단위 또는 월단위로 한 정기 여론조사도 참고할 만하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