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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신종 감염병…‘검은 코끼리’를 바로보자

등록 2020-04-26 13:21수정 2020-04-26 17:32

윤기영의 원려심모(遠慮深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인 ‘코로나 19’(COVID-19)은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현실로 가져왔다. 신종 플루는 2009년과 2010년에 걸쳐 전 세계에서 15만~57만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2011년 영화배우 맷 데이먼이 출연한 영화 ‘컨테이젼’(Contagion)은 2002~2003년에 유행했던 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에서 영감을 받았다. 2012년엔 아이폰 기반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전염병 주식회사’가 출시돼 세계적 인기를 얻었다. 2013년 우리나라에서 영화 ‘감기’가 개봉되었다. 2015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었던 빌 게이츠는 신종 감염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 전 세계에서 수천만명에 이를 수 있다는 강렬한 경고를 던졌다. 그리고 2019년 코로나19가 발발하면서,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이 봉쇄됐다. 국제통화기금은 올해 세계 경제가 1930년 대공황 이래 최악의 상황에 처할 것으로 내다봤다.

사실 신종 감염병에 대한 경고는 그동안 누차 제기돼 왔다. 하지만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정책 결정자는 많지 않았다. 지난해 말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지역 전염병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낙관했다. 1월 말 중국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9천명이 넘는다고 발표했을 때도 미국의 상무부 장관 윌버 로스(Wilbur Ross)는 “신종 코로나는 미국 일자리를 만들 기회”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석달이 지난 지금 미국의 신종 코로나 확진자는 80만명을 훌쩍 넘겼다. 사망자도 5만명에 육박한다. 현실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 얼마나 근시안적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감염병)은 일어날 가능성은 낮으나, 발생하면 충격이 거대한 돌발 변수(Wild Card)의 한 사례일까? 빌 게이츠의 경고는 신종 감염병이 일어날지 여부가 아니었다. 그의 경고는 전염성도 강하고 치사율도 높은 신종 감염병이 등장 가능성이 100%라는 점이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은 신종 감염병의 등장 여부가 아니라 그 시기였다. 그렇다면 그것은 돌발변수가 아니다. 단지 우리가 감지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

전문가 경고를 외면한 대가…갈수록 짧아지는 발생 주기

그런 면에서 신종 감염병은 ‘검은 코끼리’라고 볼 수 있다. 검은 코끼리란 방안에 코끼리가 들어와 있으나, 그 코끼리를 외면하거나 혹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알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언노운 노운스’(Unknown Knowns)인 셈이다. 전문가의 경고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정부의 정책 결정권자나 기업 최고경영자가 이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직면한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일본 등의 정치 지도자들은 방안에 들어온 검은 코끼리를 보지 못했거나 외면했다. 한국 사회가 지금까지 코로나19 대응에 성공한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 중 하나 꼽을 수 있는 것은 신종 감염병의 발발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해 왔다는 점이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신종 감염병은 검은 코끼리가 아니라, 흰 코끼리였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21세기 들어 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으로 규정한 전염병은 2008년 멕시코에서 첫 환자가 발견된 신종 플루(H1N1)와 2019년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19(COVID-19) 두 가지다. 그런데 세계보건기구의 팬데믹 선언 조건이라 할 ‘2개 지역 3개국 이상에서 발생한 감염병’에 해당하는 것은 이보다 훨씬 많다. 우리가 익히 아는 것만 해도 2002년 사스, 2009년 볼거리, 2012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2015년 지카 바이러스 등이 있다.

새로운 전염병의 등장 주기는 갈수록 짧아지는 추세를 보인다. 그 뒤엔 오늘의 인류와 지구를 관통하는 메가트렌드가 있다. 지구 온난화, 농지 확대, 도시화, 세계화 등이다. 우선 지구 온난화는 영구 동토에서 수만 년 이상 동면하고 있는 병원균과 바이러스를 깨우고 있다. 2015년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에서 탄저균이 노출되었다. 지구 온난화로 영구동토 지역의 얼음이 녹으면서 탄저균에 감염돼 죽은 순록이 노출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됐다. 지구 온난화는 신종 감염병에 동물이 노출될 가능성을 더욱 높일 것이다. 팬데믹 1단계다. 21세기 들어 인구 증가는 지속되고 있으나, 식량 생산성 증가가 둔화되고 있다. 거기에 더해 절대 빈곤 인구가 줄어들고 세계적으로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식량 수요가 늘었다. 이로 인해 농지 확대가 필요해졌다. 이는 동물과 인간의 접촉 가능성을 높인다. 팬데믹이 2단계와 3단계로 진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현재 전 세계에서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의 비율은 55%에 이른다. 현대 인류의 삶에서 도시는 성장과 삶의 질을 높여주는 기반이다. 도시화는 갈수록 더 확산될 것이다.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인구 1천만명이 넘는 초거대 도시도 늘고 있다. 인구가 밀집된 거대 도시는 전염병이 확산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다. 4단계에 해당한다. 여기에 세계화가 사람과 물류의 국경간 이동을 높인다. 팬데믹 5단계와 6단계의 연결고리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는 다른 사회

코로나19로 인해 신종 감염병은 이제 ‘검은 코끼리’ 신세를 벗어났다.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를 예상한다. 계절성 독감처럼 만성 질환으로 자리잡을 가능성까지 점친다. 인류는 이번 사태로 신종 감염병이 언제든 닥칠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코로나19를 겪은 후의 인류 사회는 그 이전의 인류 사회와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새로운 사회엔 새로운 규칙이 들어서야 한다. 일부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의 트라우마로 앞으로 도시화, 세계화 흐름이 약해질 것이라고 본다. 요즘 ‘뉴노멀 2.0’(New Normal 2.0)이 거론되는 이유다. 2007년과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등장한 뉴노멀이 10여년만에 또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은 셈이다. 새롭게 맞을 뉴노멀이 과연 무엇인지, 과연 뉴노멀이라 부를 만한 변화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될 것이다. 세계화만 하더라도 디지털 기술은 세계화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개 양식을 변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신종 전염병에 대응하려면 오히려 세계화의 약화가 아니라 더욱 전면적인 범세계 차원의 협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도시화의 흐름도 마찬가지다.

신종 전염병의 주기적 등장을 전제로 그에 따른 정치, 경제, 사회의 변화 가능성을 원려(遠慮)하고 대안미래를 심모(深謀)해야 할 때다. 이미 방 안에 들어와 있으나 외면해온 ‘검은 코끼리’를 이제 바로 보아야 한다. 지구 온난화, 경제 양극화, 기대수명 증가 등 두 눈을 부릅뜨고 정면으로 응시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윤기영/한국외대 경영학부 미래학 겸임교수·에프엔에스 미래전략연구소장

synsaj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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