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기들, 에어로졸 다량 방출...배치 바꾸니 감염 위험 ‘뚝’
실내 공기에 의한 감염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오케스트라 악기 배치 연구 결과가 나왔다. 유튜브 갈무리
동그라미 크기는 에어로졸 방출량을 가리키며, 빨간색은 방출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다.
트럼펫이 에어로졸 방출량 가장 많아 서서히 일상 복귀를 향해 가고 있는 지금, 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는 것 말고도 오케스트라 공연장의 실내 감염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또 없을까?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의 유타대 연구진이 교향악단의 악기 배치를 바꾸면 감염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지난해 여름 연구진이 유타 심포니로부터 안전하게 연주회를 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문의를 받은 것이 계기가 돼 시작됐다. 연구진은 우선 유타 심포니가 공연하는 솔트레이크시티 두 연주회장의 컴퓨터 모델을 만들고 통풍구 위치와 공조 시스템의 공기 흐름 속도를 기록했다. 그런 다음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악기들의 위치 지도를 작성했다. 오케스트라의 악기 배치에 정해진 규칙이 있는 건 아니다. 관행상 맨 앞쪽엔 현악기, 그 다음엔 목관악기와 금관악기, 그리고 맨 뒤엔 트롬본과 타악기가 자리한다. 그동안 유타 심포니도 이런 관행에 따라 악기를 배치해 왔다. 연구진은 관악기에서 방출되는 에어로졸 입자 농도와 크기 데이터는 미네소타대의 연구 결과를 채용했다. 국제학술지 `에어로졸 사이언스' 1월호에 발표된 미네소타대 연구에 따르면 관악기 중 에어로졸을 가장 많이 퍼뜨리는 것은 트럼펫, 베이스 트롬본, 오보에다. 트럼펫은 리터당 2500개 입자를, 오보에는 리터당 400개의 입자를 방출한다. 연구진이 이런 매개 변수들을 모두 집어넣어 연주회장에서의 공기와 에어로졸 흐름을 모의실험한 결과, 연주회장의 공기 흐름 패턴이 뚜렷이 드러났다. 우선 연주회장 무대의 환기 시스템은 천장의 흡입구에서 공기가 들어와 무대 뒤 바닥의 배출구로 빠져나가는 공기 흐름을 유발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무대 앞과 뒤에 각각 공기 소용돌이가 형성됐다. 소용돌이가 형성되면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질 못한다. 문제는 악기에서 배출된 에어로졸이 이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었다. 특히 에어로졸 방출량이 가장 많고 방출 속도도 가장 빠른 트럼펫에서 나온 에어로졸이 맨뒷줄 타악기 연주자의 호흡구역을 직접 통과했다.
동그라미 크기는 에어로졸 방출량을 가리키며, 빨간색은 방출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다.
문 열고 악기 위치 바꿨더니 입자 수 100분의1로 연구진은 연주자 위치를 바꾸는 모의 실험을 했다. 일단 트럼펫을 무대 뒤쪽 통풍구 바로 옆으로 옮겼다. 그런 다음 무대 중앙에 있던 다른 관악기를 뒤쪽 통풍구나 무대 출입문에 더 가깝게 이동시켰다. 문은 열린 상태로 놓아두었다. 이렇게 하면 에어로졸이 다른 연주자의 호흡구역을 통과하거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그대로 연주회장 밖으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연구를 이끈 토니 사드 교수(화학공학)는 이를 "흡연자를 창문 가까이 앉히는 것”에 비유했다. 마지막으로 에어로졸 발생과 전혀 관련이 없는 피아노와 타악기들은 무대 중앙으로 옮겼다. 연구진은 악기들을 이렇게 재배치한 결과 연주자 호흡 구역의 평균 에어로졸 농도가 100분의 1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공기 1리터당 에어로졸 입자 수가 0.01~1개에서 0.001개 이하로 줄었다. 원리는 사실 간단하다. 에어로졸을 많이 내뿜는 악기를 출입문과 환기구 근처에 배치하는 것이다. 문제는 연주자들이 위치를 옮기는 것에 동의하느냐다. 연구진은 그게 어렵다면 대안으로 악기의 공기 배출 부분에 마스크를 씌우는 것을 제안했다. 국제학술지 ‘에어로졸 사이언스’ 9월호에 발표된 미네소타대 연구진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트럼펫 나팔 부분에 홑겹 직물 마스크를 씌울 경우 에어로졸 방출량이 60%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 닫고 애초 위치대로 연주할 때(왼쪽)와 문 열고 악기 위치 바꾼 뒤(오른쪽)의 에어로졸 흐름과 연주자 구역의 입자 농도. 유타대 사드 교수 유튜브 갈무리
조언대로 바꿔 공연 재개…“삶을 바꿔줬다” 유타 심포니는 연구진의 조언을 충실히 따랐다. 지난해 가을 연주회부터 무대 출입문을 열고 트럼펫, 클라리넷 등 관악기를 뒷줄로 옮겼다. 피아노, 하프, 타악기는 무대 중앙 쪽으로 이동했다. 연주자들이 새로 배치된 자리에 익숙해지는 데는 몇주가 걸렸다고 한다. 유타 심포니는 상황이 정상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올 가을 무대에서는 다시 전통적인 악기 배치로 돌아갈 계획이다. 그러나 유타 심포니 대표인 스티븐 브로스비크는 ‘뉴욕타임스’에 “모의실험 연구가 음악가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고, 무대로 돌아올 수 있게 해줬다”며 “그것은 우리의 생활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무대의 공기 흐름을 컴퓨터 모델로 시뮬레이션할 수 없을 땐 어떻게 연주회장의 공기흐름을 확인할 수 있을까? 연구진은 무대에 안개 분사 장치를 설치하고 안개를 뿌린 뒤 이 안개가 어떻게 흐르는지 살펴볼 것을 권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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