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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우유 섭취가 신석기 북유럽인의 키를 늘렸다

등록 2023-02-13 10:00수정 2023-02-13 11:16

지중해 연안서 전파된 농작물
서늘한 유럽 기후에 적응 못해
식량 부족하자 우유 섭취 시작
빙하기 이후 작아졌던 키 역전
신석기시대의 유럽인들은 우유 섭취를 계기로 몸집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픽사베이
신석기시대의 유럽인들은 우유 섭취를 계기로 몸집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픽사베이

인류는 1만2천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는 것과 함께 수렵채집 생활을 벗어나 한 곳에 정착해 경작 생활을 하는 신석기시대를 열었다.

1만4500년~1만1600년전 그리스, 시리아, 이집트를 포괄하는 지중해 동부연안(레반트) 지역에 살던 고대인(나투피안)은 가장 먼저 농경 문화를 일군 집단 가운데 하나다. 빵을 만들어 먹은 흔적과 곡물, 맷돌, 돌 구조물 등 이를 뒷받침하는 유물들이 이 지역에서 발견됐다. 이들은 농사와 함께 이동과 노동의 도구로 또는 식용을 위해 양이나 소, 낙타 같은 가축도 기르기 시작했다.

나일강 유역에선 7500년 전, 중국에선 1만300년~8700년 전에 기장을 재배한 증거가 나왔다. 남아시아에선 9천년 전 아주 초기의 도기와 쌀이 발견됐지만 본격적인 농업은 그로부터 4천년이 지나 서유라시아와 중국에서 작물이 전파된 뒤 시작됐다.

정착 농경 생활과 함께 부양해야 할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만성적 식량 부족 현상이 일어났고, 이는 키와 몸집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게 그동안의 정설이었다.

그러나 캐나다 웨스턴대가 중심이 된 국제 공동연구진이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새로운 연구 가설에 따르면 키가 작아지는 경향은 마지막 최대 빙하기(2만6000년~2만년 전)에 추위와 가뭄으로 식량이 부족해지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유럽 등 일부 지역에서 우유를 섭취하기 시작하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연구진은 지금으로부터 3만년 전 사이의 지중해 동부 연안과 유럽 남부-중부-북부, 나일강 유역, 남아시아, 중국의 7개 지역 366개 고고학 유적지에서 발굴한 3507개 유골을 분석해 키와 몸무게를 추정하고, 이를 농업 및 목축 전파 시기와 비교했다.

3만년 전 시작된 키 감소…농업으론 흐름 못바꿔

우선 유골 분석 결과 이들 지역의 평균 키는 3만년 전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8000년~6000년 전에 저점을 찍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업의 확산은 키와 몸무게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흐름을 역전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다 중·북부 유럽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중부 유럽에서는 7000년~4000년 전, 북부유럽에서는 8000년~2000년 전에 사람들의 키가 커지기 시작했다. 몸무게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연구진은 이는 약 9000년 전 서아시아에 시작돼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한 우유 또는 유제품 생산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중부 유럽에선 최소 7400년 전부터 목축이 시작됐다. 이 시기에 우유 섭취를 통해 더 많은 영양을 얻을 수 있게 되면서 키와 몸무게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중·북부 유럽인들이 우유를 섭취하게 된 계기는 서아시아에서 전파돼 온 작물이 유럽의 서늘한 기후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식량이 부족하자 사람들은 치즈, 요거트를 만들어 먹을 여유도 없이 생우유를 직접 섭취하기 시작했다. 치즈 등 유제품엔 유당 성분이 적지만 생우유엔 유당이 많다.

원래 유당을 분해하는 효소인 락타아제 생산 관련 유전자는 젖을 먹는 유아기가 지나면 비활성 상태가 된다. 따라서 처음엔 생우유를 먹고 탈이 나는 등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점차 성인기에도 유당을 소화시킬 수 있는 락타아제 지속성(LP) 유전자 변이가 확산되는 자연선택이 일어났다. 연구진은 이로 인해 이 지역 사람들의 키와 체중이 다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요르단 북부의 염소와 목동. 웨스턴대 제공
요르단 북부의 염소와 목동. 웨스턴대 제공

북유럽인이 남유럽인보다 키가 큰 이유

발트해 연안위생이 열악한 환경에서 부족한 영양 보충을 위해 우유를 마시게 되자, 유당을 소화할 수 없는 사람은 여러 질병에 노출돼 자연스레 도태됐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그 영향으로 현재 유럽 북부 사람들은 남부 사람들보다 락타아제 지속성 유전자를 많이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영국 브리스톨대 연구진은 기근이 유당 소화 유전자의 확산을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해 발표한 바 있다.

연구를 이끈 제이 스톡 박사는 “락타아제가 유럽인의 키를 키웠다는 걸 증명할 수는 없지만 설득력은 있다”며 “키가 커지는 시기와 지역이 유당 소화력을 갖추게 된 시기가 일치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특히 북유럽의 발트해 연안과 스칸디나비아반도 남부 지역에서 키와 몸무게가 가장 뚜렷하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다만 북유럽 내에서 영국은 변화 폭이 가장 적었다.

성인 인구 중 유당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의 비율. 위키미디어 코먼스
성인 인구 중 유당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의 비율. 위키미디어 코먼스

키가 큰 마사이족의 오랜 우유 섭취 문화

연구진은 그러나 지중해 동부 연안 지역과 중국처럼 목축과 농업이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공존한 지역에선 키와 몸무게가 거의 변하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됐다고 밝혔다. 이들 지역에선 소나 양, 낙타의 젖을 짠 뒤 주로 유당이 적은 요거트, 치즈 같은 유제품으로 만들어 섭취했다.

그동안의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성인 인구 중 유당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은 10명 중 3명에 지나지 않으나 북유럽인은 그 비율이 90%를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아시아에선 성인 대다수가 유당 소화 인자를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진은 아프리카 부족 중 유난히 키가 큰 동부 아프리카의 마사이족이 우유를 주식으로 삼아 온 오랜 전통 문화를 갖고 있는 것도 ‘락타아제 성장 가설’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꼽았다.

연구 데이터를 제공한 영국 퀸즈유니버시티 벨파스트의 외인 파킨슨 박사(고생물학)는 “큰 키를 갖고 싶으면 우유를 마시라는 말을 어린 시절 들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이것을 우리 자신의 진화 이야기라는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73/pnas.2209482119

Long-term trends in human body size track regional variation in subsistence transitions and growth acceleration linked to dairying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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