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 수내동 롯데백화점 분당점 식품매장에서 지난달 22일 오전 한 고객(오른쪽)이 '스마트쇼퍼'를 이용해 살 물건의 바코드를 읽고 있다. '스마트쇼퍼'를 이용하면 쇼핑수레없이 물건을 구입해 배송까지 신청할 수 있다. 성남/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차 산업혁명의 증기기관부터 2차 산업혁명의 전기, 3차 인터넷까지 기술은 인간을 도와 삶의 질을 비약적으로 높여왔다. 인공지능과 유전자 재조합 등 기술의 융복합 발전으로 정의되는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을 도울 뿐 아니라 일부 영역에서 우리를 뛰어넘으며 인간의 전통적 역할을 바꾼다는 점에서 ‘인간 혁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를 눈앞에 둔 2017년을 맞아 우리 사회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인간의 노동부터 혁신의 조건까지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를 두루 짚는 기획을 마련했다.
■ ‘스마트 쇼퍼’ 사용해보니
그것은 혁명이었다. 직장인 곽지은(38)씨는 지난달 22일 오전 11시께 집 앞 롯데백화점 식품매장을 찾았다가 박물관의 오디오 가이드처럼 생긴 기기들이 흰색 선반에 가지런히 꽂힌 모습을 보았다.
“‘스마트 쇼퍼’를 한번 써보시겠어요?” 안내 직원이 권했다. 선반 중앙 안내 화면에 멤버십 카드를 인식시키자, 기기 하나에 불이 들어왔다. 직원이 “이것은 바코드 스캐너입니다. 이것을 들고 다니면서 쇼핑을 하시면 돼요”라며 건네줬다. 매장을 다니며 스캐너로 사고 싶은 물건의 바코드를 읽기만 하면 제품은 가상의 구매목록에 담겼다. 쇼핑 카트나 바구니에 번거롭게 물건을 담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계산대에 길게 선 줄을 기다리던 일도 끝이다. 쇼핑이 끝나면 스캐너를 반납하면서 구매목록을 확인하고 결제 버튼만 누르면 모든 게 끝났다. 물건은 오후 1시 집으로 배송됐다. 곽씨는 “너무 편리해요. 이건 기존 쇼핑을 대체할 것이 분명해요”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에스케이(SK)텔레콤과 협업해 지난해 10월 국내 처음으로 경기 분당점에 ‘스마트 쇼퍼’를 도입했다. 회사는 지금까지 대만족이다. 한 달 사이 하루 평균 이용객이 30명에서 50명 수준으로 훌쩍 늘었고, 자체 조사 결과 한 번 쓴 사람이 다시 쓰는 경우도 80%에 이른다고 한다. 고객 편의와 재미라는 마케팅 효과가 당장은 가장 크지만, 업체의 목표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백화점 관계자가 말했다. “최근 미국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이 완전 무인 매장 ‘아마존 고’를 열었죠. 스마트 쇼퍼는 그 목표로 나아가는 하나의 단계입니다.”
무인 매장, 무인 공장, 무인 운전…. 사람의 힘이 필요 없는 자동화 기술은 인터넷 확산과 더불어 우리 삶 속으로 거침없이 행진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전에 없던 서비스, 생각지 못한 싼 제품의 풍요를 누린다. 문제는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의 속도가 너무 빠르면 우리 사회가 감당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기술과 고용에 관한 마틴 프로그램’ 분석을 보면, 21세기 들어 이전 세기 없었던 새로운 산업 분야에서 일하는 미국의 노동자는 고작 0.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대에는 8%, 90년대에는 4.5%가 새로 만들어진 산업에서 일자리를 구한 것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 2025년, 10명 중 7명 고용 위협
2일 <한겨레>가 입수한 한국고용정보원의 ‘기술변화에 따른 일자리 영향 연구’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위험은 다른 나라들에 뒤지지 않는다. 보고서는 기술 대체 효과로 인해 2025년 우리나라에서 1800만명, 약 70%의 노동자가 일자리에 위협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분야 대표적인 연구로 꼽히는 옥스퍼드대학교의 칼 프레이와 마이클 오즈번의 2013년 연구에서, 둘은 미국 직업 가운데 47%가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고 발표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기술의 부상으로 2020년까지 세계 전체 일자리 가운데 510만개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진은 글쓰기, 말하기, 정교한 동작 등 일에 필요한 기능을 44개로 세분화한 뒤, 기능별로 로봇이 인간을 어느 수준으로 따라잡을지 국내 전문가 21명에게 물었다. 그리고 직업별로 요구되는 44개 기능의 수준과 응답을 서로 비교하여 직업별 위험 수준을 구했다. 이번 조사에서 ‘대체 위협을 받는다’는 의미는 기능적으로 로봇이 인간을 대신할 수준이 되기 때문에, 고용자가 사람 대신 로봇을 고용해도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단, 전문가의 기술 예측이 실제와 다를 수 있고, 기업의 로봇 도입 비용이 인건비보다 비쌀 경우 실제 도입은 더 늦춰질 수 있다.
대형마트 홈플러스에서 일하는 권아무개(56)씨는 해가 갈수록 직장 동료들이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누군가 일을 그만두면 회사에서는 “뽑아 주겠다”고만 하고 충원은 해주지 않는 탓이다. 빈자리는 신기술이 채운다. 계산대가 우선 변했다. 홈플러스는 소비자가 직접 기계에 제품 바코드를 읽혀 결제하는 무인 계산대를 운용하고 있다. 점포당 6대꼴인 무인 계산대에는 안내 직원 1명을 둔다. 대신 이 기계 도입으로 계산원은 3명가량 줄었다. 권씨는 지난달 21일 인터뷰에서 “우리 마트는 고객이 모바일에서 주문하면 직접 장을 보는 전자상거래팀이 아직 따로 있는데, 이마트가 얼마 전 사람 손을 거치지 않는 물류센터 직배송을 도입했더라고요. 장 보는 사람은 언제 사라질지 몰라 걱정이죠”라고 말했다.
이는 지역과 직종을 가리지 않고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수많은 젊은이가 일하는 세계적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맥도날드는 주문받는 직원을 대체할 무인 판매대를 도입 중이다. 바둑 최고수 이세돌을 누른 인공지능은 의사, 변호사, 자산운용가, 기자, 일반 사무원까지 광범위한 직종의 업무를 넘보고 있다.
■ 단순노무·농림어업·서비스 종사자에 더 큰 충격
그러나 미래 충격은 공평하게 오지 않는다. 고소득층보다 소득수준 중하위의 서민층에 먼저 집중될 전망이다. 고용정보원 분석에서 비슷한 직업들을 묶은 대분류별로 2025년 대체 위험을 보면, 가장 큰 직종은 ‘단순노무 종사자’로 90%가 위험에 직면한다. 다음은 농림어업 숙련종사자로 86%가 해당한다. 그밖에 식당 종업원이나 미용사 같은 ‘서비스 종사자’, 건설 기술자 등이 속한 ‘기능원 및 관련 기능 종사자’가 대체 위험 70%가 넘는 고위험군에 속했다. 반면 국회의원, 최고경영자 등의 ‘관리직’(49%), 교수·의사 등이 속한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56%) 등은 안전한 편에 속했다.
직업이 사라진다면 살아남을 다른 일자리로 재교육을 받고 옮기는 것이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이다. 이번 조사에서 기술은 신체적 능력(7점 만점 가운데 4.6)을 가장 높은 수준으로 대체하고 대인능력(4.22), 기술능력(3.97)에서 대체 수준이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저소득층은 이런 기술을 요구하는 직업으로 바꾸기 위해 대응할 여력이 적다.
권씨는 하루 업무를 마치면 다른 일을 하기 어렵다고 한다. “죽을 듯이 일하거든요. 예전엔 호스피스 일 등에 관심이 있었는데 지금은 배울 엄두가 안 나죠.” 홈플러스노동조합이 조합원들에게 만보기를 주고 하루 움직이는 양을 측정한 적이 있는데, 적게는 1만보(약 7㎞)에서 많게는 2만보까지 달하는 노동자도 있었다고 한다. 노동 시간을 줄일 형편도 아니다. 남편을 잃고 홀로 두 자녀를 키운 권씨는 집안의 가장이다. 비정규직으로 최저 시급 수준의 임금을 받지만, 이는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수입이다. 노조 조사 결과 여성 노동자가 많은 대형마트임에도 불구하고 57% 넘는 노조원이 집안 수입의 절반 이상을 자신이 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 “사회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개인이 아닌 사회가 해법을 마련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달 20일 ‘인공지능, 자동화 그리고 경제’라는 보고서를 내고 인공지능 시대에 일자리 정책이 핵심임을 밝혔지만, 우리 정부에선 성장 동력을 강조하면서 일자리는 부록처럼 다뤄지는 형편이다. <로봇의 부상>을 쓴 실리콘밸리 공학자 마틴 포드는 <한겨레>와 지난달 말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고용보험과 의료 복지 같은 사회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개인이 각자 대안을 찾을 때까지 단기적으로 사회가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장기적으로는 기술 대체로 인한 중산층의 붕괴는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기본소득(국가가 개인의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정보원 박가열 연구위원은 일괄적인 소득 보장보다 개인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도록 하는 인센티브 제도를 국가가 도입하고, 자동화 기술의 수혜자가 될 기술기업들이 성과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안을 제시했다. “앞으로 가계가 잃는 부는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을 선점하는 기술기업들에 집중될 가능성이 큽니다. 위협이 빠르면 10년 앞으로 다가온 만큼 사회가 지속 가능하도록 이런 성과를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와 논의를 시작할 시점입니다.”
권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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