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훼손된 탐방로 모습. 탐방객들이 많이 지나다니며 길 바닥을 다져놓는 바람에 시작된 쇄굴현상으로 탐방로가 넓고 깊게 파여 있다. 사진은 치악산국립공원 황골~향로봉 구간에 있는 탐방로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국립공원은 공원구역을 지나는 도로에 의한 생물 서식지 단절, 야생동식물 불법 채취와 밀렵, 등산로가 아닌 샛길 탐방에 의한 식생 훼손, 공원 주변의 도시화에 따른 생태적 고립 등 다양한 위협에 항상 노출돼 있다. 국립공원의 온전한 보전을 위협하는 여러가지 위협 요인 가운데 많은 전문가들이 핵심적 위협으로 꼽는 두 가지는 탐방객 증가와 공원을 대상으로 한 개발사업 욕구다.
2006년까지 2000만명대에 머물던 국립공원 탐방객은 2007년 공원 입장료가 폐지되면서 3000만명대로 급증했다. 다시 3년 만인 2010년에는 4000만명을 돌파하고 지난해에는 4435만여명을 기록했다. 북한산과 무등산과 같이 대도시를 낀 국립공원은 휴일마다 몰리는 탐방객들로 탐방로가 비좁을 정도이고, 설악산이나 내장산과 같은 다른 공원들도 단풍철만 되면 몸살을 앓는다. 습지보호지역이나 산림보호구역과 같은 다른 보호구역과 달리 국립공원에는 생태 보전뿐 아니라 공중의 휴식과 여가활동 장소로서의 역할도 중요시된다. 이에 따라 늘어난 탐방객을 수용하기 위해 2007년까지 총연장 1122㎞였던 탐방로는 2016년 1898㎞로 10년 만에 70%, 776㎞나 늘어났다.
탐방로는 개설할 때 자연훼손을 수반하고 설치된 뒤에는 생태계를 파편화시킨다는 문제가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난 4월 ‘국립공원 50주년 기념 미래포럼’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탐방객이 가장 많은 북한산국립공원은 정규 탐방로 외에 300개가 넘는 샛길 등으로 605개 조각으로 나뉘어 한 조각의 평균 면적이 두더지의 행동권(2㎢)보다도 좁은 0.13㎢에 지나지 않는 상태다.
사람들이 몰리면 좁았던 탐방로는 점점 넓어지며 주변 식생지역까지 침범하게 된다. 사람이 디딜 때의 답압으로 물이 스며들 수 없게 다져지면 비가 조금만 와도 쉽게 패어 나가면서 주변 식물의 뿌리까지 노출시키게 된다. 이렇게 훼손된 탐방로는 어느 국립공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해마다 훼손 탐방로 복구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나 제주도가 관리하는 한라산국립공원을 뺀 21개 국립공원에 아직 247㎞가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윤주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처장은 “10년 전 공원 입장료를 폐지할 때 고산지대와 같이 생태적으로 취약한 지역의 경우 탐방객 수를 조절하기 위한 탐방예약제와 별도의 부담금을 물리는 제도가 병행됐어야 했는데, 입장료만 폐지해 탐방객이 급증하게 만든 것이 국립공원 보전의 위협요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우 상지대 교수(관광학)도 “고지대에 오르려는 성향 때문에 탐방객들이 국립공원에서도 특히 생태적 가치가 높은 자연보존지구로 몰리고 있다”며 “국립공원에 가장 큰 위협은 인간”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이 국립공원 보전의 가장 큰 위협요인으로 꼽는 또 한 가지는 크고 작은 개발사업들이다. 국립공원을 돈벌이와 지역경제 활성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지역의 경제계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의해 국립공원은 자연보존지구와 같이 가장 깊숙한 곳조차 개발 압력으로부터 안심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설악산에서 추진돼 오랫동안 논란을 빚었던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단적인 예다. 이 사업은 부실한 환경영향평가, 경제적 타당성 조작 등 온갖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국립공원위원회까지 통과했으나, 문화재위원회의 심의에서 제동이 걸려 있는 상태다. 하지만 여전히 지역에서는 행정심판을 제기하는 등 포기하지 않고 있어 논란이 매듭지어진 것은 아니다.
지난 정부에서는 지자체뿐 아니라 정부도 산악관광 활성화를 내걸고 각종 규제 완화 방침을 밝혀 국립공원에 대한 위협이 더욱 가중됐다. 새 정부에서도 안심할 수는 없다. 선거철은 국립공원을 이용한 개발이 숙원인 국립공원 주변 지역에는 개발사업을 약속받을 수 있는 호기인 반면 국립공원은 불안에 떨어야 하는 순간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전북 지역에 지리산권 친환경 전기열차 사업 지원, 전남 지역에 서남해안 관광 휴양벨트 조성을 통한 경제 활성화, 경남 지역에 남해안 동북아 해양관광 중심지 육성 등을 약속했다. 지리산국립공원과 남서해안의 해상·해안국립공원들이 위협으로 느낄 수도 있는 공약들이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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