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로 야기된 남극 대륙 빙하의 해빙은 역설적으로 지구 온난화를 늦추는 반면 해수면 상승은 촉진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남극 대륙 빙하가 녹으면 전지구 기온은 오히려 내려가 온난화 진행 속도가 예측보다 늦춰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온난화로 녹은 빙하가 온난화를 늦추는 역설적인 현상이어서 주목된다.
미국 애리조나대학 연구팀은 최근 <네이처>에 게재한 논문에서 “남극 대륙 빙하가 녹아 찬물이 유입되면 해양의 온도가 낮춰지고 전지구 기온을 0.4도 정도 낮춘다. 이는 파리협약에서 제시한 1.5도와 2.0도에 도달하는 시점을 10여년 늦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남극 대륙 연해의 수면 아래 바닷물 온도를 높여 빙상의 해빙을 촉진하고 결과적으로 해수면 상승을 초래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논문 제1저자인 애리조나대 지구과학부 박사후과정 연구원 벤 브론셀레어는 “그동안 남극 대륙 빙하의 해빙이 미래의 기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연구한 사례는 없었다. 또 현재의 기후모델들은 대륙 빙하의 해빙이 전지구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포괄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구 전체가 더욱 온난화해질 것이지만 해양이 흡수하는 열이 더 많아 대기는 상대적으로 천천히 데워진다. 따라서 온난화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빨리 진행되지 않을 것이지만 해수면 상승은 예상보다 빨리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른 과학자들은 흥미로운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구가 하나의 기후모델에 기반하고 있고 남빙양과 남극대륙이라는 특정 지역에 한정해 분석하고 있다는 점을 한계로 짚었다. 이들은 다른 모델들에 기반한 분석과 그린란드 빙상의 해빙 등도 조건에 넣은 분석을 보완하면 빙하의 해빙이 지구 기후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기후모델에 남극 빙하 해빙 변수로 삽입
남극 대륙 빙하는 최근 몇년 사이 더 빠르게 녹고 있는 것이 관찰되고 있다. 하지만 기후학자들은 남극 대륙 빙하의 해빙이 단지 해수면 높이에만 영향을 줄 뿐 전체 기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왔다. 연구팀은 남극 대륙 빙하의 해빙이 지구 기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분석하기 위해 가장 최신의 기후모델에 빙하 해빙 요소를 첨부해 변형시켰다. 현재 기후모델인 ‘접합 대순환 모델 5’(CMIP5)는 빙상과 빙붕의 해빙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은 변수로 포함하고 있지 않다. CMIP5는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공동으로 설립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서 진행중인 ‘접합 대순환 모델 상호 비교 사업’에서 기후예측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전지구 대기모형이다. 다음 버전인 제6세대 모델(CMIP6)에도 포함될 계획이 없는 상태다. 선행 연구들에서 그린란드 빙상의 해빙을 전지구 기후 모델에 변수로 넣은 경우는 있지만 남극 대륙 빙상의 해빙을 변수로 넣은 경우는 없었다.
벤 브론셀레어는 노아의 지구물리 유체역학 실험실(GFDL) 모델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현재처럼 유지할 경우 2100년에 940ppm이 되는 상태’인 대표농도경로 8.5(RCP8.5) 시나리오일 때의 남극 빙하 해빙 예측치를 변수로 넣어 분석했다. 연구팀은 남극 빙하가 녹은 물을 변수로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하며 여러 차례 모델을 가동시켰다. 분석 기간은 1950년부터 2100년으로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기후의 자연변동의 불확실성이 미치는 영향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해빙수(빙하가 녹은 물)가 끼치는 효과만을 추출해냈다. 브론셀레어와 논문 공저자인 애리조나대 지구과학부 조엘렌 러셀 교수는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연구팀은 남극의 빙하가 녹은 물이 전지구 기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
전지구 온도 0.4도 낮아져
위 그림은 남극 빙하의 해빙수를 기후모델의 변수로 포함했을 때 2080~2100년에 지역별로 기온이 얼마나 더 낮아지는지를 나타낸다. 아래 그림은 기존 기후모델로 예측한 전지구 기온의 변화(ESM2M RCP8.5)와 해빙수를 변수로 포함했을 때의 기온 변화(RCP8.5+ice melt)이다. 제공
연구팀은 모델 변수에 남극 해빙수를 포함할 경우 전지구적으로나 국지적으로나 기온 변화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전지구 온도는 해빙수를 포함하지 않았을 때의 모델 값에 비해 21세기 하반세기에 약 0.4도까지 낮아졌다. 해빙수 유입에 의한 냉각의 대부분은 남빙양과 남극 주변에 집중됐다. 남반구의 다른 일부 지역과 북극 지역의 냉각도 눈에 띈다.
특히 해빙수에 의한 전지구 기온은 21세기 초반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2025년까지는 전지구 기온의 차이가 모델의 오차 범위 안에서 발생하지만, 2055년까지 모델은 0.4도 차이가 나고 21세기 말까지는 그 이상의 차이가 유지된다. 연구팀은 지구 온도가 섭씨 2도(화씨 3.6도)까지 증가하는 시점이 2053년이 아니라 2065년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다만 연구팀은 온실가스가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배출됐을 때 곧 대표농도경로8.5(RCP8.5)를 가정한 것이어서, 다른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에서도 같은 경향을 보일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남·북반구 강수량에도 영향
해빙수를 포함한 모델은 남극 빙하 해빙이 전지구의 강수에도 영향이 미치는 것으로 전망했다. 남빙양에서의 차가운 해빙수 유입이 적도 부근 양반구 무역풍 사이의 저압대인 열대수렴대(ITCZ)의 이동에 영향을 줘서이다. 러셀 교수는 “열대수렴대가 북반구 쪽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북반구는 이전에 예측한 것보다 더 습해진다는 것을, 남반구는 더 건조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린란드 빙상의 해빙을 다룬 선행연구들에서도 강수량의 증가가 예측됐지만 열대수렴대가 남쪽으로 이동해 북반구가 상대적으로 냉각되는 것으로 나왔다. 이번 연구는 남극 해빙수만을 다뤘기 때문에 남극과 북극 모두를 변수로 넣었을 때 강수량의 변화에 대해서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팀은 남반구 강수량의 감소는 오스트레일리아 등 남반구 지역에서 농업과 물 공급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해수면 예상보다 25㎝ 더 상승
해빙수에 의해 남빙양 표층 아래 바닷물은 따뜻해지고 표층수는 차가워지는 원리를 나타낸 모식도. 왼
연구팀은 남극 빙상의 해빙으로 대양에 많은 물이 더해졌을 때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도 분석했다. 얼음이 녹은 물은 차가운데다 담수는 염수보다 밀도가 낮기 때문에 표층 쪽에 쌓인다. 이것은 남극 대륙 연안에서 바닷속 따뜻한 물과 표층의 차가운 물이 섞이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어, 표층수는 더 차갑게 하고 표층 아래의 물은 더 따뜻하게 한다.
표층의 냉각수 축적은 남극 대륙 연안의 바다얼음(해빙) 형성을 촉진한다. 해빙수 변수가 배제된 모델들은 21세기 내내 남극의 바다얼음이 감소하는 것으로 모사하는 반면 해빙수를 변수로 넣었을 때 2050년까지는 바다얼음이 증가하다 이후 감소하는 것으로 나온다. 해빙수 모델에서는 2100년께 남극 바다얼음이 지금 수준 정도 되는 반면 해빙수를 배제한 모델에서는 지금 수준에서 10% 줄어드는 것으로 나온다.
해빙수의 증가는 또한 표층 아래의 바닷물을 데우는 구실을 하는데, 그곳에서 바닷물이 빙붕과 직접 만난다. 이것은 꼭대기의 차가운 해빙수가 남극 대륙 연안의 깊고 따뜻한 물과 섞이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런 온난화는 따뜻한 바닷물이 표층 아래에서 해빙을 촉진해 더 많은 해빙수를 만들고 표층 아래 바다의 온난화를 가속시킨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런 되먹임은 이전에 빙상의 해빙을 예측할 때 고려되지 않은 점이다. 연구팀은 2100년까지 해수면이 이전 모델로 예측한 76㎝보다 25㎝는 더 높아져 1m까지 상승할 것으로 분석했다.
러셀은 연구 결과에 대해 “해양의 순환이 열을 적도에서 극 지역으로 이동시키고 열이 극 지역에서 대기에 발산되는데, 빙하가 녹은 물이 남극 대륙 주변 해양의 뚜껑처럼 작용해 열의 확산을 늦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그는 이런 현상을 놓고 “20년 만에 새로 발견된 ‘기후의 반격’이다. 남극 대륙 빙하의 해빙은 지구 온난화를 늦춰 우리에게 15년의 기회를 선사한다”고 표현했다.
남극 대륙은 강한 바람에 물결무늬 모양을 한 단단한 눈의 융기부 곧 사스트루기로 덮여 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제공
이번 연구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와 항공우주국(NASA), 해양대기청(NOAA)이 공동 지원하는 ‘남빙양 해양 탄소와 기후 관측 및 모델링’(SOCCOM) 프로젝트의 하나로 진행됐다. 러셀은 SOCCOM을 이끌고 있다. SOCCOM의 다른 연구팀은 남빙양에 온도와 염도, 생화학적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로봇 부이를 설치했다. 러셀은 “다음 연구는 SOCCOM 부이로부터 수집된 정보를 근거로 기후모델들을 평가해 모델들이 놓쳤을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