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판과 대륙판이 충돌하는 현상이 대빙하기를 촉발한다는 새로운 가설이 제기됐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제공
지구가 겪은 최근의 세 차례 대빙하기는 ‘대륙 충돌’에 의해 촉발됐다는 가설이 제시됐다.
5억4000만년 현생대의 75% 기간에는 지구의 북극과 남극에 얼음이 없었다. 하지만 지구에는 일부 지역에라도 영구 빙상이 존재하는 빙하기가 존재했다. 빙하기는 지구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 빙상과 빙하가 극관(북극과 남극 주변)을 넘어 광범위하게 확산하는 자연 현상으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산타 바버라 및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 공동 연구팀은 대륙판과 해양판 사이의 지각 충돌이 빙하기를 일으킨 방아쇠 구실을 했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최근호에 게재한 논문에서 “세 번의 대빙하기에 앞서 열대지방의 ‘대륙호 충돌’이 일어났다. 대륙호 충돌은 지구 적도 인근에서 일어나는 지각의 연쇄 충돌을 말한다. 이 충돌은 대륙판 위로 해양판이 솟아 오르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로 인해 수만㎞에 이르는 해양 암석들이 대기에 노출됐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 열대지방의 높은 열과 습도는 암석과 대기 사이에 화학적 반응을 유발했는데, 특히 암석의 칼슘과 마그네슘은 대기의 이산화탄소와 반응을 해 탄소를 석회석같은 탄산염으로 영구 고정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반대로 규산염이 풍부한 대륙 암석은 침식돼 바다로 흘러들어가 바닷물을 중성화 내지 알칼리화한다. 대기의 이산화탄소는 알칼리 바닷물에 잘 용해된다. 알칼리가 많을수록 바다는 더 많은 탄소를 함유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백만㎢ 규모에서 발생한 이런 기상 현상이 대기에서 상당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해 범지구적으로 온도를 낮추고 궁극에는 빙하기가 도래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올리버 제이구츠 매사추세츠공대 지구·대기·행성과학부 조교수는 “저위도 지방의 대륙호 충돌이 지구 냉각화의 촉발자이다. 이런 충돌은 100만~500만㎢ 규모로 일어났는데, 꽤나 넓어 보이지만 지구 차원에서 보면 매우 작은 면적이다. 하지만 적절한 위치에서 일어난다면 지구 기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해양판이 대륙판을 밀어올릴 때 충돌은 전형적으로 새로 노출되는 암석을 지닌 산맥을 만들어낸다. 해양판과 대륙판이 충돌할 때 생기는 단층대를 ‘봉합’(suture)이라고 하는데, 오늘날 히말라야산맥은 대륙이 수천년 동안 이동함에 따라 원래 충돌 지점에서 이동해온 ‘봉합’을 포함하고 있다.
지구의 역사에서 대륙판과 해양판의 충돌(오렌지선)이 열대지방(녹색)에서 일어날 때마다 빙하기가 뒤따랐다고 미국 공동연구팀이 보고했다. ‘사이언스’ 제공
2016년 연구팀은 히말라야산맥을 만든 두 봉합의 움직임을 역추적했다. 연구팀은 두 봉합이 같은 지질구조적 이동에서 생겨났다는 것을 발견했다. 8천만년 전 곤드와나라고 알려진 초대륙이 북쪽으로 움직일 때 대륙의 일부가 유라시아와 충돌했다. 이로 인해 긴 해양암석 경계선이 노출돼 첫번째 봉합이 생성됐다. 5천만년 전에 초대륙 간의 또다른 충돌로 두번째 봉합이 생겨났다.
연구팀은 두 번의 충돌은 적도 인근 열대지방에서 일어났으며 이것이 수백만년에 걸쳐 지구 대기의 냉각화를 야기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백만년은 지질학적 척도로 보면 순간에 불과하다. 오피올라이트(조산대에서 발견되는 현무암, 반려암, 드물게는 사문암 또는 이들이 변한 녹색암 등으로 된 고철질 암석으로 오랜 대양지각의 파편이 지표에 노출된 것을 가리킨다)라고 불리는 노출된 해양암석이 열대지방의 이산화탄소와 반응한 비율을 조사한 뒤 연구팀은 두 봉합이 상당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고정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대기를 냉각시켜 두번의 빙하기를 촉발시킬 수 있었다고 결론내렸다.
연구팀은 흥미롭게도 이 과정이 빙하기의 종료에도 작용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백만년에 걸쳐 대기와 반응을 할 수 있는 해양암석은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사라지고 이산화탄소를 훨씬 적게 차지하는 바위로 바뀌어 이로 말미암아 빙하기가 끝난다는 설명이다. 제이구츠는 “이 과정이 빙하화의 시작과 끝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연구팀은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났을까 궁금해졌다. 가설이 맞다면 냉각이 일어난 때마다 같은 일이 반복됐을 것이고 열대지방에는 많은 봉합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구의 역사에서 대륙판과 해양판의 충돌(오렌지선)이 열대지방(녹색)에서 일어날 때마다 빙하기가 뒤따랐다고 미국 공동연구팀이 보고했다. ‘사이언스’ 제공
연구팀은 지구 역사에서 빙하기가 열대지방의 대륙호 충돌과 연관돼 있는지 조사했다. 문헌조사와 컴퓨터 시물레이션을 통해 연구팀은 봉합을 찾아내고, 그 봉합들이 형성된 장소와 시기와 지속시간을 추정해냈다. 그 결과 지난 5억4000만년 동안 길이가 1만㎞ 가량 되는 봉합들이 열대지방에서 형성됐다는 것을 확인했다. 각 기간은 익히 알려진 세 번의 대빙하기와 일치했다. 턱이 있는 물고기가 진화하던 4억5500만~4억4000만년 전의 오르도비스기, 양서류와 디메트로돈같은 포유류처럼 생긴 파충류 시대인 3억3500만~2억8000만년 전의 페름 석탄기, 오늘날의 남극 빙상이 처음 형성된 3500만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신생대 등이다. 주목할 것은 봉합대가 열대지방 이외의 지역에서 형성된 기간에는 빙하기나 빙하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1만1700년 전에 끝난 소빙하기는 연구 주제로 삼지 않았다. 소빙하기의 진퇴는 태양볕이 바뀌는 지구 궤도의 변동 때문에 생긴다.
제이구츠는 “대빙하기는 열대지방의 봉합이 1만㎞에서 3만㎞ 사이에 있을 때 뒤이어 일어났다. 열대지방에서 1만㎞의 봉합이 일어나면 빙하기를 맞을 수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했다. 연구팀은 1만㎞가 넘는 봉합대가 오늘날에도 인도네시아에서 활동중이며, 이것이 현재 지구의 빙하화에 영향을 미쳐 극 지방의 빙상을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오피올라이트지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도 가장 효율적으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고정하는 지대로 꼽히고 있다.
인간 유래의 이산화탄소 배출로 지구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일부 과학자들은 자연적인 냉각 효과를 배가하기 위해 오피올라이트를 연마해 적도지방에 뿌릴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이구츠는 이 물질을 갈아서 이동하는 것 자체가 의도치 않은 탄소의 배출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방법이 우리 시대 안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낳을지도 미지수라고 그는 덧붙였다.
제이구츠는 “인간의 시간 척도에 맞춰 이런 작용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구는 우리가 지구에 대해 작용하는 것과 아무 상관 없는 지질학적 과정을 천천히 진행한다. 그것은 우리를 해치지도 우리를 돕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H6s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