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총회 회의장에서 열린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뉴욕/연합뉴스
지난 9월23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우리나라가 세계를 향해 기후위기를 대응하자는 소리가 귀에는 들렸지만 가슴을 두드리지는 못했다. 연설문에서 근거로 삼은 과학적 사실이 뒤틀렸기에 논리가 어그러져 표적이 혼란스러웠다.
연설 내용 중 “대기질 개선을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은 저탄소 시대를 촉진하는 길이기도 합니다”는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 오염먼지와 온실가스는 화석연료를 태우는 동일한 과정에서 배출되기 때문에 직관적으로는 대기질을 개선하면 저탄소 시대를 촉진할 것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과학은 직관이 아니라 반증 가능성과 실증적 태도를 근거로 한 사유 방식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20세기 후반 선진국들은 산업을 급격히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스모그 등 오염먼지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강력한 오염법을 만들고 집행하여 오염먼지 농도가 지속해서 낮아졌다. 하지만 오염먼지 농도가 낮아지는 기간에도 온실가스 농도는 지속해서 높아졌다. 탈황과 분진 제거의 장치로 오염먼지는 줄일 수 있었지만, 온실가스는 그대로 배출된 것이다.
화석연료를 태우면 최대 3~5일 동안 지속할 수 있는 오염먼지와 수백 년 동안 공기 중에 남을 수 있는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오염먼지 중 황산염이 기후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다. 황산염은 햇빛을 흡수하지 않지만 반사하여 지구 표면에 도달하는 햇빛양을 줄인다. 또한 구름 응결핵으로 작용해 황산염이 없는 경우보다 구름방울 수가 많아지고 구름방울 크기는 더 작아진다. 이 구름은 햇빛 반사율이 더 높고 공기 중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있어 더 많은 햇빛을 우주로 보낸다. 따라서 황산염 배출은 온실가스의 온난화 효과를 일부 상쇄한다.
측정된 오염먼지와 온실가스의 변화 추세가 서로 다르다는 과학적 반증만 했어도, 그리고 오염먼지인 황산염이 대기를 냉각시키는 과학적 사실만 확인했어도, “대기질을 개선하면 저탄소 시대를 촉진할 것”이라는 유엔 연설 문맥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막지 못했기에 여기서 더 나아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회의에서 대기질 개선을 위한 “세계 푸른 하늘의 날”을 지정하자는 제안을 하기에 이르렀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에서 지구가 회복력을 상실하는 지구 온난화 2도를 넘지 않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협정에 따라 각국이 자발적으로 약속한 온실가스 저감 계획이 완전히 수행된다고 해도 이번 세기말에는 파국적인 위험을 일으킬 수 있는 기온 상승 3도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기에 파리기후협정으로는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뒤 2018년 인천 송도에서 열렸던 정부간기후변화협의체(IPCC) 제48차 총회에서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은 ‘1.5도 온난화’도 심각한 위험을 일으킨다는 데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렸다. 1.5도를 막기 위해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로 줄어야 하고, 2050년까지 인간 활동으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이 인위적으로 제거하는 양과 균형을 이루는 ‘순 제로’(net zero)에 도달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파리기후협정에 따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82%로 줄이겠다고 약속해 놓고서도 오히려 증가시키고 있는 중이다. 유엔은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이 1.5도를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발표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런데도 “한국은 파리기후협정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연설을 했다. 이미 파리기후협정은 철이 지났고 실제 우리나라는 이것조차 지키지도 않는 데도 말이다.
기후행동정상회의의 대통령 연설은 영혼이 없는 정부 관료들이 만든 정부 발표를 보는 듯했다. 열정도 치열함도 없이 과학적 사실과 정상회의 취지를 무시하는 뻔뻔스러움만을 확연히 드러낼 뿐이었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가 엉뚱한 길에 놓여 있으니 “어떻게 이 일을 해야 하는가?”는 가지 말아야 할 곳을 향하였다. 가치가 뒤꼬인 전략은 꼼수일 뿐이다.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태도와 과학적 사실로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경희사이버대학 기후변화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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