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한 장면. 출처: 아이엠디비
2019년 12월31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 원인 불명이 폐렴이 집단 발병하여 치료 중이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됩니다.[1] 환자들이 해산물 시장에서 일하던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인수공통감염병(zoonosis, 사람과 동물 사이 전파 가능한 병원체로 인해 발생하는 전염성 질병)이라는 추측이 돌았고, 제2의 ‘사스(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사스-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발병하는 호흡기 감염증으로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유행하였다)가 아닐까 하는 염려를 낳았죠.[2] 사스는 아니었지만, 같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이후 밝혀진 이 감염증은 우한시에서 급속도로 퍼졌고, 곧 홍콩 등 인접 지역에서 환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3] 춘절을 앞둔 시기, 사람들의 이동이 늘어나면서 안 그래도 확산이 빨랐던 감염증은 결국 병원에서 통제할 수 없을 만큼 퍼져버렸고, 중국 정부는 우한 폐쇄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죠.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지리적 근접성에도 불구, 초반 감염을 잘 막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국내에서 첫 감염자가 발생한 것이 2020년 1월 8일로, 환자를 바로 격리하고 치료에 들어갔으니까요.[4] 감염증의 이름이 코로나19로 결정되고 국내 감염자 수도 서서히 증가했지만, 질병관리본부는 효과적으로 환자를 식별·격리하고 있었어요. 그 덕에 2020년 2월17일에는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는 것처럼 보였고, 슬슬 경제적 여파를 관리해야 한다는 대통령 발언이 있었지요.[5] 코로나19를 상시 감시·관리하겠다는 중앙방역대책본부의 발표도 무색하게 대구와 청도에서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결국 일주일 만에 대통령은 위기 경고를 심각 단계로 올려 총력 대응에 나섰습니다.[6]
이 모든 과정에서 고생하고 있는 여러 공무원, 의료진, 여타 관련자에겐 어떤 치하도 아깝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논쟁에 귀 기울여볼 필요는 있을 텐데요. 이는 정부 대응이 충분했는지에 관한 논의와 연결되어 있어요. 예컨대 국경 봉쇄에 관한 논쟁이 그중 하나지요. 이런 논의는 ‘적용한 조치는 효율적인가? 그 조치는 사회·윤리적으로 타당한가? 조치가 다른 영역(예컨대, 심리적)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가?’와 같은 질문을 구체적으로 따져보는 것으로 옳고 그름을 물을 일이지 진영 논리에 갇혀서는 안 될 겁니다. 그것은 보수와 진보 모두 마찬가지죠. 무조건적 찬성도, 반대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이런 와중에 “과연 코로나19와 관련한 현재의 사회적 반응은 적절한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요. 이를테면,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서 나타났던 사회적 반응과 이번은 차이가 있을까요? 2009년 신종 플루와 비교하면 어떨까요? 2009년 6월 유행하기 시작해 그해 12월에 들어서야 안정되기 시작했던 신종플루의 경우 2009년 4월부터 2010년 8월까지 총 76만3759명의 감염자와 270명의 사망자를 기록했습니다.[7] 2015년 메르스로 확진자 186명, 사망자 38명이 발생했지요.[8] 코로나19는 2020년 2월26일 16시 기준 확진 환자 수 1261명, 사망자 수 12명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기간이 짧지만 수십만 명을 감염시킨 신종 플루와 비교할 때, 코로나19를 향한 반응은 과민한 것은 아니냐는 질문을 떠올려 보게 됩니다. 위기 경고를 ‘심각’ 단계로 올린 것은 오히려 사람들의 공포를 유발하여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마치 전쟁이 난 것처럼 보도하는 언론이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죠.
메르스, 사스, 코로나19, 독감의 감염자, 사망자 수 비교. 감염력이 낮은 대신 사망률이 높았던 메르스와 달리, 코로나19는 훨씬 빠르게 퍼지지만 비교적 사망률은 낮다. 독감은 백신이 있지만, 그런데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을 감염시킨다. 출처: 아이에스글로벌(Barcelona Institute for Global Health)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학교 강칠용 교수는 의료진 대응보다, 바이러스보다 공포 확산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9] 증상도 약하고 치사율도 높지 않은 코로나19에 공포를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걱정하고 마스크는 품귀로 연일 가격이 치솟고 있으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일용품과 식료품을 사 모으는 현 상황, 특정 지역과 감염자를 동일시하며 분노를 투사하는 모습은 사람들이 공포에 이미 빠져 있음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한 단어가 떠올랐어요. 그 단어는 ‘각자도생’입니다.
저는 2009년에 막 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했었고,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일하다 보니 신종플루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컨테이너는 어떻게 설치되어 있었고 선별 진료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아직도 떠올라요. 그때 사람들이 보이던 반응은 지금과 달랐죠. 물론, 신종 플루는 타미플루라는 치료제가 있었다는 점이 차이일 수 있어요. 하지만, 10년 전과 지금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그냥 비교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 사이에 엄청나게 변해버렸기 때문일 거예요. 그건, 그동안에 벌어졌던 사건 때문이지 않을까요.
단어 ’각자도생’의 검색 빈도를 보여주는 구글 트렌드 결과. 2010년 전에는 한 번도 검색된 적이 없던 ‘각자도생’은 2011년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2015년 중반에 최대 관심도를 기록한다. 참고로, 피크를 기록한 2011년 2월은 저축은행 영업정지가, 2014년 4월은 세월호 사고가, 2015년 5월은 첫 메르스 환자 발생이, 2016년 11월은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던 시기이다. 시각화는 필자
네,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는 우리 모두에게 각인시켰어요. 사회가 우릴 구조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가 하는 말만 듣고 있다간 죽는다. 먼저 살길을 찾아 도망쳐야 한다. 이런 생각은 세월호 사고를 다루는 국가의 방식을 보면서 점점 사람들 마음속을 파고들어 갔지요. 사회적 트라우마는 치유되지 않았고, 지금 우리는 그 결과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사람이 사람을 피하고, 두려워하며, 차별하고 증오하는 이 상황을. 우리는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포를 상대하기 위해선 함께 해야 할 텐데, 우리는 이미 서로 너무 멀어져 버린 건 아닐까요.
우리 나약한 손을 잇는다는 것
한국 여성은 먼저 비슷한 경험을 했지요. 2016년 5월17일 발생한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은 여성들에게 일상 공간이 더는 안전하지 않다는 상징이었어요. 강남역을 추모의 포스트잇이 뒤덮은 것은, 단지 한 사람을 떠나보냈음을 향한 슬픔의 표현을 넘어서는 일이었지요.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 앞에서 여성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고, 그것은 페미니즘의 급격한 확산으로 연결되었지요. 물론, 그전에도 페미니즘은 여러 사건과 과정을 통해 주변부를 파고들고 있었지만, 강남역 사건은 페미니즘을 담론의 중심으로, 심지어 사회 중심으로 끌어들였습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단 하나의 규정을 품을 수 없으며 그에 속한 여성들마저 페미니즘이 의미하는 바,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다 다르기에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은 계속 갈등을 만들어냈어요. 무엇보다, 온건과 급진이 서로 반목하고 있지요. 급진적 페미니즘은 온건주의자들을 남성 중심 사회를 바꾸는 데 오히려 방해된다고 비난합니다. 반대편에선 급진주의자들의 폭력이 오히려 사회로부터 고립을 만들어내어 정책과 사회 변화를 가로막는다고 생각하지요.
이런 위치 차이에서 협력을, 함께함을 끌어낼 수 있을까요. 이것은 단지 페미니즘 내부에만 해당하는 질문은 아닐 거예요. ‘협력과 연대를 보장하는 큰 우산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앞서 톺아본, 코로나19를 마주한 우리가 오롯이 마주한 현실이기도 하니까요. 사회가 더는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데, 우리는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요?
윤이형 작가의 소설 ‘붕대 감기’는 이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합니다.[10] 어릴 때부터 인기가 많았고, 일찍 결혼해 아이를 키우는 진경과 그의 오랜 절친이지만 페미니즘 편집자, 작가로 살면서 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 세연이 소설 중심에 있어요. 작품은 둘의 갈등 이야기에만 매달리지 않고, 두 사람을 연결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점선을 잇듯 담아냅니다.
소설 ‘붕대 감기’의 표지. 윤이형 작가는 사람이 순번을 이어가며 하는 실뜨기 놀이처럼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연결하여 배치한다. 한 사람의 이야기에 등장한 다른 사람이 다음 이야기의 화자가 되어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 식이다. 이렇게 연결되는 사람들 각자가 서로에게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설을 덮으면, 실뜨기처럼 각 사람이 서로 연결된 모습이, 여러 번 감은 붕대처럼 떠오른다. 출처: 알라딘
이를테면, 소설을 시작하는 것은 진경도, 세연도 아닌 미용실 주인 해미예요. 그는 미용실을 찾던 손님을 한 명 떠올립니다. 늘 책을 읽던 그였기에 자신이 책을 선물했는데, 그 이후로 손님은 보이질 않죠. 자신이 책을 잘못 골랐나, 자책하는 해미를 두고 이야기는 손님, 은정으로 건너갑니다. 은정에겐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들 서균이 있는데, 아이는 눈썰매를 타러 갔다가 갑자기 고열로 쓰러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합니다. 누군가 말이라도 걸어 주었으면, 바라는 은정은 고통을 못 이겨 밤길을 걷고, 우연히 들어간 미용실에서 지현에게 머리 미용을 받지요. 해미 실장을 따르는 헤어 디자이너 지현은 아파서 며칠 나오지 못한 해미에게 은정의 이야기를 전하러 가고,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자신의 이중적인 태도를 자책합니다.
이렇게, 소설은 한 지점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다른 사람으로 계속 이어지는 구성을 취하고 있어요. 마치 이어달리기에서 바통을 건네는 것 같지요. 등장하는 각자의 이야기는 여성으로서 겪은 아픔을 넌지시 내비치지만,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페미니즘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놓고 마음속으로, 그리고 서로 간에 겪는 갈등이에요. 예컨대 지현은, 헤어 디자이너로서 자신이 오히려 여성을 억압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합니다.
헤어 디자이너는 오랫동안 지현이 꿈꾸던 외길이었고,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았지만 혼자서 눈물나게 노력해 드디어 얻어낸 자랑스러운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 이름이 어느 순간부턴가 조금씩 자랑스럽지 않아졌다. 머리를 자르는 일, 단백질을 먹고 소화시켜 머리카락으로 바꾸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그 일 자체에는 잘못이 없었다. 그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외의 시술들이 갑자기 낯설고 이상하게 생각되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산업의 어디까지가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고, 어디서부터가 여성을 아름다움에 억지로 묶어 자유를 빼앗는 일일까. 지현은 구분할 수가 없었다(36~37쪽).
소설의 중심인물인 세연이 진경을 바라보는 일에도 이런 갈등이 나타납니다. 고등학교 때 여드름 등 흉으로 얼룩덜룩한 자기 피부를 가리고 싶어 파운데이션을 발랐던 세연은 전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교련 시간 붕대 감기 실습시험을 봐야 하는데 짝을 찾지 못하죠. 그때, 함께 해준 것이 진경이었어요. 진경은 세연의 단짝이 되었고 고등학교 내내 함께하지만, 이후 둘의 간극은 점차 벌어집니다. 진경은 세연의 눈에서 “친구가 친구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비혼 여성이 기혼 여성을 평가하고 있다”고 느끼죠(64쪽). 마찬가지로 세연 또한 진경에게 불편함을 느낍니다. “나도 자취할 때 그랬는걸, 하는 너의 대답을 듣는 것도 싫은 이런 마음을 진경이 너는 이해할 수 없을걸. 세연은 상상 속에서 친구를 속물로 만들고 있는 자기 자신이 지극히 속물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79쪽)
‘붕대 감기’가 지닌 장점은, 둘의 거리를 좁혀주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나 대화가 아니라는 거예요. 소설은 두 사람이, 두 생각이 어딘가에서 만나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내비치지 않아요. 둘은 그대로 살아갑니다. 단지, 끊어져 있는 두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여러 선이 덧대고 이어지는 것을 통해, 두 사람 사이가 연결됩니다. 하나하나는 약하지만 덧댐을 통해 지지와 돌봄으로 이어지는 것은, 소설 제목인 붕대를 감는 일과 비슷해요. 붕대 또한, 한 겹으로는 별 의미 없지만 여러 번 감아주면 부러진 곳도 지지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작품은 서로 반목하고 갈라져 있는 이들이 같은 목표를 위해—각자의 방향을 다를지라도—서로 연결될 수 있다고 주장해요. 그것이, 윤이형 작가가 찾아낸 세월호 이후의 연대 방식일 거예요.
우리 서로의 붕대가 되어
연일 심각도를 더해가는 코로나19 관련 보도와 사람들의 말, 메신저를 통해 돌아다니는 때론 필요하고 때론 헛된 이야기를 보면서 우린 과연 연결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돼요. ‘각자도생’이라는 말은 분명 사람들에게 현실을 자각하게 하는 번뜩임이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그 말은 서로를 돕는 것이 사치라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줍니다. 각자의 목숨을 구하기 바쁘기에, 남이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거지요. 더구나 감염병의 시절, 이런 생각은 다른 사람들을 잠재적인 감염자로 여기며 적대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해요. 이를 해결해야 할 사회의 보호와 상호적 관계라는 우산이 트라우마로 인해 접혀 있는 지금은, 공포와 적대가 활개 치기 좋은 시절인지도 모르겠어요.
우리는 지금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마법의 탄환을 찾아내지 못할 수도 있어요. 코로나19 치료제는 앞으로 당분간은 기대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하버드대학교 역학 교수 마크 립스티치는 코로나19를 격리로 막을 수 없을 것이고 전 세계 인구의 40~70%가 감염될 거라는—비록 다수는 큰 증상 없이 지나가겠지만—대략의 예상을 내놓기도 했지요.[11]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도 미국 내 지역사회 확산을 대비하고 있습니다.[12] 인류를 감염으로부터 구해낸 항생제는 바이러스에겐 별 효과가 없기에, 우리는 다른 해결책을 찾아낼 때까지 고심할 거예요.
하지만 그 전에, 다른 문제들은 다룰 수 있을 거예요. 예컨대, 공포는 다룰 수 있을 거예요. 절망하는 이를 지지할 순 있을 거예요. 좌절에 빠진 지역을 돌볼 순 있을 거예요. 그것을 국가에서, 사회에서, 즉, 통일된 하나의 움직임을 기대할 수 없다 해도, 우리가 서로에게 각자 내민 손이 붕대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그것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공포와 적대를 단단히 묶을 거예요.
다시 한번 대구, 경북에서 쉴 틈도 없이 환자 관리에 힘쓰고 있는 의료진에게, 밤낮없이 격무에 시달리고 있을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여러분에게, 그리고 서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시민들께 존경과 감사를 바칩니다.
김준혁/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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