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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메르스에서 배운 것, 코로나19에서 배울 것

등록 2020-04-06 09:49수정 2020-04-06 10:43

김준혁의 의학과 서사 (31)
김탁환 ‘살아야겠다’를 코로나19 앞에서 읽는 일이란
국립중앙의료원 격리실. 출처: 한겨레
국립중앙의료원 격리실. 출처: 한겨레

최근 바뀐 삶의 풍경은 멀리서 보면 에스에프 작품의 인류멸망 시나리오에서 보던 것과 비슷합니다. 사람들은 질세라 마스크를 단단히 챙기고, 사람들은 모이기를 두려워하며, 병원은 환자로 가득찬 가운데 수용할 곳 없는 환자들이 복도를 채우고, 주식은 폭락하는 가운데 정부는 무제한으로 돈을 찍어내겠다 선언하는 모습. 영화의 한 장면을 닮았지만, 영화에선 핵전쟁이나 외계인의 침략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인데 우린 바이러스 탓이라는 차이가 있죠. 또, 언젠가 끝은 올 거라는 차이도. 감염 종식을 선언하는 날은 반드시 올 겁니다. 하지만, 그 끝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다가올지 지금으로선 알기 어렵죠.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여러 영화가 언급되었지만,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2011년 작 ‘컨테이전’만한 작품이 또 있을까. 마카오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를 뒤덮는 감염병은 높은 치사율을 보이며 모든 사람을 공포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지금 여기의 모습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출처: 아이엠디비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여러 영화가 언급되었지만,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2011년 작 ‘컨테이전’만한 작품이 또 있을까. 마카오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를 뒤덮는 감염병은 높은 치사율을 보이며 모든 사람을 공포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지금 여기의 모습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출처: 아이엠디비

지금 종말이 아니라면, 우린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런 커다란 사태들은 우리가 평소에 무시하거나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지점들을 드러내니까요. 이런 부분을 보수하지 않으면 문제는 더 곪아갈 거예요. 그렇다면, 감염병 앞에서 우리는 지금 어떤 문제를 마주하고 있을까요.

사실, 한국 사회는 이 질문을 2015년에도 똑같이 반복한 적이 있습니다. 중동호흡기증후군, 줄여서 메르스는 그해 186명의 확진환자와 38명의 사망자를 남겼죠. 메르스를 겪었는데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앞에서도 이렇나, 라고 물으시면 안 됩니다. 당장 한국과 외국 여러 나라의 코로나19 현황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지요. 3월 30일 현재 전 세계 120만3459명의 확진환자와 6만4754명의 사망자를 낸 코로나19.[1] 시작지인 중국 바로 옆, 한국에선 1만237명의 확진환자와 183명의 사망자로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2] 외국 언론에서 한국 대응을 칭찬하는 이야기를 한두 번은 들어보셨을 텐데요. 여기에는 메르스 경험을 통해 바뀐 법과 제도가 큰 영향을 미쳤어요. 대표적으로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감염병예방법) 개정이 있지요. 정부의 대응 태도에도 큰 차이가 있었지만요.

그렇다면 지금, 메르스는 무엇을 바꿨으며 바꾸지 못했는지, 그 영향은 코로나19에 어떻게 미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코로나19를 견디고 앞으로 나아갈 지점을 보여줄 거예요. 그리고 그것은 다음에 다른 감염병이 이곳에 다시 들이닥쳤을 때,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를 결정할 겁니다.

메르스에 접근하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경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를 서사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대한감염학회가 쓴 백서 ‘메르스 연대기’이고[3] 다른 하나는 김탁환 작가가 쓴 소설 ‘살아야겠다’입니다.[4] 전자는 백서이므로 소설과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백서도 결국 벌어진 사건을 누군가의 관점으로 재구성하여 흐름을 갖춘 글이기에 둘은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다른 두 시선이에요. 김탁환 작가는 전작 ‘거짓말이다’에서 세월호를 다뤘고 여기서 살필 ‘살아야겠다’는 메르스를 다루는데, 둘 다 인터뷰 자료에서 출발하여 사건의 진행을 그대로 담고 있거든요.

‘메르스 연대기”, 백서는 메르스 사태를 마주하며 벌어졌던 일들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정리합니다. 백서는 마지막에 메르스로 인한 변화와 남은 과제를 정리하면서 끝나죠. 방역 컨트롤 조직의 문제, 감염병 감시의 문턱 높이기, 감염병 전문인력 양성과 처우 개선, 감염·예방 관리를 위한 비용 확충이라는 사후 과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이번 코로나19에서도 반복되고 있어요. 이 부분은 단순히 정책 한두 개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었기에, 5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정리되기는 어려웠는지도 모르겠어요. 반면, 투명성과 명확성이라는 목표는 이번 사태에선 충실히 달성되고 있고, 국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부분이지요.

그런데, 이게 전부일까요? 방역 전략을 위해 비용을 더 들였으면 좋았을 것이고, 메르스 때와는 달리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니 더 따져볼 부분은 없을까요? ‘살아야겠다’가 그 빈틈을 채워줄 거예요.

메르스 80번 환자의 이야기, 피해자의 이야기

‘살아야겠다’를 이끄는 것은 한 부부입니다. 주인공이 여럿인 것처럼 보이지만, 나머지는 이들의 서사를 부각하는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죠. 김석주는 대기업을 다니다가 다시 학업을 선택, 막 치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치과의사가 되었어요. 안타깝게도, 그 와중에 림프종이라는 혈액암이 있음을 발견하고 항암치료를 견뎌낸 상황이죠. 그의 아내, 남영아는 간호사였습니다. 그는 이제 제약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네 살 아들과 함께 이제 미래를 꿈꾸려 하고 있죠. 석주는 상태가 좋지 않아 잠시 응급실에 가고, 그때 메르스에 걸립니다. 메르스 감염 소식은, 다시 림프종 치료를 해야 하는 이들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죠.

여기에 수습기자인 이첫꽃송이와 출판사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길동화의 이야기가 얽혀요. 석주와 첫꽃송이, 동화는 본인 또는 가족의 치료를 위해 병원 응급실에 내원하고, 이후 ‘메르스 1번 환자’ 또는 ‘0번’이라고 불리는 환자 또한 이들과 같은 시기에 응급실에 들르죠. 참, 이 환자가 두 가지의 번호를 부여받은 건 아녜요. 질병관리본부는 확진환자를 1번부터 세어 나갔습니다. 하지만, 역학에선 감염 확산의 시발점이 된 첫 환자를 ‘페이션트 제로’(patient zero)라고 부르곤 합니다. 이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 0번이죠.

김탁환 작가의 소설 ‘살아야겠다’는 메르스 80번 환자와 그 아내가 남긴 기록에서 출발해 이야기로 남기기 힘든 상처들을 소설로 담아냈다. 세월호, 메르스 등 트라우마는 쉽게 표현될 수 없는데, 트라우마 또는 정신적 외상을 당한 개인은 이를 잊기 위해 마음 깊숙한 곳에 상처를 숨긴다(이를 프로이트는 기억이 억압된다고 했다). 숨어버린 기억이기에, 이를 말이나 글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될 때도 있다. 이럴 때 소설이 가지는 힘은, 비어 있는 기억을 상상력으로 채워 그것을 전달 가능한, 이해 가능한 형식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것처럼. 출처: 알라딘
김탁환 작가의 소설 ‘살아야겠다’는 메르스 80번 환자와 그 아내가 남긴 기록에서 출발해 이야기로 남기기 힘든 상처들을 소설로 담아냈다. 세월호, 메르스 등 트라우마는 쉽게 표현될 수 없는데, 트라우마 또는 정신적 외상을 당한 개인은 이를 잊기 위해 마음 깊숙한 곳에 상처를 숨긴다(이를 프로이트는 기억이 억압된다고 했다). 숨어버린 기억이기에, 이를 말이나 글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될 때도 있다. 이럴 때 소설이 가지는 힘은, 비어 있는 기억을 상상력으로 채워 그것을 전달 가능한, 이해 가능한 형식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것처럼. 출처: 알라딘

이 1번 환자가 이후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주변에 있었던 사람이 격리 대상이 되지만, 그때 질병관리본부는 격리 대상자를 1번 환자와 ‘2m 내, 한 시간 이상’ 같이 있던 사람으로 한정합니다. 하지만 이후 확인되는 것처럼, 이 범위를 벗어나는 사람들에게도 메르스는 퍼졌지요. 이 와중에 세 사람은 범위 바깥에 있었기에 초기 격리 대상에서 벗어나지만, 증상이 발생하여 세 사람은 메르스 환자로 확인됩니다.

첫꽃송이는 아버지를 간병하던 와중에 메르스에 걸렸고, 다른 친척도 같이 감염되지요. 첫꽃송이는 회복하지만, 친척도, 이전에 그렇게 끈끈히 뭉치던 가족애도 잃습니다. 동화는 낫지만, 폐 기능을 크게 상실합니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그를 맞은 것은 트라우마와 낙인입니다. 동화는 의료진이 자신의 살을 베어가는 환상을 계속 보며 자살 충동을 느끼는 데다가, 평생을 바친 물류창고에서 쫓겨납니다. “메르스 환자였던 사람이 근무하는 물류창고에서 출고되는 책은 멀리하려 든다고요.” (328쪽) 자존심을 꺾고 전단 만드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하지만, 같은 반응 때문에 일을 계속할 수 없어요. “더러운 손으로 만든 전단지는 받지 못하겠다 했습니다.” (399쪽)

그리고, 석주는 목숨을 잃지요. 그는 메르스 때문에 사망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메르스 치료와 불운히도 겹친 림프종 재발을 제때 검사, 치료하지 못하게 됩니다. 혈액에서 면역을 담당하는 백혈구의 기능이 떨어져서인지 석주의 몸에선 메르스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반복적으로 검사할 때마다 양성과 음성이 번갈아 나타거든요. 이미 메르스는 충분히 치료되었기에 의료진도 석주가 다른 사람에게 메르스를 옮길 것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질병관리본부가 설정한 완치 기준상 두 번 연속한 검사에서 모두 바이러스 음성이 나와야 하는데 석주는 이를 통과하지 못하죠. 심지어 겨우겨우 통과해서 몇 달 만에 귀가한 석주는 고열로 다시 응급실에 가고, 야속하게도 그에게선 메르스 검사 양성이 나타납니다.

3달간의 격리에서 해제된 지 9일만에 다시 메르스 환자 아닌 환자로 격리된 석주는 결국 림프종 치료를 뒤늦게 받다 사망합니다. 스포일러가 아니냐고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석주·영아 부부는 소설 속에서 만들어진 등장인물이 아니라 실존 인물이에요. 우리가 이후 메르스 80번 환자이자 38번 사망자라고 부르게 될 고(故) 김 선생과 부인이죠. 소설은 대화, 인물 간의 상호작용 등 기록에 남지 않은 부분들을 상상력으로 채웠지만, 사건 진행은 사실 그대로를 따라갑니다. 네, 38번 사망자는 메르스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계속 격리 상태로 있다가 림프종으로 인해 사망했어요. 메르스가 아니었다면, 아니 그가 미리 메르스 진단을 받고 빨리 처치를 받았다면, 아니 그에게 설정된 격리 해제 조건이 명확했더라면 그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메르스 검사에서 2회 연속으로 음성이 나와야 한다는 조건은 상황에 따라 3회 연속으로 변경되기도 했고, 사실상 명확한 조건이 있었는지 불분명하게 보이거든요.

소설은 이들에게 동정적 시선을 보내며, 이들을 챙기지 못한 국가와 사회를 비판합니다. 하지만, 방향성이 너무 명확하다 보니 작품은 소설적 측면에선 아쉬워요. 감정에 가득찬 대사는 낯뜨겁고, 석주의 서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너무 작위적이에요. 게다가, 소설이 외치는 주장 또한 타당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예컨대, 소설은 이들이 번호로(메르스 80번 환자처럼) 남는 것이 이들을 향한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번호’가 아닌 ‘사람’을 되찾아야 한다.” (628쪽) 그러나, 환자를 번호로 부르는 이유는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번호가 아니면, 실명으로 표시해야 할까요? 안 그래도 낙인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이름으로 기억하는 일은 이중의 상처를 입히는 일이에요.

그런 아쉬움을 딛고서라도 이 책을 펴보실 것을 권해드리는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여전히 고민해야 할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을 거예요. 우선, 석주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사회의 보호와 개인의 인권이 충돌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음, 동화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질환 경험이 가져오는 후폭풍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두 문제가 나뉘어 있지 않기에, 같이 살펴보려 합니다.

하향식 접근의 한계와 이야기의 힘

이 질문은 지금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지요. 앞에서 감염병예방법을 말씀드렸지만, 메르스 이후 정부는 감염 환자 정보를 인권 침해가 우려될 정도까지 수집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감염병예방법은 환자의 카드 사용 명세와 스마트폰을 통한 위치 정보 확인을 허용하는데, 이는 독일에서도 한번 제안되었으나 심각한 인권 침해를 이유로 개정안 상정에 실패합니다.[5] 전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장 한스위르겐 파피에르는 ‘주트도이치 자이퉁’과 인터뷰에서 스마트폰 등을 통한 감시는 헌법적 권리 침해이자 전체 감시국가의 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지요.[6] 국내 진보단체들도 정보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며 이 건에 관해 공동성명을 낸 바 있습니다.[7]

물론, 스마트폰을 통한 환자 추적은 이전의 방식들보다 훨씬 효과적이에요.[8] 이를 인권 침해라는 사유만으로 전면 부정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적극적으로 위 질문에 답해야 해요. 어디까지 개인의 인권을 제한할 수 있을까요? 어디까지 사회 보호는 우선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서 소설이 제기한 석주의 사례를 면밀히 살펴보는 것은 중요해요. 그는 분명 사회에 위해가 될 수도 있다는 이유만으로 암 치료 기회를 박탈당했어요. 말씀드린 것처럼 석주는 메르스 검사마다 결과가 다르게 나왔고, 그가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국가는 안전한 방향을 택했어요. 그러나 그가 사망한 이후, 유족이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을 때 법원은 정부 배상책임을 인정합니다.[9] 즉, 안전한 방향을 택하고 보호의 망을 넓게 치면 칠수록, 그 그물망은 많은 사람을 보호할 수 있을지언정 누구에게는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르네 마그리트 ‘심장 찌르기’ (1952). 장미에 돋친 가시처럼, 선한 행위나 좋은 정책이라 하여 아무런 피해도, 불편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선함이나 좋음에만 집중하여 불편에는 눈을 감으려 하거나, 불편만 보고 선함이나 좋음은 잊어버리려 한다. 둘 다, 눈을 크게 뜨고 마주해야 한다. 출처: 위키아트
르네 마그리트 ‘심장 찌르기’ (1952). 장미에 돋친 가시처럼, 선한 행위나 좋은 정책이라 하여 아무런 피해도, 불편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선함이나 좋음에만 집중하여 불편에는 눈을 감으려 하거나, 불편만 보고 선함이나 좋음은 잊어버리려 한다. 둘 다, 눈을 크게 뜨고 마주해야 한다. 출처: 위키아트

인권과 사회 보호라는 가치를 대립시키면 이런 실제 피해자는 보이지 않아요. 어느 권리가 우선하는지를 놓고 싸울 뿐이고, 여기에서 결론을 찾긴 어려워요. 둘 다 타당한 위치에서 싸우고 있으니까요. 헌법적 가치와 인권을 부정할 수 있을까요. 또, 전쟁을 방불케 하는 현실에서 사회 보호를 무시할 수 있을까요. 타당한 두 논의가 싸우고 있으니, 애초에 합의가 불가능하지요.

윤리든 철학이든, 이런 견해를 하향식 접근이라고 불러요. 추상적인 근거나 원칙에서 출발해, 현실 문제에 관한 결론을 내는 방식. 하향식 접근의 힘은 강력한 근거에서 나와요. 위에서 본 것처럼 인권, 사회 보호 같은 막강한 초월적 개념을 부정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현실 문제는 어느 개념 하나만 따라서는 해결이 나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어요. 의료윤리의 여러 논의에서 잘 나타나지요. 임신중절이 대표적인 사례 아니던가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신체 자기 결정권이라는 두 개념은 따로 놓고 보면 부정하거나 침해할 수 없는 권리예요. 문제는 두 개념이 부딪힐 때죠. 상충하는 상위 개념을 굽힐 수 없으니, 논의는 계속 빙빙 돌 수밖에 없어요.

이런 문제에서 우리는 거꾸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어요. 물구나무를 세웠으니, 상향식 접근이라고 불러야 하겠지요. 이런 접근 방법의 예 중 하나는 피해자의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겁니다. 지금 저희가 하는 것처럼요. 여기에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봅니다. 피해자는 어떤 문제를 겪었을까요? 그것은 하향식으로 접근했을 땐 왜 드러나지 않았을까요? 벌어진 사태의 경험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안전망이 피해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이때, 피해를 만들 수밖에 없으니 그 안전망은 쓰지 않겠다거나, 또는 안전이 중요하니 피해는 무시하겠다는 접근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아니에요. 전자는 다른, 더 큰 문제를 불러오고, 후자는 피해자를 경시하니까요. 그렇다면, 여기에서 생각해봐야 할 것은 안전망이 만드는 피해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즉, 안전망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을 처음부터 인지하고,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이를 고려하며, 발생한 피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죠. 예컨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석주의 경우에, 애초 이런 피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인지했다면 사건의 진행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어요. 이후 보상 관련한 논의는 물론이고요.

논의를 정리해볼까요? 사회 안전을 위한 접근은 개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요. 발생할 피해는 처음부터 계산에 들어가야 해요. 그리고 그 논의는 동화와 같은 사례, 즉 질병 낙인으로 인해 직장을 잃는 경우도 고려해야 하지요. 코로나19 방역 관련해서도 비슷한 경우가 보여요. 인터넷에선 쉽게 확진환자 동선을 정리한 문서나 그림이 돌아다니고, 환자를 모욕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요. 그저 인터넷의 설왕설래일 뿐, 개인에게 피해는 없는 걸까요? 사람들의 욕설 댓글을 마주해야 하는 확진환자는 괜찮은 걸까요? 동선에 포함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식당은요? 이들이 볼 피해를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방법을 우린 이제 고민해야 해요. 그 모두가 안전을 위한 비용이니까요.

마치며

코로나19의 빠른 종식을 기원하며, 우리가 감염병을 향해 휘두르는 칼이 어쩔 수 없이 우리 또한 상처입힘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 상처를 놓아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회복하는 방법을 같이 고민할 때, 우리의 감염병 대응은 한 걸음 더 성숙해질 수 있을 거예요.

참고문헌

1. Worldometer. Covid-19 Coronavirus Pandemic. Apr 5, 2020 [cited at Apr 5, 2020]. Retrieved from: https://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

2. 보건복지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2020년 4월 5일 [cited at 2020년 4월 5일]. Retrieved from: http://ncov.mohw.go.kr/.

3. 대한감염학회. 메르스 연대기. 대한감염학회; 2017.

4. 김탁환. 살아야겠다. 북스피어; 2018.

5. 이광빈. 코로나19 한국 따라하기 애먹는 독일…“서울 비하면 제3세계”. 연합뉴스 [Internet]. 2020년 3월 25일 [cited at 2020년 4월 2일]. Retrieved from: https://www.yna.co.kr/view/AKR20200325011200082?input=1195m.

6. Janisch W, Richter N. Selbst in Kriegszeiten warden die Grundrechte nicht angetastet. Süddeutsche Zeitung [Internet]. Apr 1, 2020 [cited at Apr 3, 2020]. Retrieved from: https://www.sueddeutsche.de/politik/coronavirus-grundrechte-freiheit-verfassungsgericht-hans-juergen-papier-1.4864792?reduced=true.

7. [공동성명] 코로나19 대응, 정보인권을 존중해야 한다. 진보네트워크 [Internet]. 2020년 3월 26일 [cited at 2020년 4월 2일]. Retrieved from: http://act.jinbo.net/wp/42481/?fbclid=IwAR2vJjy2A8B10IaIxRwS5NIyclW7Y5h5fctNM484hru-fXUhLiiDpA1BSuU.

8. Ferretti L, Wymant C, Kendall M, et al. Quantifying SARS-CoV-2 transmission suggests epidemic control with digital contact tracing. Science 2020. doi: 10.1126/science.abb6936

9. 백희연. 法 “정부가 메르스 ‘80번 환자’ 유족에게 2000만원 보상”...2심 뒤집힐 수도. 중앙일보. 2020년 2월 18일 [cited at 2020년 4월 2일]. Retrieved from: https://news.joins.com/article/23709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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