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미국과 일본 여행을 해보아서 그런지 요즈음은 흔히 가보지 않았던 유럽 국가를 여행해야 뭔가 참신해 보인다. 이제는 우리 기상청 예보를 믿을 수 없어 노르웨이 기상청 예보로 망명 간단다. 정말 참신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민들이 일본과 미국의 기상 예보를 더 신뢰한다는 기사를 종종 보았는데 말이다.
모호함이 더 커질수록 정확도는 더 높아진다. 여름철에 하루 동안 우리나라 전역에 대해 ‘곳에 따라 한때 비‘라고 예보하면 거의 맞을 것이다. 그러나 특정 시점, 특정 지점의 강수량은 맞출 수 없다. 결국 예보도 조건에 따라 정확도가 크게 달라진다. 그렇다면 예보가 맞냐 틀리냐를 따지기 이전에 앞서 두 극단 사이 어느 지점을 예보 기준으로 잡아야 하는지를 정해야 한다. 노르웨이 기상청 예보 망명은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일어난 논란이 아니므로 합리적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이 되질 못 한다.
일기예보는 여러 관측소에서 보내오는 다양한 자료를 분석해서 앞으로 기상 상태를 내다보는 것이다.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날씨 변화를 지배하는 물리 법칙(운동량 법칙, 에너지 보존 법칙과 질량 보존 법칙)이 있기에 예측이 가능하다. 이때 여러 곳에서 얻은 여러 관측이 모든 곳에서 얻은 모든 관측이 아니라는 데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날씨는 물리 법칙이 지배하는 복잡계이므로 여러 곳이나 여러 가지에 포함되지 않은 현상, 즉 관측 오차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수함수적으로 증폭해 예측을 틀리게 한다. 번갈아 지나가는 고기압과 저기압은 예측할 수 있는 기간이 최대 2주 이내다.
우리가 특별히 관심이 있는 강수에는 물리 법칙이 없다. 대기 중 수증기는 많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이는 대기 에너지보다 더 크다. 수증기가 구름으로 응결할 때 발생하는 잠열에너지는 대기순환의 주요 추진력이다. 이 과정에서 구름이 만들어지고 구름은 햇빛을 반사하고, 구름에서 비와 눈이 내리고, 구름 안과 밖에서 난류를 일으킨다. 이는 아직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으므로 매개변수화(parameterization)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추정도 물리적 기반을 두고 있지만 물리 법칙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하나의 구름이 만들어져서 비를 내리는 과정은 아무리 길어도 몇 시간 이내에 이루어진다. 현재를 지속하려는 관성의 힘이 약하여 예측 가능 시간이 짧다. 그러기에 강수 예보는 불확실성이 크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고기압과 저기압의 발생과 이동에 관련된 수치 예측모형의 정확도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시민은 예보 정확도 향상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강수예보 능력은 뚜렷하게 좋아지고 있지 않으며 예보 정확도는 지역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캘리포니아에서는 날씨 예보가 틀렸다는 기사를 아직 찾지 못했는데, 뉴욕에서는 틀린 예보를 비난하는 기사를 금방 찾을 수 있다. 이것은 두 지역 간 예보 기술 수준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예측 불확실성 수준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균질한 바다로부터 날씨가 다가오는 캘리포니아와 불균질한 대륙을 지나 오대호에서 변질한 날씨가 다가오는 뉴욕의 예보 정확도가 같을 수 없다. 우리나라도 대륙을 지나온 공기가 서해에서 바다를 만나 급격히 변하는 경향이 있어서 예측이 어렵다. 제트 기류의 영향을 받는 대륙의 동쪽 끝이 가장 예측 불확실성이 큰 지역이다. 예보관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연합, 미국과 일본의 수치예측모형 결과도 함께 분석한다. 우리나라 예보관이 기상정보 부족으로 다른 나라보다 예보를 못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날씨 예보는 시민이 우산을 가지고 나가가야 하는지를 정할 때 필요한 정보만이 아니다. 물관리와 자연 재난을 대비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국가 정보이기도 하다. 날씨 예보로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대비도 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다. 일주일 뒤 예보보다 하루 이틀 예보가 더 정확하다. 이처럼 예보 시간이 현시점에 가까이 올수록 예측 정확도는 더 정확해지며 이에 맞춰 국가 자연재난 대응 시스템이 작동한다.
예를 들어 일주일 뒤에 태풍이 상륙할 것으로 예보되면 자연재난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휴가 등 개인 일정을 뒤로 미루게 될 것이다. 태풍이 1~3일 뒤에 상륙한다면 정부는 실질적인 재난 대응 준비를 한다. 태풍이 우리나라에 상륙하려 할 때부터는 기상 레이더 등으로 실시간 생산된 기상 정보에 따라 재난에 대응한다. 태풍이 예상되는 일주일 동안 태풍 진로가 바뀌어 우리나라가 영향을 안 받게 되면 대비를 중단한다. 이로 인한 비용이 들긴 하지만 아무 준비 없이 실제 자연재난이 일어나 입게 될 피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처럼 확실성이 국가 자연재난 대응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없다. 예측 불확실성 안에 담긴 신호에 따라 실용적으로 대응을 해야 한다. 예측이 불확실해도 대비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가 기본 정보인 우리 기상청 예보는 늘 검증되고 있으며 그 결과는 국회에 보고된다. 예보가 크게 틀리는 경우 국회와 감사원으로부터 점검을 받아야 한다. 외국 기상 예보는 (우리나라에서) 그 어떤 비판도 받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비판도 책임도 없는 정보는 그렇지 않은 정보보다 위험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서 “그것은 내리는 비처럼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라고 썼다. 시민들이 우리 기상청 예보에 불만이 있어 노르웨이 기상청으로 망명 간다고 한들 어쩔 수 없다. 그렇다 해도 기상청은 외국 예보가 우리나라 예보보다 얼마나 맞는지 틀리는지를 정량적으로 분석해서 시민들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바로 대응해야 한다. 이러한 비교 검증이 기상청 예보를 더 개선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도 있다. 기상청 예보에 대한 질타를 발전의 힘으로 바꾸어 내야 한다.
세상은 정확한 예보를 요구한다. 그러나 과학은 절대적 확실성을 보장하지 않음으로 늘 새로운 세계에 열려 있다. 강수예측의 불확실성은 과학의 한계다. 불확실성을 벗어날 수 없다면 불확실성 자체를 정량화한 예보 체계를 개발해야 한다. 맞고 틀림에 중점을 둔 예보가 아니라 그 예보가 얼마나 적중할 수 있는지를 함께 예보해야 한다. 지금의 강수확률예보에서 기술개발을 통해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예보는 컴퓨터가 계산한 결과다. 우리 기상청이 발표하는 예보는 마지막 단계에서 예보관이 결정한다. 예보관은 위험한 날씨에 대해서는 과잉 예보를 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 경보 없이 위험한 날씨가 발생하여 입게 될 손실이 엄청날 경우를 대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 모든 것에는 예보관의 오랜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결국 좋은 예보는 기상청이 좋은 예보관을 키워내느냐에 달려 있다.
얼마 전까지 오랫동안 예보관을 했던 성실한 후배가 정년보다 일찍 기상청을 나왔다.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연락했는데 날씨 예보의 압박에서 벗어나 마음 편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지루한 장마에 노심초사하며 치열하게 지내야 할 사람이 편하다고 하니 나는 불안하다.
경희사이버대학 기후변화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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