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등 열대성 저기압이 해양 온난화로 상륙 뒤 소멸 시간이 길어져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열대성 저기압은 적도 부근 열대 해양에서 발달해 중위도 지역을 강타하는 폭풍으로, 북태평양에서는 태풍, 북대서양에서는 허리케인, 인도양에서는 사이클론, 오세아니아에서는 윌리윌리라 부른다. 열대성 저기압이 육지로 상륙하면 마찰 등에 의해 급격하게 세력이 약해져 하루이틀이면 소멸한다. 지구온난화는 육지로 상륙한 열대성 저기압이 더 오랫동안 세력을 유지하게 해 내륙 깊숙이까지 진출하며 피해를 키운다는 사실이 일본 연구팀에 의해 밝혀졌다.
일본 오키나와과학기술대학원대학(OSIT) 연구팀은 12일(한국시각) “1967년부터 2018년까지 북대서양지역으로 상륙한 허리케인들을 분석한 결과 1960년대 허리케인들은 상륙 하루 만에 강도가 75% 정도 약해진 반면 최근에는 50%밖에 약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연구팀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 이날치에 실렸다.
그동안 많은 과학자들은
기후변화가 허리케인 같은 열대성 저기압의 강도를 높인다고 보고해왔다. 하지만 내륙에 상륙한 일부 허리케인과 기후변화가 어떤 상관관계를 보이는지에 대한 연구는 미흡했다.
일본 오키나와과기대 연구팀은 허리케인이 상륙한 뒤 소멸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해수면 온도가 강한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것을 밝혀, 지구온난화로 허리케인이 내륙 깊숙이까지 침투할 가능성을 증명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50여년 동안 상륙한 허리케인 71개의 강도 변화와 소멸 시간을 분석했다. 논문 제1저자인 오키나와과기대 박사과정 연구원 린 리는 “허리케인의 소멸 시간을 조사해보니 해가 갈수록 더 늘어났다”며 “하지만 변화가 선형으로 이뤄지지 않고 기복이 있었는데, 그 부침이 해수면 온도의 상승 하강과 일치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4개의 서로 다른 허리케인과 해수면 온도를 조건으로 컴퓨터 모사(시뮬레이션) 실험을 했다. 가상의 허리케인의 강도가 카테고리 4에 이르면 허리케인 하부에서 공급되는 수증기를 중단시켜 상륙을 모사했다.
일본 오키나와과기대 연구팀이 컴퓨터 모사 실험을 해보니, 해수 온도가 증가하면 허리케인의 소멸 시간이 늘어나 해안에서 훨씬 멀리까지 침투한다. <네이처> 제공
연구팀은 이 과정을 자동차에 비유했다. 자동차에서는 연료가 연소돼 나오는 열 에너지가 동력으로 전환된다. 허리케인에서는 해수면에서 공급되는 수증기가 ‘연료’로 작동해 허리케인의 파괴력을 키우고 유지시킨다. 수증기의 열 에너지가 강풍으로 변하는 것이다. 리는 "허리케인의 상륙은 자동차 엔진에 연료 공급을 중단하는 것과 같다. 연료 공급이 중단되면 자동차 속도가 줄어들듯이 수증기 공급이 끊기면 허리케인은 소멸하기 시작한다”고 했다.
최근 허리케인들은 50년 전 허리케인들보다 소멸 속도가 느리다.(왼쪽 그래프) 강도가 느리게 약해진다는 것은 더 깊숙한 내륙까지 침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오른쪽)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팀의 가상 실험에서 허리케인들이 강도가 다른 상태로 상륙했음에도 좀더 따뜻한 물에서 발달한 허리케인들은 공통으로 소멸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논문 교신저자인 피나키 차크러보티 오키나와과기대 교수는 “허리케인이 상륙해 해수면과의 연결이 끊겼을 때에도 해양의 온난화 정도와 허리케인의 소멸 속도가 비례한다는 사실이 가상 실험에서도 과거 자료 분석과 똑같이 증명됐다”며 “하지만 왜 그런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해답을 ‘비축된 잔여 수증기’에서 찾았다. 허리케인이 상륙할 때 더 이상 해양에서 수증기를 공급받지 못하지만 잔여 수증기는 여전히 남아 조금씩 줄어든다. 연구팀은 이 잔여 수증기를 조건으로 모사 실험을 해 좀더 따뜻한 해양에서 발달한 허리케인들이 더 많은 잔여 수증기를 비축해 오랫동안 세력을 유지하며 소멸 속도를 늦춘다는 것을 밝혀냈다. 연구팀이 이 잔여 수증기가 없는 상태를 가정해 모사 실험을 해보니 해수면 온도가 달라져도 허리케인의 소멸 시간이 달라지지 않았다.
차크러보티 교수는 “연구 결과는 허리케인의 파괴력이 미래에는 더 깊은 내륙에까지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수립할 때 강한 바람과 폭우에 대비한 방책이나 기반시설이 부족한 내륙지역에 좀더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