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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가 가장 불안정했던 축의 시대와 소빙기

등록 2020-12-31 08:59수정 2021-12-31 15:03

[조천호의 파란하늘]
혹독한 기후재해 ‘축의 시대’에 종교 등장
소빙기 때 종교·농업·사회·과학혁명 일어나
기후위기 맞은 인류는 새 세상 이뤄낼까?
기원전 8∼3세기 기후재해가 닥친 ‘축의 시대’에 세계 각지에서 종교가 등장했다. 왼쪽부터 공자, 부처, 소크라테스, 예레미야. <한겨레> 자료사진
기원전 8∼3세기 기후재해가 닥친 ‘축의 시대’에 세계 각지에서 종교가 등장했다. 왼쪽부터 공자, 부처, 소크라테스, 예레미야. <한겨레> 자료사진

1만년 전 농업이 시작됐던 이후 가장 극심했던 기후로 인류가 고통받았던 시기는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까지 ‘축의 시대’(Axial age)와 14세기에서 19세기까지 ‘소빙기’였다. 이때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도약의 발판을 닦은 시기이기도 했다.

산업혁명 이전, 문명의 성쇠는 농작물의 성장 조건을 결정하는 기후에 크게 영향받았다. 홀로세에서 기원전 4천년을 전후한 2천년 동안을 ‘기후 최적기’라 부른다. 농업 생산력이 좋아 고대 문명이 탄생했고 도시가 건설돼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좁아졌다. 문명은 풍요와 안전을 가져다줬지만 계급의 출현으로 대부분 사람들의 삶은 고달팠다.

기원전 2천년께부터 거대한 화산 폭발이 심해지고 한랭 건조해졌다. 식량이 부족해지자 문명화된 세상이 오히려 정치, 경제,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켰다. 결국 고대 문명이 무너졌다. 다른 문명에 비해 오랫동안 유지되던 이집트 왕국도 기원전 1070년에 막을 내렸다. 중국에서는 태평성세였던 요순시대가 끝나고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가 차례로 등장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유목을 하던 아리안족이 인도를 침입했다. 이들은 기존 인더스 문명을 일으켰던 민족을 몰아내고 인도의 주인이 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기상학>에서 “앞서 좋은 기후를 향유하던 장소들이 퇴락하고 말라갔다. 이러한 일이 그리스의 미케네에서 벌어졌다.(중략) 미케네는 산출이 적은 완전히 마른 땅이 되었고…”라고 언급했다. 그리스에서 미노스 문명에 이어 미케네 문명이 발생했지만, 기원전 13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붕괴한 것이다. 지중해 동쪽 지역은 바다 쪽에서 정체불명의 민족이 기존 왕국을 지속해서 침공했다. 철기 문명을 일으켰던 소아시아 히타이트 왕국도 오래가지 못하고 기원전 1160년에 멸망했다.

히타이트 왕국이 쇠락하자 철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철기는 청동기보다 더 단단하고 대량으로 만들 수 있어 일반인도 사용하게 됐다. 이로 인해 토지개간이 좀더 쉬워져 줄어드는 곡물 수확량에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었다. 기근을 몰고 온 기후가 철기 시대를 연 것이다. 불리한 기후 조건이 오히려 기술혁신을 촉발했다.

지난 1만년 동안 북반구 평균 기온의 변화. 출처 The Holocene Climates of South Africa, Fitchett, 2018
지난 1만년 동안 북반구 평균 기온의 변화. 출처 The Holocene Climates of South Africa, Fitchett, 2018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그 전보다 혹독한 재해성 기후로 인해 농업 생산량이 크게 떨어졌다. 식량 부족으로 절망적인 상황에 부닥친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섰다. 민족의 이동이 심해져 민족간 충돌이 많아진 것이다. 철기 무기는 대규모 무장을 가능하게 했고 말이 끄는 전차로 인해 전쟁이 참혹해졌다.

당시 민족 이동은 정치·경제·사회뿐만이 아니라 정신세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민족들이 뒤섞이는 상황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만나게 되고, 이로부터 새로운 사상이 싹틀 환경이 조성됐다. 이때 생겨난 종교와 철학은 당시 배고픔, 사회불안과 전쟁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축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다. 그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모든 정신적 기원이 축의 시대에 생겨났다고 했다. 종교적 사고와 의식은 선사시대부터 인류의 정신을 지배해왔지만 체계적으로 사상, 의식과 경전 등을 갖춘 근대종교가 탄생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인도에서는 힌두교가 등장했고 가뭄이 빈발하고 굶주림이 만연하는 가운데 기원전 566년 석가가 탄생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깨달음으로 불교를 열었다. 중국에서는 주왕조 멸망 뒤 춘추전국의 혼란 시대에 제자백가들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사상을 전파했다. 유교를 확립시킨 공자(기원전 551-479)와 도교를 일으킨 노자도 이 시기에 활동했다. 유대교는 기원전 7세기 바빌론 포로 시기에 종교적으로 뚜렷한 특징을 가지게 됐다.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전 이후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 플라톤 (기원전 427-347),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가 활동했다.

영국의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축의 시대 당시 종교적 ‘믿음’이란 단어의 원래 의미는 특정한 신념을 따른다는 것처럼 좁은 의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각기 독립된 지역에서 발생한 종교는 “다른 사람이 너에게 했을 때 네가 싫어할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아라”라는 동일한 가르침을 줬다는 것이다. 삶의 피할 수 없는 진실인 고통에 직면해야 하고,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지라고 했다. 그리스에서도 연극 무대에서 비극을 공연해 그곳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려 했다. 이렇듯 종교는 신을 믿거나 믿지 않는다고 결정하기보다는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세상 중심에서 자신을 비워야 비로소 완전한 상태에 도달하거나 신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이 위대한 스승들의 가르침은 지금까지도 인류의 종교적 철학적 성찰의 근본을 이루고 있다.

중세 온난기였던 9세기에서 13세기까지 기후 조건이 좋았다. 농업생산량이 늘어 전 세계 인구가 9세기 초 2억명에서 13세기 말에는 4억명으로 2배 늘었다. 하지만 이때를 중세 암흑기라고 한다. 사상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위키미디어 코먼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위키미디어 코먼스

14세기 이후 400년에 걸쳐 북반구 평균 기온이 0.6도 떨어져 소빙기에 진입했다. 날씨 변동이 심해 가뭄과 폭풍우가 자주 일어났는데, 이는 기온 하강보다 농작물에 극심한 피해를 줬다. 소빙기 기근은 중세 온난기에 늘어난 인구로 더 큰 고통을 안겼다.

영양실조에 걸린 몸은 면역도 약하기 때문에 감염병 피해도 컸다. 특히 1347년 이후 유럽을 휩쓴 흑사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으로 추산된다. 유럽에서는 왕국 간 다툼과 종교 갈등이 고조돼 폭동과 전쟁이 자주 발생했다.

한편 소빙기에 각종 자연재난이 닥치고 수확량이 떨어지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합리적인 방법을 찾는 움직임도 일어났다. 영농 혁신의 선두 주자는 네덜란드였다. 휴경지 농법을 고안하고 농작물 재배를 다양화했으며 기상 이변에 대비해 댐을 쌓아 간척지를 개척했다.

기상 이변, 흉작과 감염병의 원인을 신의 분노나 마녀의 저주에서 찾지 않고 그 사회 체제의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 프랑스 시민은 기근으로 인한 불행이 불평등한 사회체제 때문이라고 여겼다. 자연 재난의 위기가 사회·경제적 위기를 넘어 종교·정치적 위기로 치달았다. 결국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 봉건제가 무너졌고 이것이 오늘날 민주주의의 기반이 됐다.

천동설이 무너지고 지동설이 확립됐다. 과학자들은 더는 정통적인 권위에 따르지 않고 관찰과 실험으로 물질세계를 해석하려 했다. 이 근대과학을 기반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리스의 학문을 부활시켜 합리적 사유의 길을 열어준 르네상스가 일어났다.

자연적인 재앙을 합리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과학, 농업과 산업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이뤘다. 이와 함께 정치·사회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상이 출현하여 정의, 자유, 평등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근대로 이행할 수 있었다. 소빙기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기였지만 오늘날 문명의 싹을 틔운 시기이기도 했다.

기후 조건이 좋았던 고대 문명 시기와 중세 온난기에 쌓여 가던 문제점들이 기후 조건이 안 좋았던 축의 시대와 소빙기에 각각 폭발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구가 가장 잘 먹고 누리고 있는 찬란한 문명의 시대에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욕망을 향해 내달려 기후위기가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위기에서 벗어날 것인가? 축의 시대와 소빙기를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는 미래라는 어둠 속으로 들고 갈 횃불이 될 수 있다. 인류는 끊임없이 넘어지고 그러다가도 폭삭 무너져 소멸 직전에 용케 추스르기를 반복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온 존재다. 언제나 인류의 희망은 내달려 온 큰 길이 아니라 그 언저리 어둠 속에 있었다. 레베카 솔릿은 <어둠 속의 희망>에서 “진정한 희망은 이 세계가 처한 곤경을 이해하는 힘과 어쩌면 불가피하지도 불변적이지도 않은 이런 상황 너머 무엇이 가능한가를 내다보는 상상력을 요구한다”고 했다. 세상을 바꿀 힘을 우리가 지니고 있다는 희망과 이 세상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으로 변할 것이라는 희망이 새 세상을 열게 한다고 과거는 우리에게 이야기해준다.

지금까지 인류는 가장 혹독한 기후에서 그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세상을 이뤄냈다. 다가오고 있는 기후위기에서 우리는 어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낼 것인가?

경희사이버대학 기후변화 특임교수 cch0704@gmail.com">cch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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