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에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한 데 대해 한 트위터 이용자(@ECOWARRIORSS)가 과학자들이 수년 전부터 북극발 한파에 대한 대비를 요구해왔음에도 당국이 무시했다고 지적하는 트윗을 올렸다.
지난주 한파로 꽁꽁 얼어버린 미국 텍사스에서 가장 타격이 컸던 전력원은 재생에너지가 아니라 가스발전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4∼15일(현지시각) 북극발 한파가 텍사스를 강타해 470만 가구와 사무실에 전기와 난방이 끊기고 수십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텍사스주 발전소들이 눈 폭풍을 동반한 혹한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놓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지적했다. 겨울철 텍사스 전력공급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가스와 석탄화력발전에서 2만9천㎿가 정전되고, 풍력발전에선 1만6천㎿가 끊겼다. 4기의 원전 가운데 1기도 멈췄다. 텍사스 전력원에서 2010년 전체의 40%를 차지하던 석탄화력발전은 지난해 18%로 줄어든 반면, 풍력발전은 23%까지 상승했다.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하자 그렉 애포트 텍사스주 주지사 등 보수정당 정치인들은 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에 비난의 화살을 돌렸지만, 가장 타격이 심각했던 전원은 가스발전이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대니얼 코헌 휴스턴 라이스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는 “모든 전력원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했지만, 가스발전의 공급 부족량이 다른 전력원들의 부족량을 모두 합친 것보다 컸다”고 말했다.
대규모 정전 기간에 가스발전은 전력망에 다섯 차례 공급을 중단했으며, 가스발전 생산시설뿐만 아니라 가스수송 관로가 얼어버렸다. 일반 가정과 사무실의 난방용 가스 수요가 치솟아 가스공급 부족을 부채질한 데다, 비싸진 가스 가격에 이윤을 내지 못하자 가스발전사들이 발전소 가동을 중단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
텍사스 주요 도시의 연평균기온은 미국 동부 도시들의 여름 평균기온과 맞먹는 20도 안팎에 이른다. 2019년 우리나라 연평균기온은 13.5도였다. 조수아 로드스 텍사스주립대 에너지공학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지만, 그동안은 발전소의 방한 대비 필요성이 거의 없었다”라고 말했다.
텍사스의 전력시스템에는 극한 기상현상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2014년 겨울 나이아가라폭포를 100여년 만에 얼린 한파가 닥쳤을 때 캐나다는 전력시스템 동결에 대한 보강에 나선 반면, 텍사스는 오히려 규제 완화에 나섰다. 또 텍사스에는 외부에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연결망이 구축돼 있지 않았다.
이번 혹한으로 발전소들이 전력망에서 이탈하자마자 텍사스 안 전력 수요는 겨울철 상한치를 넘어서 여름철 혹서기 때의 수요와 거의 맞먹었다. 텍사스주 전력망을 감독하는 텍사스전력신뢰도위원회(ERCOT)는 “14일 최대 수요가 6만9천㎿에 이르러 비상계획의 최악 시나리오 범주를 넘어섰다”며 “전력시설의 장기적 피해를 막기 위해 즉시 강제정전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대규모 정전을 일으킨 2011년의 얼음 폭풍과 같은 조건이라면 겨울철 최대 전력 수요량이 주 전체에서 6만7천㎿를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코헌 교수는 “주의 비상계획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이번 혹한에 의한 대규모 정전의 규모, 특히 가스발전소의 정전 규모를 예측하는 데는 실패했다”며 “어떤 시나리아도 동시에 3만㎿의 전력이 정전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노아)은 지난해 코로나19에 온 정신이 쏠려 있는 사이 미국에서 스물두 차례의 이상기상 현상이 발생해 10억달러 이상의 피해가 났으며, 이 가운데 16건은 기존 기록을 뛰어넘는 것들이었다고 밝혔다.
이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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