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위험한계와 사회 기반을 넘지 않는 ‘도넛 경제학’으로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를 ‘거대한 가속’이라 하며 이때 세계적으로 빈곤과 기아에서 상당히 벗어났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회경제가 성장했다는 사실이 좋은 미래를 맞이할 것이라는 그 어떤 증거도 되지 못한다. 오히려 성장으로 인해 인류가 위험에 빠지고 있다. 유한한 지구에서 더는 무한한 인간의 욕망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는 그의 저서 <도넛 경제학>에서 지구 한계 안에서 모두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영역을 정의했다. 인류가 지속하려면 도넛처럼 두 원 사이에 존재해야 하는데 바깥 원은 넘어서는 안 되는 상부 경계인 ‘지구위험한계’이며 안쪽 원은 무너지면 안 되는 하부 경계인 ‘사회 기반’이다.
바깥 원은 인류가 넘으면 안 되는 지구위험한계 9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안쪽 원은 누구도 무너져서는 안되는 12가지 삶의 필수 요소로 구성된다. 출처: 학고재
자연은 생명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인 물, 탄소, 산소, 질소와 인 등을 끊임없이 순환을 시켜 생명을 지속시킨다. 노폐물조차 또 다른 생명에 필요한 양분이 되어 순환된다. 반면 사람이 만드는 세상은 순환되지 않는다. 경제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에너지와 자원을 고갈시키는 한편, 온실가스, 오염물질, 폐기물을 쌓아 놓는다.
자연은 경제성장을 위한 ‘부차적인’ 위치가 아니라 인류가 지속하기 위한 ‘최우선적인’ 위치에 놓여야 한다. 지구의 한계가 사람이 만드는 세상의 한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2009년 록스트룀과 스테펀이 이끄는 지구시스템 과학자 그룹은 인류가 넘으면 안 되는 지구위험한계를 정하였다. 이는 기후변화, 성층권 오존, 토양 사용, 민물 사용, 생물다양성, 해양 산성화, 질소와 인, 에어로졸, 화학 오염물질로 구성된다. 이 지구위험한계를 넘어서면 숨 쉴 공기, 마실 물, 먹을 식량이 없는 세상에 들어서게 된다. 이보다 인류에게 더 제한을 가하는 지배적인 조건은 없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꾸게 될 것이다.
특히 몇 억 년에 걸쳐 만들어진 매장된 햇빛인 화석연료를 태워 온실가스가 공기 중에 쌓여 기후위기를 일으키고 있다. 기후위기는 지구 순환을 변화시킨다. 대기 순환, 해양 순환, 물 순환, 탄소 순환은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 과정이지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구 순환의 변화는 농업이 불가능한 기후, 재해성 날씨, 해수면 상승, 황량한 산림과 바다, 멸종, 감염병 등을 일으켜 생존 기반을 무너뜨린다. 기후위기는 그 피해의 시공간적 규모가 인류가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통제 불가능한 위험이며 임계점을 지나면 대응할 수가 없는 회복 불가능한 위험이다.
도넛의 아래쪽 한계인 사회 기반은 부족해서는 안 되는 삶의 기본 요소들로 이루어진다. 이는 충분한 식량, 깨끗한 물, 양질의 보건 위생, 에너지 접근권, 교육 서비스, 제대로 된 주거, 기본 소득과 안정적인 일자리, 정보망으로 구성되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성 평등, 사회적 공정함, 정치 발언권, 평화와 정의가 지켜져야 한다. 이 사회기반이 무너지면 인간의 존엄성도 무너진다.
사회기반은 지구위험한계와 연결되어 있다. 소득 수준 상위 20%의 사람들이 생산된 자원의 80%를 사용한다. 가장 부유한 상위 1%가 소득 수준이 낮은 세계 절반인 사람들보다 이산화탄소를 2배 이상 배출한다. 기후위기의 원인은 부유한 사람인 데 반하여 그 결과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혹독하다.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기반을 지켜낼 형편이 못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후위기를 일으킨 사람들이 이들에게 보상하지도 않는다.
부유한 사람들은 지구위험한계를 넘어 살고 있고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 기반이 무너진 상태에서 살아간다. 지구 위험은 빈자와 부자, 변두리와 중심부라는 이미 존재하는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지구 위험이 커질수록, 아무리 부유하고 힘 있는 자들일지라도 그 위험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적어진다. 사회 밑바닥에 있는 모든 부와 자원을 흡수해서 꼭대기로 끌어 올리는 이런 불평등은 더 지속할 수 없다. 불평등이야말로 자연도 사회도 함께 붕괴로 몰아갈 최적의 조건이다.
국가별 지구위험한계와 사회기반의 상태. 왼쪽 상단이 지구 한계 안에서 모두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이상적인 영역이다. 부유한 나라는 지구위험한계를 넘어서 있고 가난한 나라는 사회기반이 부족하다. 출처: https://goodlife.leeds.ac.uk
경제는 시장을 통해 인간의 생존과 욕구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것을 조달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에 좋은 것이 사회에도 좋은 것이라 한다. 모두가 부유해지려면 시장의 고유한 흐름을 인위적으로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런 자유로운 시장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유롭지 않다. 시장을 자유롭게 방치하면 엄청난 불평등에 빠뜨린다. 그리고 경제성장은 공짜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그 비용을 치러야 한다. 성장의 이면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기후위기, 생태계 파괴, 환경오염이 일어난다.
케이트 레이워스는 경제학에 수요와 공급의 법칙, 시장의 법칙, 수익 감소의 법칙 등이 있지만, 그것은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의 모방일 뿐이라고 여긴다. 경제는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처럼 고정된 법칙이 없고 설계일 뿐이다. 그러므로 지속 가능하고 정의로운 세상은 의식적으로 설계된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시장이 알아서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연을 변화시켜 더 번성하고 더 풍요롭게 살 수 있지만 여전히 자연적인 존재다. 그러므로 경제성장은 자연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 21세기의 설계는 지구라는 닫힌 시스템의 하위에 경제를 위치시켜야 한다. ‘좋은 삶’을 달성하려면 성장이 아닌 재생·분배적인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경제성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경제성장이 필요하다. 경제성장은 그 자체가 성공의 목표가 아니라 지구위험한계 안에서 사회기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성장 모델’이 아니라 이제부터 ‘도넛 모델’이 정책에 도입되면서 구체화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0년 출간된 책 <렛 어스 드림>에서 도넛 경제학이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하는 바티칸의 고민에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도넛 이론은 2015년년 유엔 지속가능한 개발목표(SDGs)에 적용되었다. 2020년 암스테르담은 도넛 모델을 공공정책의 기준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자원과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하는 순환 전략을 구축하고 사회적 배려를 강화하여 모두에게 좋은 삶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시민이 힘을 합쳐 새로운 시스템과 새로운 도시와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코펜하겐, 뉴질랜드 더니든과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도 암스테르담의 예를 따르기로 했다. 미국에서는 포틀랜드와 오스틴이 그 뒤를 따를 준비를 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이 세상은 화석연료에 기반하여 구축되었다. 인류는 이 조건에 탁월하게 적응해서 거대한 가속으로 성장해 왔지만, 이런 조건은 항구적이 아니라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자연에서 정상이라면 무한히 자라는 것은 없다. 우리 몸 안에서 끝없이 성장하려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암일 뿐이다. 이제 인간이 만든 세상이 너무 커져 지구위험한계를 넘어서려 한다. 지금 이대로 내달린다면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여건이 우리의 욕망보다 먼저 고갈될 것이다.
지구위험한계의 넘치는 부분과 사회 기반의 부족한 부분을 없애고 안전하고 공정한 도넛 공간을 지켜내야 한다. 이 공간은 타협과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지구가 베푸는 한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경희사이버대학 기후변화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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