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양지니는 병에 걸린 동종을 스스로 회피한다. ‘사이언스’ 제공
사회적 거리두기는 인간의 고유한 행동 같지만 다른 동물들도 본능적으로 비슷한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버지니아공대와 텍사스주립대, 영국 브리스톨대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7일 “개미, 박쥐, 새우, 꿀벌 등이 포함된 여섯 종의 동물들이 감염병으로부터 집단 감염을 막기 위해 자신이 위험에 빠질 수 있음에도 서로 피하거나 배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연구팀 논문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5일치에 실렸다.(DOI :
10.1126/science.abc8881)
사람들이 병에 걸렸을 때 다른 이와 거리두기를 하는 것은 동물들이 병에 걸렸을 때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이다. 인간이 아플 때 신체적으로 힘들어져 침대에 누워 있게 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만나 감염시킬 위험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인간은 종종 일이나 공부, 사회생활 때문에 이런 본능을 거슬러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린다.
논문 공동저자인 데이어 홀리 미국 버지니아공대 생물학부 교수는 “동물들을 관찰해보면 한 개체가 아플 때 자신과 사회 전체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사회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개미와 흰개미는 이런 행동에서 대표적인 동물이다. 이들은 종종 자신들이 병원균에 노출된 지 15분도 채 안 돼 완전히 감염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다른 개미들한테 경고 신호를 보낸다. 가령 진균포자에 맞닥뜨렸을 때 흰개미 일종은 곧바로 몸을 떨어 둥지 안에 있는 짝이 피할 수 있도록 하거나 반대로 집단 털 고르기를 하도록 유도한다. 물론 집단 털 고르기는 주변의 다른 개체들을 병원균에 노출시킬 수 있지만 병원균이 더 큰 피해를 발생시키기 전에 감염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곰팡이균에 감염된 개미들은 균에 노출된 지 몇 시간 안에 스스로를 둥지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킨다. 개미는 잠재적으로 증상이 나타날 것에 대응해 직접 행동을 변화시키는 이른바 ‘능동적 자가격리’를 한다. 얼핏 이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꿀벌이나 개미, 흰개미처럼
진사회성 곤충들은 집단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이기적’ 유전자는 그들이 질병을 극복하면, 곧 ‘집단면역’에 성공하면 다른 개체들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굴 속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흡혈박쥐. ‘사이언스’ 제공
흡혈박쥐들도 수동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비슷한 행위를 한다. 과학자들이 박쥐한테 아주 적은 양의 그램음성균을 주사했더니 이 균이 해롭지 않은 적은 양임에도, 비록 다른 박쥐들한테서 먹이로 피를 건네받는 등 일부 사회적 접촉을 한다 할지라도 집단 접촉에 훨씬 적게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논문 제1저자인 텍사스주립대 오스틴캠퍼스의 세바스찬 스톡메이어 연구원은 “박쥐의 수동적 거리두기는 질병 행동의 부산물이다. 예를 들어 아픈 박쥐는 에너지를 값비싼 면역반응을 얻기 위해 다 써서 무기력해진다. 관찰 결과 이 무기력함이 다른 박쥐들과의 접촉을 줄이고 집단 더듬기 행위를 덜 하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카리브해대하(새우)도 집단으로부터 신호를 받는다. 건강한 새우는 다른 새우가 아픈 기색을 보이면 선제적으로 서식굴을 떠난다. 이것은 홀로 포식자에게 노출돼 집단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에 위험한 결정이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치명적이라면 이 행동은 해볼만한 것이다.
구피는 기생충에 감염된 다른 개체를 피한다. ‘사이언스’ 제공
꿀벌은 잠재적인 감염에 대해 좀더 몰인정하게 대응한다. 벌집 전체에 더 이익이 된다면 건강한 꿀벌들은 아픈 꿀벌들을 고립시키고 심지어는 벌집 밖으로 끌어낸다.
일반적으로 집단은 아픈 사람을 배제한다. 어떤 사람이 아프면 냄새가 나거나 겉모습에 변화가 생겨 사람들이 그를 피하게 한다. 비행기 안에서 옆 사람이 기침을 하면 그와 얘기하기를 꺼리거나 거리를 두기 위해 반대쪽 좌석으로 몸을 기울일 것이다. 홀리 교수는 “인간은 진화하면서 내재화됐기 때문에 질병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행동 변화를 무의식적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강제 추방이 일부 영장류에서 관찰된 증거가 있고 인간역사상 강제 격리가 실제로 존재했으며 에볼라나 사스 같은 감염병에 대한 중요한 방역 수단으로 남아 있지만 포유류에서 실험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동물세계를 관찰한 결과 자가격리, 회피, 배제, 집단 사회적 거리두기는 전염병 확산의 정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병원균의 변이를 막기 위해 감염병 확산 초기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핵심이지만 유행 기간이 길어진다면 사회적 거리두기는 여전히 생명을 구하기 위해 중요한 수단”이라고 밝혔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