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실내 공기 전파가 코로나19의 주요 감염 경로로 인정됐다. 픽사베이
그럴 거라고 짐작은 하지만, 막상 사실로 확인될까 두려운 것이 있다. 아마도 전염병의 공기 전파가 그런 사례에 속할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초 팬데믹(세계적 대유행병)으로 발전한 이후 코로나19의 공기 전파 여부는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이하 시디시)가 최근 공기 전파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주요한 전염 경로로 공식 인정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공기 전파를 코로나19 전파 경로에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비말 전파나 접촉 전파 위주의 방역에서 벗어나 환기 등 공기 전파를 차단하기 위한 방역 대책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그러나 이번 지침 개정은 대외적인 공식 발표 없이 이뤄졌다.
시디시는 지난 7일(현지시각) 웹사이트를 통해 코로나19의 전염과 관련한 지침을 현재 지식을 반영해 수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코로나19의 주요 전파 경로는 미세한 호흡기 비말 및 에어로졸 입자에 의한 공기 전파, 비말을 통한 분사 전파, 오염된 손으로 코와 입, 눈을 만지는 접촉 전파 세 가지로 나뉜다. 시디시는 공기 전파를 감염 경로 가운데 첫째 항목으로 꼽았다.
시디시는 특히 크고 굵은 글씨로 `감염된 사람으로부터 6피트(1.8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도 공기 중 바이러스를 흡입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대부분의 감염이 “공기 전파가 아닌 밀접 접촉”을 통해 이뤄진다는 기존의 입장을 바꾼 것이다. 시디시는 “6피트 이상 거리에서의 공기 흡입을 통한 감염은 가까운 거리보다는 가능성이 낮지만 이런 현상이 반복해서 보고됐다”고 변경 사정을 밝혔다.
이어 이런 방식의 전염은 바이러스를 내뿜는 감염자가 실내에 15분 이상(때로는 몇 시간) 있는 경우에 발생하며, 때로는 감염자가 떠난 직후 같은 공간을 다녀간 사람한테도 전염된다고 설명했다. 시디시는 특히 환기가 불충분한 밀폐 공간에선 감염자가 운동을 하거나 큰 목소리로 말할 경우 감염 위험이 더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이번 지침 수정은 지난달 15일 영국 옥스퍼드대 트리샤 그린할프 교수(1차보건의료)가 이끄는 영국, 미국, 캐나다 공동연구진이 그동안 발표된 연구 결과를 종합해 ‘
코로나19의 공기 전파를 뒷받침하는 10가지 과학적 이유’라는 제목의 논평 논문을 발표한 지 3주만에 나온 것이다. 과학자들은 예컨대 2020년 2월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의 집단 감염(567명), 2020년 3월 미국 워싱턴주 마운트버논 합창단의 집단감염(53명)은 비말 전파로는 설명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크루즈선 승객들은 각자의 방에 꼼짝않고 있었으며, 단원들은 넓은 공간에서 얼마간 거리를 두고 노래 연습을 했다. 과학자들은 콘서트장, 요양원 등 실내에서의 슈퍼 전파, 인접한 방에서 마주친 적 없는 사람간 감염, 기침도 안 하는 사람에 의한 전파, 감염력 있는 바이러스의 공기 중 검출(실험 결과 3시간 감염력 유지), 환자가 있는 병원의 공기 필터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된 점 등을 공기 전파의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사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지난해부터 세계보건기구 등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공기 중 미세 입자로 떠다닌다는 연구들을 간과하고 있다고 경고해 왔다. 2020년 7월엔 32개국 과학자 239명이 보건기구에 공기 전파를 수용할 것을 촉구하는 공개 서한을 발표하기도 했다.
버지니아공대 린제이 마르(Linsey Marr) 교수(환경공학)는 <뉴욕타임스>에 “보건당국이 이제야 최신 과학적 증거를 채택했다”고 평가했다. 마르 교수는 그동안 보건 당국이 두 가지 과학적 오류에 빠져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첫째는 공기 중에 떠다닐 수 있는 입자 기준치를 잘못 설정한 것이다. 그는 과거 과학자들이 에어로졸 기준을 5마이크로미터(1마이크로미터=0.001mm) 이하로 본 것은 호흡기 입자가 하기도(기관지, 허파)에 도달할 수 있는 크기와 공중에 떠 있는 크기를 뒤섞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핵 전염의 경우 하기도에 도달할 수 있는 입자 크기가 중요하다. 마르 교수는 그러나 공기 중에서 흡입되는 입자가 있다면 그게 바로 에어로졸이라고 말했다. 그는 크기가 100마이크로미터 이하인 입자는 공기 중 떠다닐 수 있다고 주장했다. 둘째 오류는 거리가 가까울수록 에어로졸도 더 많다는 데 기인한다. 비말 전파 예방책은 에어로졸 전파도 예방해주는 효과가 있는데, 이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시했다는 것이다.
비말 전파는 지난 1세기 동안 주요한 감염 경로로 인식돼 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기존 지침 여전히 유효”…방역 수칙은 바꾸지 않아
미국 시디시에 앞서 세계보건기구도 4월30일 전염 경로에 대한 지침을 변경했다. 보건기구는 여전히 밀접 접촉을 강조했지만, 비말뿐 아니라 훨씬 미세한 입자인 에어로졸도 전파 경로에 포함시켰다. ‘바이러스의 주된 전파 경로는 서로 밀접하게 접한 사람들 간의 호흡기 비말(입에서 분출해 지면으로 빠르게 낙하)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는 기존 입장을 부분 수정한 것이다. 보건기구는 환기가 잘 되지 않고 사람들이 많은 실내 환경에서 코로나19가 전염될 수 있는데, 이는 에어로졸이 공중에 떠 있거나 1미터 이상 이동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시디시와 세계보건기구의 입장 변화는 그동안 과학자들이 제시한 공기 전파의 근거들을 검토한 결과, 과학적 타당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시디시는 그러나 에어로졸 감염 예방과 관련한 수칙을 강화하지는 않았다. 시디시는 “전염이 이뤄지는 방식에 대한 이해는 바뀌었지만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는 방법은 바뀌지 않았다”며 “기존에 권장하는 모든 예방 조처가 이런 형태의 전염에 유효하다”고 밝혔다. 시디시가 권하는 예방법은 마스크 착용, 다른 사람과의 거리 유지, 환기 안 되는 실내 공간 피하기, 손 세척과 소독 등이다.
시디시는 “바이러스 흡입(공기 전파)과 점막조직 흡착(비말 전파)의 상대적 기여도는 확인하기 어렵다”며 “그러나 현재의 증거들은 기존 예방 지침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입증해준다”고 밝혔다. 마스크, 거리두기, 환기는 공기·비말 전파 위험을 함께 줄여주고 손 소독은 접촉 전파를 막아준다는 것이다.
공기전파가 주요 경로로 확인된 이상 더욱 적극적인 환기 대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픽사베이
1세기만의 변화…“팬데믹 기간 중 이룬 공중보건의 중요 진전”
제이넵 투펙치(Zeynep Tufekci)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문헌정보학)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이번 지침 수정은 1세기 동안 유지돼 온 핵심적인 전염병 통제 가설에 도전하는 것”이라며 “팬데믹 기간 중 공중보건에서 이룬 가장 중요한 진전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다. 그는 “1년 전만 해도 보건당국의 지침에는 환기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며 공기 전파의 중요성이 조기에 수용됐다면 훨씬 더 효과적인 방역 대책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미국 시디시는 지난해 4월, 보건기구는 6월이 돼서야 마스크 권장 지침을 수용했다. 처음엔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려울 때 마스크를 쓰라고 하는 데 그쳤다. 보건기구는 12월 수정 지침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킬 수 있다면 실내 마스크 착용이 필수는 아니라고 했다.
공기 전파를 인정하는 데 왜 이렇게 인색했을까? 투펙치 교수는 그 이유를 두가지로 꼽았다. 하나는 보건 당국이 의료기관에서의 감염 확산 위험을 중심으로 지침을 검토하기 때문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오랜 관행을 바꾸기 위해선 더 엄격한 증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도에서는 바이러스가 공중에 떠다닌다는 소문에 사람들이 창문을 닫아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들었다”며, “세계보건기구는 이번 지침 수정을 중대한 변화로 인식하고 사람들이 더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적절한 캠페인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내 공기 전파를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는 환기다. 현재 질병관리청은 자연 환기가 가능한 경우 창문을 항상 열어두고, 계속 열지 못하는 경우는 주기적으로(오전·오후 각 2회 이상) 환기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환기를 할 때는 가능하면 문과 창문을 동시에 열어 놓는 것이 좋다. 방역당국은 미세먼지가 있어도 실내 환기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환기장치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공기량을 가능한 높게 설정하고 자연환기를 병행할 것을 권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