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자 명부 작성은 개인정보 유출 위험을 부른다. 픽사베이
회사 근처 식당. 식사 주문을 받으며 이용자 명부를 내민다. 이름·전화번호와 들어온 시간을 적고, ‘개인정보 동의’ 난에 체크 표시를 하라고 돼 있다. 앞줄 명단에서 회사 동료 몇의 이름이 보인다. 다 적었더니 명부를 넘겨받아 옆 빈 테이블 의자에 던져 놓고는 식사 주문을 받아 사라진다.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활동 지침에 따라 요즘은 술집·식당·카페·미용실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명부에 인적사항과 이용시간 등을 적게 하고 있다. 모두 코로나19 방역에 동참한다는 생각으로 이름과 연락처를 꼼꼼하게 적는다. 그런데 내 이름과 연락처가 담긴 명부가 빈 테이블 의자에 누구나 볼 수 있는 상태로 방치되는 모습을 보는 순간 걱정이 들었다.
‘저렇게 두면 쉽게 노출될 수 있을 텐데,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갈 수도 있을 텐데, 내 이름과 연락처가 남의
손에 넘어가 악용될 수 있을 텐데, 텔레마케팅에 시달릴 것 같은데…,’ 걱정이 꼬리를 물면서 밥맛은 이미 십리 밖으로 달아났다. 밥값을 계산하면서 “손님 인적사항과 연락처가 담긴 명부를 저렇게 둬도 되나요? 누가 몰래 찍어갈 수도 있을 텐데”라고 물었다. “시간 날 때마다 지켜보고 있으니 괜찮을 거예요”란 답이 돌아왔다. 그동안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는 꽤 고가에 거래됐다. 이를 수집해 파는 경우도 많았다.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걸어 대출을 싼 이자로 해주겠다고 하거나 새 스마트폰 교체 이벤트에 당첨됐다고 했다면, 연락처가 수집·유출돼 유통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계속 거래돼, 발신번호를 차단해도 다른 곳에서 또 온다.
서울 마포구 대흥동의 한 카페 들머리에 놓인 출입자 명부. 타인의 정보를 볼 수 없도록 낱장 기록 뒤 담아 둘 상자를 마련해두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식당과 카페 등의 이용자 명부에는 실존 인물의 실제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 있다. 텔레마케팅 사업자 등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를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쪽에서는 말 그대로 ‘순도 100%’짜리 정보다. 그만큼 정보 가치가 높다. 노리는 이가 없을 리 없다. 대부분 방치돼 있어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하는 방식 등으로 빼가기도 쉽다.
물론 명부 속 개인정보를 빼내 팔아먹는 행위는 불법이다. 처벌 대상이다. 하지만 손님 쪽에선 이미 개인정보 침해를 당한 뒤다. 명부를 방치한 자영업자들은 피해가 없을까. 손님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된 명부를 보며 개인정보 유출 걱정으로 이름과 연락처를 가짜로 적을 경우, 코로나19 방역에 구멍으로 작용해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길어질 수 있고, 그에 따라 식당과 카페 등의 어려움이 가속되는 악순환을 부를 수 있다.
결국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나섰다. 이름 대신 사는 지역(시·군·구)을 적게 하는 개선안을 내놨는데, ‘반쪽짜리’ 대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참에 이용자 명부 형태를 바꿔볼 것도 제안해본다. 지금처럼 남이 볼 수 있는 형태가 아닌, 명함 크기 정도의 개인별 명부에 방역에 필요한 사항을 적은 뒤 함에 넣게 하면 어떨까. 적어도 외부인이 몰래 빼갈 수 있다는 걱정은 덜어주지 않을까.
김재섭 선임기자 겸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