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0년 디지털 아카이브]
“나는 아주 소심한 사람이다. 얼마만큼 소심하냐 하면 이 칼럼난의 필자가 돼 달라는 청탁을 받았을 때 앞서 한겨레신문의 지면을 빛낸 명필자들이 겪고 있는 고초부터 생각나서 피하고 싶었다.” 1989년 5월11일, 한겨레신문에 첫 칼럼을 쓴 박완서는 수줍은 고백으로 글의 들머리를 열었다. 이 칼럼은 매주 목요일마다 신문 1면을 장식하는 ‘한겨레 논단’에 실렸다.
‘한겨레 논단’은 창간 초기 한겨레 1면의 대표 상품이었다. 칼럼을 1면에 도드라지게 편집한 시도 자체가 파격이었다. 글도 워낙 좋았다. 1988년 5월 19일, 한겨레 논설고문이었던 소설가 최일남을 시작으로 리영희, 경제학자 변형윤, 변호사 조영래 등 4명이 번갈아 글을 썼다. 강만길, 박완서, 백낙청, 한승헌 등이 필자로 합류하며 칼럼 게재 횟수도 주 2회로 늘어났다.
칼럼 때문에 한겨레를 읽는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매력적인 칼럼들을 두고두고 읽고 싶다는 독자들의 요구가 많아 ‘한겨레 논단’은 1989년 7월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다. 이에 버금가는 명칼럼이 여론면에 실린 ‘이렇게 본다’였다. 나중에 ‘더불어 생각하며’로 이름을 바꿨는데, 필진을 따로 정하지 않고 날카로운 필력의 지식인들 글을 번갈아 실었다.
당시에 다른 신문들은 사내 논설위원들이 사설과 칼럼을 도맡아 썼다. 한겨레는 사내 논설위원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한국사회의 내로라하는 글쟁이들에게 지면을 개방했다. 외부인을 논설위원으로 모시기로 했다. 기자들의 특권 의식을 배제하겠다는 한겨레 창간 정신에도 어울리는 결정이었다. 임재경과 권근술이 초대 논설위원실 구성을 책임졌다.
리영희(국제와 정치), 최일남(문학과 문화), 김금수(노동), 정운영(경제), 조영래(법조), 최장집(정치) 등 초대 논설위원의 면면은 화려했다. 사내에서는 김종철, 신홍범이 초대 논설위원을, 권근술 편집이사가 논설간사를 맡았다. 송건호(▶송건호 칼럼 모아보기) 대표이사와 임재경(▶임재경 칼럼 모아보기) 편집인도 가끔 칼럼을 썼다.
리영희(▶리영희 칼럼 모아보기)는 한국 사회의 맹목적 냉전 반공 의식에 맞서 싸운 당대의 지식인이었다. “한겨레신문을 만드는 분들에게 그래도 뭔가 말을 하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말을 하다 말고 달포 동안 글을 안 쓰는 것으로 생각을 전했었다. 한겨레신문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최근에 열린 주주총회의 뒷자리에 앉아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인 한겨레 주주들의 뜨거운 마음에 감동되어 놓았던 펜을 다시 들게 되었다. 한겨레신문의 독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1988년 9월 15일 ‘한겨레 논단’에 실린 리영희의 칼럼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는 한겨레를 향한 애정이 듬뿍 배어났다.
한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정초한 정운영(▶정운영 칼럼 모아보기)은 방대한 지식 위에 예리한 관점을 얹어 경제 문제를 파고들었다. 창간호에 쓴 ‘경제민주화 방향과 과제’라는 제목의 칼럼은 30년 뒤인 2018년에도 곱씹어볼만한 명칼럼이다. 정운영은 1988년부터 1999년까지 한겨레에서 일했다. 《전태일 평전》을 쓴 변호사 조영래는 1990년 마흔넷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한겨레 지면을 통해 인권과 노동 문제에 천착했다. 이들이 터를 닦은 덕분에 한겨레의 논설과 칼럼은 한국 진보 담론의 산실이자 중심이 되었다.
그 뒤를 이어 지난 30년 동안 한겨레 지면을 빛낸 글쟁이들이 많다. 김선주, 손석춘, 정연주, 홍세화의 칼럼은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많았다.
김선주(▶김선주 칼럼 모아보기)는 사소한 일상으로부터 사회와 삶의 본질을 길어내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가장 좋아하는 칼럼으로 김선주의 글을 꼽았다.
손석춘(▶손석춘 칼럼 모아보기)의 담백한 글은 1990년대 특히 젊은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손석춘은 ‘여론읽기’라는 고정 칼럼을 썼고, 《신문 읽기의 혁명》, 《부자 신문 가난한 독자》 등 언론개혁과 관련한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정연주(▶정연주 칼럼 모아보기)는 2000년대 초에 보수 언론을 일갈하는 칼럼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0년10월, ‘한국 신문의 조폭적 행태’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는데 이때부터 ‘조폭 언론’이라는 말이 보수 언론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되었다.
홍세화는 1999년부터 지금까지 ‘빨간 신호등’, ‘홍세화 칼럼’ 등의 문패를 달고 칼럼을 쓰고 있다(▶홍세화 칼럼 모아보기)
1988년 창간 때부터 한겨레에 몸 담으면서 기자 생활의 대부분을 문학 기사를 써온 최재봉은 《거울나라의 작가들》, 《그 작가 그 공간》등 문학과 관련한 책을 주로 펴냈다. 고명섭은 출판 평론계에서 내로라하는 글을 쓰는 기자이자 시인이다.
그간 한겨레21에 썼던 기사들을 묶어 2017년 《웅크린 말들》을 펴낸 이문영(▶이문영 기사 모아보기)은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가 “난쏘공의 난장이들이 자기 시대에 다 죽지 못하고 그때 그 모습으로 이문영의 글에 살고 있다”고 극찬할 정도의 미문을 쓴다. <씨네21> 김혜리(▶김혜리 칼럼 모아보기)의 섬세한 감성이 묻어나는 글을 사랑하는 독자들도 많다.
기자를 그만두고 글쟁이로 본격적으로 변신한 이들도 있다. 기자 생활 중에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던 김소진은 1995년 한겨레를 떠난 뒤에 왕성하게 소설 집필에만 전념하며 《장석조네 사람들》, 《자전거 도둑》 등을 잇따라 펴냈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삶은 짧았다. 1997년 위암으로 투병하다가 서른넷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문화부 기자였던 조선희는 <씨네21> 편집장을 마지막으로 2000년 한겨레를 떠났다. 그는 에세이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 소설 《햇빛 찬란한 나날》, <세 여자> 등을 펴내며 여전히 글쟁이로 살고 있다. 한겨레21 편집팀장 출신의 유현산은 출판사 자음과모음이 주최한 제1회 네오픽션상 수상자로, 장편소설 《1994년 어느 늦은 밤》을 썼다. 시인으로 등단한 뒤에 한겨레에 입사한 14대 대표이사 고광헌은 2011년 두 번째 시집 《시간은 무겁다》를 펴냈다.
거꾸로 소설가가 한겨레 기자로 일한 경우도 있다. 소설가 김훈은 2002년부터 1년 가까이 사회부 기동팀 경찰기자로 일했다. 김훈이 사회면에 쓴 ‘거리의 칼럼’은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명문이다. (▶김훈 '거리의 칼럼' 모아보기)
소설가 김중혁은 2006년 12월부터 생활문화 매거진을 표방한 섹션 ESC 창간 과정에 합류하여 2007년 9월까지 1년 9개월 동안 객원기자로 일했다.
30년간 한겨레에 칼럼을 썼던 글쟁이들은 일일이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다. 한겨레를 거치지 않은 진보 논객은 없다고 봐야 한다. 박원순(▶박원순 칼럼 모아보기), 박호성 등은 비상임 논설위원을 지냈다. 이오덕은 우리말에 대한 칼럼을 썼다. 경제·노동 분야에 특히 명칼럼니스트가 많았다. 강수돌, 김기원, 김대환, 김수행, 박현채, 변형윤, 장하성, 정운찬, 조순 등 이 분야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한겨레에 글을 썼다.
문화계에선 공지영, 김선우, 김소연, 도정일, 박노해, 박완서, 백낙청, 송경동, 송기숙, 신경림, 양귀자, 염무웅, 유홍준, 윤정모, 은희경, 장정일, 정여울, 조세희, 조정래, 현기영, 황현산 등이 글을 많이 썼다. 수준 높은 문화평론은 한겨레의 또 다른 자랑이다. 한겨레에 고정 칼럼을 썼던 이효인, 정성일, 서동진, 이명인, 강헌 등이 대중문화 평론의 지형을 바꿔놓았다. 인문학 및 사회과학계에선 강만길, 김동춘, 김우창, 남재희, 박명림, 송두율, 신영복, 안병욱, 장을병, 조국, 조한혜정, 조효제, 한승헌 등이 단골 필자로 등장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신세대 논객’들이 한겨레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강준만(▶강준만 칼럼 모아보기), 김규항, 박노자(▶박노자 칼럼 모아보기), 진중권(▶진중권 칼럼 모아보기), 한홍구(▶한홍구 칼럼 모아보기) 등이 대표적이다. 해박한 지식과 급진적인 관점으로 세간의 편견을 뒤엎어버린 이들의 도발적 글은 2000년대의 젊은이들에게 특히 주목을 받았다.
인문사회 분야의 지식인이 아닌 새로운 유형의 필자들도 한겨레를 통해 데뷔했다. 구체적 삶에 밀착한 글을 써서 공감을 얻었다. 시골 의사 박경철, 버스 운전사 안건모, 영화인 오지혜(▶오지혜 칼럼 모아보기), 과학자 정재승(▶정재승 칼럼 모아보기), 노동운동가 하종강(▶하종강 칼럼 모아보기), 여행가 한비야(▶한비야 칼럼 모아보기) 등이 삶에 밀착한 글을 써서 공감을 얻었고 유명 칼럼니스트로 성장했다.
여러 한국 언론 가운데 유독 한겨레를 편애한 외국 칼럼니스트들도 있다. AP와 워싱턴포스트 특파원 출신의 국제문제 전문가 셀리그 해리슨, 도쿄대 명예교수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 와다 하루키, 반세계화 운동의 대표적 이론가인 필리핀대 교수 윌든 벨로,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사회과학계의 대부 임마누엘 월러스틴 등이 대표적이다.
리영희 논설고문이 쓴 <한겨레논단>의 유명한 칼럼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조영래 변호사. 한겨레 자료사진
임재경 전 한겨레 부사장. 한겨레 자료
리영희 한겨레 창간 논설고문.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창간 논설위원이었던 정운영. 한겨레 자료사진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위원. 한겨레 자료사진
손석춘 전 한겨레 논설위원. 한겨레 자료사진
정연주 전 한겨레 논설위원. 한겨레 자료
홍세화 전 한겨레 기획위원. 한겨레 자료사진
조선희 전 씨네21 편집장. 한겨레 자료사진
소설가 김훈. 한겨레 자료사진
박노자 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 이 글은 한겨레 창간 30돌을 맞아 디지털 역사관인 '한겨레 아카이브'에 소개된 내용의 일부입니다. 한겨레의 살아 숨쉬는 역사가 궁금하시다면, 한겨레 아카이브 페이지(www.hani.co.kr/arti/archives)를 찾아주세요. 한겨레 30년사 편찬팀 achiv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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