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5월, 이문옥 감사관이 첫 공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그는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 실태를 한겨레에 제보해 폭로한 뒤 기밀누설 혐의로 구속되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0년 여름 어느날, 서울형사지법의 한 재판정.
재판장 “피고가 근무하는 감사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피고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에 있습니다.”
재판장 “한겨레신문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피고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양평동에 있습니다.”
재판장 “삼청동에서 양평동 한겨레신문사까지 가는 사이에 한국일보사 등 다른 신문사들이 있지요?”
피고 “예, 한국일보사, 동아일보사, 조선일보사, 경향신문사 등이 있습니다.”
재판장 “가까운 거리에 그러한 신문사들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멀리 떨어져 있는 한겨레신문사까지 찾아갔습니까?”
피고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몇 년 전에 군인 두 분이 어떤 신문사를 찾아가서 양심선언을 하겠다고 했다가 거절당한 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찾아가서 양심선언을 하였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으며, 둘째, 만약 다른 신문사에 찾아갔다가 거절당하면 내가 의도했던 제도 개선은 이루어지지 아니한 채 정보만 누설될 위험이 있고, 셋째, 한겨레신문은 6만여 명의 주주와 과거 군사정권에 의하여 해직되었던 기자들이 정성껏 가꾸어 가고 있는 신문이기 때문에 나의 뜻을 충족시켜줄 것으로 믿었습니다.”
피고는 감사원에서 일했던 이문옥이라는 감사관이었다. 그는 국세청이 로비를 받고 덮어버린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실태를 한겨레에 제보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게 되었다.
이문옥과 한겨레의 인연은 한 통의 전화통화에서 시작되었다.
1990년 4월 초, 이봉수 기자를 찾는 전화가 한겨레신문사 편집국에 걸려왔다. 이봉수는 한겨레 경제부 초창기 멤버로 재벌, 부동산, 정경유착 등을 파헤치는 기획 기사를 써왔다. 익명의 제보자는 이봉수를 만나 전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세종문화회관 옆 다방에서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이봉수를 찾아온 제보자는 이문옥 감사관이었다.
감사원이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한 국세청의 과세 실태를 조사해 잘못을 밝혔는데, 재벌의 로비를 받은 상부의 외압으로 돌연 감사가 중단되었다는 게 제보 내용이었다. 이문옥은 관련 자료도 일부 들고 나왔다.
“이런 자료가 언론에 나가면 선생님은 공직사회 풍토상 배신자로 낙인 찍혀 계속 있을 수 없을 겁니다.”
이문옥이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결심이 이미 섰습니다.”
이봉수가 말했다.
“정말 그렇다면…기왕이면 자료를 더 많이 가져오십시오.”
이문옥 감사관은 며칠 뒤, 재벌그룹 소속 23개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취득 실태와 국세청의 과세 실태 관련 자료를 통째로 이봉수에게 전했다.
자료를 건네받은 이봉수는 이홍동 기자와 함께 경기도 용인 일대의 토지등기부 등본을 확인하는 등 추가 취재를 거쳐 1990년 5월 11일치 1면에 관련 기사를 특종보도 했다.
1990년 5월 11일치 한겨레 1면에 실린 감사원 로비 관련 특종 기사. 한겨레 자료
비업무용 부동산을 가진 재벌 가운데는 삼성이 포함되어 있었고, 감사원에 직접 외압을 가한 인물도 삼성그룹의 부회장이었다. 재벌이 최고 사정기관인 감사원까지 쥐락펴락하면서 초법적인 부를 축적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재벌 계열사들이 보유한 비업무용 부동산 비율이 정부가 발표했던 1.2%보다 훨씬 높은 43.3%로 추정된다는 보도가 이어지자, 재벌들의 땅 투기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었다.
연일 한겨레의 특종 보도가 이어지는데도 다른 언론은 침묵했다. 오히려 이문옥 감사관의 개인 성향을 문제 삼고, 공무원이 기밀을 누설했다며 여론을 호도했다. 십수 년 뒤인 2007년 삼성 비자금에 대한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 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다.
이문옥 감사관의 구속 사실을 알린 한겨레 1면 기사. 한겨레 자료
이문옥은 결국 공무상 기밀 누설 혐의로 1990년 5월 15일 구속되었다. 검찰은 재벌의 로비를 수사하는 대신에, 양심선언자를 구속했다. 이문옥이 한겨레에 제보하기로 결심하기까지의 고민에 대해 이홍동 기자는 1990년 5월 16일치 한겨레에 다음과 같이 기사로 썼다.
‘공무상 취득한 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감사원의 이문옥(52) 서기관이 사실상 백지화돼 있던 대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조사 결과를 <한겨레신문>에 제보한 것은 오로지 감사원의 파행적인 운영을 막자는 충정에서였다.
이 때문에 이 서기관은 이와 관련된 기사가 보도된 뒤에도 스스로 출근, 제보자는 자신이며 자신의 본뜻은 감사원이 올바른 감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음을 당당하게 주위의 동료와 상급자에게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서기관이 23개 대기업에 대한 조사결과를 <한겨레신문>에 제보키로 마음을 먹은 것은 올해(1990년) 초. 그는 지난해(1989년) 8월 중순부터 한달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비율이 일반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다는 것을 밝혀냈으며, 조세당국의 이에 대한 감시 역시 여러가지 이유에서 대단히 미온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한창 진행돼가던 조사는 중도에 갑자기 중단됐고 그동안의 조사결과는 묵살됐으며 이어 12월 말 인사에서는 자신 뿐 아니라 상급에 있는 과장·국장까지 ‘좌천’되고 말았다. 상사로부터 감사중단의 배후에 재벌기업의 로비가 개입돼 있다는 말을 들은 그는 감사원기능의 독립성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품게 됐다.
이달 초 <한겨레신문>에 조사 내용을 알려온 그는 지난 11일 기사가 보도될 때를 택해 휴가원을 제출하고 마음을 정리했다. 휴가를 떠나기 직전 중학교 3학년인 아들에게 “아빠를 이해해달라. 우리나라와 감사원을 위해 한 일이다. 용서하라”고 다독거렸다고 부인(46)이 전했다.
이어 5월 23일 열린 구속적부심에서 이문옥 감사관은 새로운 사실을 폭로했다. 서울시 내무국 행정과 예산 가운데 88억원이 지난 1987년 대통령 선거와 1988년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수도방위사령관, 시경국장, 각 구청장 등에게 지출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구속적부심은 기각되었다.
이문옥 감사관의 구속적부심에서 새롭게 폭로된 사실을 다룬 1990년 5월 24일치 한겨레 1면. 한겨레 자료
법정에서 이문옥은 다시 한 번 “왜 하필 한겨레에 제보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한겨레는 가장 큰 압력단체로 군림하는 재벌의 압력이 통하지 않고, 명절 때 장관들이 신문사 간부들에게 보내는 선물도 돌려보내는 곳입니다. 그동안 중요한 선택과 결단을 해야 할 때가 있었지만, 그때 한겨레를 선택하여 내 의사를 표시했던 것처럼 멋있는 선택이 또 있을까 생각합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문옥 감사관 석방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고, 한겨레신문사에는 이 감사관에게 전해달라는 성금이 답지했다. 이문옥 감사관은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출마한 것에 이어, 최근에는 내부고발자 보호운동을 펼치고 있다.
※ 한겨레 창간 30돌을 맞아, 한국사회를 바꾸는 데 기여한 특종이나 기획 기사의 뒷이야기를 <창간 30년, 한겨레 보도>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디지털 역사관인 '한겨레 아카이브'에 소개된 내용의 일부입니다. 한겨레의 살아 숨쉬는 역사가 궁금하시다면, 한겨레 아카이브 페이지(www.hani.co.kr/arti/archives)를 찾아주세요. 한겨레 30년사 편찬팀
achive@hani.co.kr
이문옥 감사관이 왜 한겨레에 제보했는지를 알리는 한겨레 홍보전단지. 한겨레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