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진 2050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이 5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탄소중립 실현 방향을 담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공개하고 대국민 의견수렴을 진행한다고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5일 탄소중립위원회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3개안 중 1·2안이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지 않는 것이 공개되자 논란이 일었다. 당시 탄중위는 영국과 유럽연합도 유사한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영국은 이미 탄소중립을 ‘상수’로 두는 시나리오를 발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13일 환경단체는 “수준 미달의 안을 내놓고 해외사례도 부적절하게 인용했다. 탄중위는 시민을 기만하지 말라”며 비판했다.
윤순진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은 탄중위 안이 공개되던 5일 “왜 모든 시나리오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지 않느냐”는 <한겨레> 질문에 “영국, 유럽연합 등도 모든 시나리오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영국과 유럽연합 등 기후위기 대응에서 한 발 앞서가는 국가들도 한때 탄소중립이 아닌 시나리오를 냈다는 해명이었다.
하지만 13일 영국기후변화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제6차 탄소예산’ 보고서를 보면 모든 시나리오는 모두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세부 경로를 세워두고 있었다.
영국도 2019년 5월 ‘넷제로 지구온난화 막는 영국의 기여’ 보고서를 통해 2050년까지 80%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목표에 기반해 3가지 시나리오가 담긴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이 중 3번째 안만 탄소중립안이었다. 정부가 이 권고를 받아들여 같은 해 6월께 2050 탄소중립 목표를 설정했고, 지난해 말 발표된 ‘제6차 탄소예산’ 보고서는 모든 시나리오가 탄소중립을 목표로 2030년, 2032년 등 세부 경로를 구체화하는 과정에 있다. 탄중위 해명대로 영국의 초기 시나리오가 탄소중립이 목표가 아닌 안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한국은 이미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사정이 달랐다.
지난해 말 발표된 영국 기후변화위원회의 4개의 시나리오. 검은 실선이 현재 상황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했을 때 경로이고 나머지 시나리오는 모두 2050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보고서 갈무리
앞서 <한겨레>는 5일 탄중위의 시나리오가 공개되자 “‘2050 탄소중립’ 한다더니 ‘포기’ 시나리오 검토하는 탄중위”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 본문을 통해 탄중위의 해명을 다 담으면서도 “유럽과 달리 기후위기 대응 후발주자이자 석탄발전 의존도가 큰 우리 상황에서 탄소중립위가 제시한 시나리오는 지나치게 ‘느긋하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해설했다.
이에 탄중위는 6일 해명 자료를 내어 <한겨레> 보도를 언급하며 직접 반박했다. 당시 탄중위는 “유럽연합과 영국 등 해외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도 일부 잔여 배출량을 산정하고 있다”며 유럽연합이 2500~2600만톤, 영국 2800~3000만톤의 잔여배출량을 정해둔 시나리오를 세운 적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언제 작성된 어느 보고서를 참고했는지는 답하지 않았다.
환경운동연합은 13일 “탄중위가 고려한 유럽연합의 시나리오도, 2018년 8개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등 1990년 대비 80%, 90%, 100% 감축 시나리오에서 다양한 방식을 고려한 것을 근거로 삼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은 2019년 말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결국 탄중위가 해명한 영국과 유럽연합 사례는 유럽의 기후위기 대응이 본격화하기 전인 2018년과 2019년 사례이기 때문에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지 않은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던 것이다.
환경운동연합은 “영국과 유럽연합의 시나리오는 탄소중립 목표를 설정하기 위한 검토 과정에서 작성된 것이다. 한국처럼 탄소중립 선언 이후 구성된 이행 기구 성격의 위원회가 내놓은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탄중위는 탄소중립 달성에 실패하는 시나리오를 즉각 철회하고 시민들을 기만한 데 대해 사과하라”고 지적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한 전문가는 “정부가 마련한 1·2안을 보면 현재 배출량의 96~97% 줄이고 있다. 이런 큰 폭의 감축 자체도 긍정적이지만 과거 철 지난 시나리오를 인용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정부와 협조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윤 위원장 혼자 탄소중립으로 이르는 길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탄중위는 또다시 해명 자료를 내 “우리 위원회는 아직 탄소중립이 법제화되지 않은 점, 2050년 이전의 중간 목표 상향을 검토하고 있는 점 등 제도적 상황과 한계 등을 감안해 법제화가 이루어지기 이전에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제시했던 영국 사례를 살펴본 바 있다”고 답했다. 이어 “주기적으로 시나리오를 개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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