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기후’는 일상이 되고 있다. 지난달 20일 중국 정저우에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시민들이 물에 잠긴 거리를 걷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 7월17일, 중국 <환구시보>의 편집장이자 애국주의 평론가 후시진은 닷새 전인 12일부터 독일 서부와 벨기에, 프랑스 등지에서 발생한 홍수가 재난적 상황을 초래한 것을 지칭하면서 “서방의 통치 수준과 (서구식) 휴머니즘의 파산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이룬 고속철도와 도시 건설을 격찬했다. 22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재난에 덧대는 말치곤 볼썽사납다. 몇달 전 중국공산당 정법위원회 공식 계정이 ‘중국점화 대 인도점화’라는 제목을 달고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받는 인도의 상황을 조롱하는 글을 올린 것에 대해 그는 “관방 기구의 공식 계정은 인도주의의 큰 깃발을 들어올려 도덕적 우위에 서야 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스스로 자기 말을 뒤집은 것이다.
그 시각 허난성 정저우 일대에는 엄청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7월19일 밤 9시59분 정저우시 기상국은 “앞으로 3시간 누적 강수량은 100㎜가 넘을 것”이란 긴급문자를 발송했고, 다음날엔 네차례에 걸쳐 호우적색주의보를 발령했다. ‘허난성 기상재해 방비조례’에 따르면, 당국은 작업중지·수업중지·교통통제 등 긴급조치를 해야 하지만 시민들은 폭우를 뚫고 출근해야 했다. 중국중앙기상대에 따르면 이날 오후 4~5시 정저우 강수량은 201.9㎜로, 평년 7월 전체 강수량보다 많았고, 1975년 8월 대홍수 기록마저 갈아치웠다.
허난성에서만 302명이 사망했고 50명이 실종됐다. 150개 도시, 1663개 마을에서 1453만1600명의 시민들이 피해를 입었다. 후시진이 예찬하던 도시 설계와 고속철도는 ‘극단기후’ 앞에 무너졌다.
이 초유의 홍수는 왜 일어났을까?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를 지목한다. 북태평양고기압의 중심이 한반도 동해상에 위치하게 되면서, 태풍 옌화가 북상하지 않고 편동풍을 통해 중국 내륙에 영향을 끼쳤다. 태풍은 아열대고기압과 함께 대량의 수증기를 바다에서 육지로 밀어냈는데, 이 대기가 북쪽에서 온 차갑고 건조한 공기와 타이항산맥에 막혀 상층으로의 수렴 현상을 나타냈다. 거대한 수증기가 한 지역에 집중되니 자연히 강우 범위와 강도의 집중을 야기한 것이다. 이는 최근 한반도에서 집중 폭우가 잦아진 것이나 유럽 대홍수의 원인과 상통한다. 이 시각 일본 전역에서도 기록적인 홍수가 발생해 수십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홍수 발생이 2~4배 늘어날 거라고 예측하고 있다.
연이은 홍수에 대해 중국 정부는 ‘자연재해’임을 강조한다. 재난에 대한 책임에서 거리를 두려는 모양새다. 인터넷상에서는 후시진 같은 우익 포퓰리스트들이 받쳐주고 있다. 이들은 재난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 허난과 유럽의 홍수는 다른 성격을 띤다고 주장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다. 정부가 재난 대응에 서툴렀던 것에 대해 비판하는 견해가 등장하면 격렬히 반박하는 식이다. 기후위기라는 본질이 아니라 중국과 서구 중 누가 우월한지 따지는 일에만 관심을 갖는 듯하다.
‘극단기후’는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다. 정저우가 폭우에 묻혀 있던 지난 7월22일, 세계기상기구(WMO)의 페테리 탈라스 사무총장은 “인간이 일으킨 지구온난화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강수량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름 뒤에는 그리스·터키의 폭염과 화재, 시베리아 산불, 독일·중국의 폭우를 예로 들며 “기후변화의 가혹한 현실이 바로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7월14일 그린피스 동아시아가 발표한 ‘중국 주요 도시의 기후변화 위험 평가 및 미래 상황 예측’ 보고서를 보면, 지난 60년간 극단적 강수량(호우 일수와 폭우 과정의 잦은 발생)은 높은 증가세를 보인다. 지난 몇년 중국에선 짧은 기간에 기준치를 초과한 폭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이런 재해는 재정이 부족하고 인프라 구축이 낙후되어 있는 중소 도시, 노인과 아동, 빈민 등 취약계층에 더욱 큰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다.
여름철 강수 집중되는 한중일 3국
국가별·계급별 불평등 심화될 위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아이피시시)는 산업화 이전 대비 2100년의 지표면 상승 온도를 1.5℃ 이하로 저지해야만 기후변화 위험을 예방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상시화된 이 재앙은 화석연료에 의존한 에너지 소비로 온실가스 배출이 야기한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8월6일 막을 내린 아이피시시 총회가 승인한 보고서를 보면, 인류가 현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유지할 경우 2021~2040년에 지구 기온 상승 폭이 1.5℃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한다. 2018년 특별보고서보다 10년 이상 앞당겨진 셈이다. 극단기후 현상은 극한기온과 해수면 상승, 잦은 집중호우를 통해 더 강하고 빈번하게 일어날 전망이다.
국립기상과학원이 국가 기후변화 표준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수행한 연구(‘SSP 시나리오에 따른 동아시아 극한기후 미래전망’) 결과 동아시아, 특히 중국 남부와 한반도, 일본에서 “극한기온의 강도와 관련된 지수들은 모든 시나리오에서 증가 경향”을 보였다. 이로 인해 “폭염과 같은 극한고온 현상이 미래에 더 강하고 빈번하게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아시아는 몬순 시스템 영향으로 여름철 강수가 집중되는 지역이다. 극한강수의 변화는 홍수와 가뭄 발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수자원과 식량 문제에 다양한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각국 정부와 자본은 이런 경고를 듣지 않고 있다. 중국은 탄소배출량에 있어 압도적인 1위 국가이고, 일본 5위, 한국 9위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이는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보다 낫다는 뜻이 아니다. 1인당 배출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 우리나라는 미국과 캐나다에 이은 기후악당 국가다. 지금 이 시각에도 한·중·일 3국 정부는 석탄화력발전소를 늘리고 있고, 한국전력은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의 석탄화력발전소에 투자하고 있다. 더구나 얼마 전 ‘2050탄소중립위원회’가 제시한 시나리오는 구체성도, 의지도 결여하고 있다. 정부가 제대로 하길 구경만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다 건너 홍수를 지켜보는 우리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허난과 일본의 홍수 재난은 우리나라의 우월성을 반증하는 사례가 아니다. 우리에게 닥칠 미래다. 디스토피아에서도 부자들은 이윤율을 걱정하며 재앙을 관망하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자신의 미래가 파괴되고 있는데, 왜 국경 너머에서 누가 더 못났나 규명하는 일에 몰두해야 하나? 기후위기는 일국의 대응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각국 정부의 현명한 대응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재난 대응 역량이 상이하기에 국가별·계급별 불평등이 심화될 위험 역시 안고 있다. 차라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아시아 시민들이 함께하는 기후 파업이 아닐까? 벼랑 끝으로 달리는 기차를 우리가 멈추어야 한다.
동아시아 연구활동가
플랫폼C 활동가. 동아시아 이야기를 씁니다. 각 사회의 차이를 이해하고, 같은 꿈을 지향하자(異牀同夢)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상을 품은 동아시아의 꿈(理想東夢)이라는 뜻도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