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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뉴스AS] 대선 공약 된 ‘전자제품 수리할 권리’, 보장받을 수 있을까?

등록 2022-01-10 16:43수정 2022-01-11 02:33

이재명 후보 ‘소비자 수리권’ 소확행 공약
지난해 관련 법안 발의한 정의당 “환영”
전자제품 고쳐 쓰면 폐기물·탄소배출 ↓
전문가 “부품·수리센터 등 인프라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전자제품을 비롯한 생활용품을 고쳐 쓸 권리를 보장하려는 움직임이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일상생활 속 쓰레기 발생량을 줄여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커지면서 일명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에 관심이 쏠리는 모양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43번째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으로 소비자 수리권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전자·가전제품의 수리용 부품 보유 의무를 확대하고, 관련 매뉴얼을 보급해 소비자가 편리하게 제품을 고쳐 쓸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생활용품 수명만 연장해도 탄소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며 “우리 생활에서부터 탄소저감 노력을 기울일 때”라고 강조했다. 정의당 선거대책위원회는 이 공약에 대한 환영 의사를 밝히며 “관련한 정의당 법안이 발의되어 있는 만큼 대선 전에 통과시키자”고 제안했다.

앞서 지난해 11월15일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수리할 권리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소비자에게 구입한 제품에 대한 수리할 권리를 부여하는 게 주된 내용이다. 사업자에게는 소비자 개인 능력으로 수리가 가능하게끔 제품을 설계하도록 했고 수리 장비·부품에 대한 쉬운 접근을 보장하도록 했다. 국가에게는 환경부를 주무부처로 해 관리·감독할 책임을 부여했다.

거듭 대선 공약이 된 데엔, 코로나19 이후 생활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유권자들의 문제·권리의식이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전자제품은 매해 막대한 양의 폐기물을 양산하지만 재활용되는 비율은 낮은 편이다. 유엔(UN)이 발간한 <2020 세계 전자 폐기물 보고서>를 보면, 2019년에 전 세계적으로 5360만톤이 발생했는데 이 중 17.4%만이 적절하게 수집되고 재활용됐다. 전체 발생량 가운데 한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81만8000톤으로 1.5% 수준이지만, 1인당 한 해 발생량은 15.8㎏으로 세계 평균인 7.3㎏의 두 배가 넘는다.

이렇게 발생하는 폐기물을 버리는 대신 수리해서 쓰면 탄소 감축 효과도 큰 것으로 분석됐다. 유럽환경국(EEB)이 2019년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스마트폰, 노트북, 세탁기, 진공청소기 등의 재고 수명을 5년 연장하면 2030년까지 매년 거의 1000만톤의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다. 이는 자동차 500만대를 1년 동안 도로에서 없애는 것과 동일한 효과라고 유럽환경국은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관련 법안이 시행되는 등 ‘수리할 권리’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2020년 3월 수리할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신 순환경제 실행계획’을 채택했다. 계획에는 소비자가 제품 수리 정보와 예비 부품을 제공 받고 제조업체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제품을 설계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7월9일 수리할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이 담긴 ‘미국 경제에서의 경쟁을 촉진하는 것에 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제조업체가 자사 제품의 자체 수리나 사설업체를 통한 수리를 막는 행위가 제한된다. 프랑스에서도 2020년 3월, 스마트폰과 노트북 제조업체로 하여금 소비자에게 제품의 수리 가능성을 알리도록 하는 폐기물방지법이 통과됐다.

국내에서는 이러한 논의가 실질적인 권리 보장으로 나아가려면 남은 절차가 많다. 수리에 필요한 부품과 인프라가 구축되려면 결국 돈과 인력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이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대표는 “현재 한국에서는 제품 수리가 권리가 아닌 대기업의 서비스 차원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수리를 권리로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제품을 제조한 이후에도 수리에 필요한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며 “예컨대 부품으로 10년 동안 공급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수리센터, 부품을 비축해둘 자제 창구 등도 구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말기 AS 실태조사 및 단말기유통법 개정 방향 연구’를 진행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염수현 연구위원은 “제조사들이 수리에 필요한 부품, 매뉴얼, 장비 등을 공급하면 소비자는 보다 저렴하게 수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용적인 측면 이외에도 수리센터 접근성도 중요하다. 접근성이 좋지 않은 지방의 경우에는 소비자의 수리할 수 있는 권리가 더욱 중요해진다”고 덧붙였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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