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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뉴스AS] 원전 지역서 일어난 첫 전쟁…“외부 전력만 끊겨도 중대사고”

등록 2022-03-03 10:27수정 2022-03-03 11:10

개전 직후 체르노빌 원전 방사선량 급상승
차량이동 탓 밝혀졌으나 중대사고 불안 여전
교전중 의도치 않게 원전 위협 가능성 상존
IAEA “원전지역 군사 충돌 처음” 자제 촉구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인근 바실키프에서 한 남성이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된 한 건물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인근 바실키프에서 한 남성이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된 한 건물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전쟁이 나서 원자력 발전 시설이 파괴되거나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면? 원전의 안전성을 강조하는 쪽에서 다루기 꺼리는 전쟁 중 원전 안전 문제가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현실적인 질문으로 떠올랐다. 대형 원전들이 가동 중인 지역에서 전면적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는 것이 실제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인류가 원전을 지어 가동하기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러시아 침공 첫날인 지난달 24일 체르노빌 원전 지역에서 교전이 있었다는 소식과 함께 전해진 방사능 수치 급등은 많은 이들에게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악몽을 떠올렸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즉각 라파엘 마리아노 그로시 사무총장 명의의 성명을 내 “핵 시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행동을 최대한 자제하라”고 촉구했다.

환경 모니터링 정보 공개 프로그램인 세이브에코봇(SaveEcoBot)을 보면, 체르노빌 원전 지역 한 지점의 방사선(감마선) 선량은 24일 오후 8시(현지시간)까지 시간당 3.03마이크로시버트(μSv/h)였다가 24일 밤 9시50분에 65.5μSv/h, 다음날 오전 10시40분에는 92.7μSv/h까지 치솟았다. 다른 한 지점에서 측정된 방사선 선량도 같은 시간에 1.89μSv/h에서 54.2μSv/h, 72.2μSv/h로 급상승한 것으로 기록됐다.

이런 방사선량 급상승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다음날 핵 시설 파괴가 아니라 군용 차량들의 이동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밝혔다. 땅에 가라앉아 있던 방사성 물질을 대형 차량들이 공중에 떠오르게 해 발생한 일시적 현상이란 얘기다. 실제 체르노빌 원전 지역 두 지점의 방사선량은 1일 오후 4시 현재 24일 이전 수준으로 회복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우크라이나에는 유럽에서 프랑스 다음으로 많은 15기의 원전이 운영되고 있다. 러시아가 이들 원전을 공격 목표로 삼고 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안심할 수 없는 것은 교전 중 의도치 않은 상황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원자력기구가 우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전을 직접 겨냥하지 않더라도 교전 중에 잘못 날아간 로켓이나 포탄이 원전 내·외부에 있는 전력공급 설비 등 원전의 안전에 중요한 시설을 파괴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원전이 안전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냉각을 위한 물과 냉각 시스템을 가동하는 전력이 외부에서 지속적으로 공급돼야 한다. 이것은 교전 상황에서 원전 운영이 여의치 않아 원전 가동을 중단해도 마찬가지다. 원자로에 장전된 핵연료와 사용후핵연료 저장조에 보관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에서 발생하는 열은 계속 식혀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 전력공급이 끊어지면 치명적 방사성 물질이 대량 유출되는 중대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그런 예다.

지난 27일에는 키이우(키예프)와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하르키프)의 핵폐기물 저장소에 러시아가 쏜 미사일이 떨어졌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이날 피해 규모를 조사 중이라고 밝히면서 “두 사건은 양쪽의 충돌로 방사성 물질을 취급하는 시설이 훼손될 경우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며 “핵시설에 대한 모든 군사적 행동을 자제하라”고 촉구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러시아의 침공 이후 매일 우크라이나의 원전 상황을 전하며 군사 행동의 자제를 촉구하는 사무총장 성명을 내고 있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특히 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의 전쟁 중 원전 안전 문제를 다루기 위해 열린 이사회에서 “대규모 원전시설 한가운데서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우크라이나 원전시설 주변에서의 군사적 충돌이나 활동이 원전시설이나 그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방해하거나 위험에 빠뜨리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전력·통신 시설이 우선 공격 목표가 되는 통상적인 전쟁과 달리 이번에는 러시아가 예외적으로 이것을 회피해 원전 설비가 파괴될 확률이 낮더라도 운전원들이 제때 투입되지 못하거나, 외부 전력공급이 두절돼 원자로 냉각에 실패할 위험은 여전히 심각하다. 물론 원전에 비상디젤발전기들이 있으나 이 역시 전쟁 상황에서 디젤 연료가 제때 공급되지 못할 위험이 상존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특히 사용후핵연료 저장조가 피격을 받아 손상되는 경우를 우려한다. 이 시설은 원전의 상징인 두꺼운 돔 형태의 격납 구조물 외부에 배치돼 있다. 미사일이 아니라 재래식 포탄에 피격돼도 파괴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강정민 전 원자력안전위원장(원자력공학 박사)은 “2019년 말 기준 약 910t의 사용후핵연료가 밀집 저장돼 있는 고리원전 3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조가 미사일 등에 피격당해 화재가 발생할 경우 세슘-137 약 2240페타베크렐(PBq·1000조베크렐)이 방출될 수 있다”며 “이 경우의 피난 범위를 매월 1일 기준으로 12차례 모의분석해 본 결과, 피난해야 할 인구는 평균 8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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