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는 에너지 수요 효율화가 새정부 에너지 정책의 양대 축이라고 밝혔지만 올해 수요 관리 예산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줄어드는 등 거꾸로 가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상업운전을 앞두고 있는 신한울 1호기(왼쪽)와 운영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신한울 2호기.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정부가 앞으로 5년 동안 에너지 효율을 높여 서울 지역 6년치 전력 사용량에 맞먹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이를 위해 에너지 공급자에게 에너지 절감을 통한 효율 향상 목표를 부여해 이를 의무적으로 이행하도록 하고, 전기차 전비(연비 개념) 등급제 개편 등을 추진한다. 세계적 에너지 공급 위기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응 방향과 함께하는 것이지만, 선진국 가운데 최저 수준의 전기요금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실현에 한계가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3일 에너지위원회를 열어, ‘시장원리 기반 에너지 수요효율화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 위원회는 정부 주요 에너지 정책을 심의하는 민관 협의체로 2006년부터 구성·운영되고 있다. 대책을 보면, 정부는 2027년까지 서울시 6년치 전력사용량에 해당하는 2200만 티오이(TOE·석유환산톤, 1티오이는 원유 1t이 갖는 열량으로 월310㎾h를 쓰는 가구가 1년 2개월 동안 쓸 수 있는 전력량과 같음)의 에너지 수요를 감축하고, 이를 통해 에너지 효율성 평가 지표인 에너지원단위를 2019년 대비 25% 줄인다는 목표를 내놨다.
정부는 우선 연간 20만 티오이 이상 에너지를 쓰는 기업들과 협약을 맺어 산업 부문 수요를 줄이고, 주변 아파트 단지나 가구보다 전기를 덜 쓰면 그만큼 현금으로 돌려주는 ‘에너지캐시백’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캐시백 제도는 세종시 등 현재 3개 지역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산업 부문에서는 시범사업 중인 에너지공급자 효율향상제도(EERS)의 의무화가 주요 정책으로 제시됐다. 이이아르에스는 에너지 공급자에게 에너지 절감을 통한 효율 향상 목표를 부여해 고객의 효율 향상을 지원하도록 하는 제도다. 한전과 가스공사‧지역난방공사 등이 적용 대상이다.
수송부문에서는 전기차 전비 등급제도 손본다. 지금까지는 1회 충전 때 주행거리만 표시해왔지만, 앞으로는 전기차에도 내연기관처럼 등급제(1~5등급)를 도입할 계획이다. 중대형 승합·화물차(3.5톤 이상) 연료 절감을 위한 연비제도 도입하기로 했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해 수요를 줄이는 에너지 효율화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의 첫 번째 연료’로 불린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본격화된 전 세계 에너지 공급 위기를 맞아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에서는 그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날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새정부 에너지정책의 양대축은 공급 측면에서는 원전 활용도를 제고하는 정책 전환, 수요측면에서는 공급 위주에서 에너지 수요 효율화 중심으로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움직임을 보면, 정부는 여전히 공급에, 그것도 원자력이라는 특정 에너지원의 이용 확대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요 효율화 역시 부실하다. 올해 산업부 예산에서 에너지 효율화를 포함한 에너지 수요관리 부문 예산은 5587억7900만원으로 지난해 예산(6116억1700만원)보다 500억원 이상 줄었다. 특히, 수요 효율화는 지난
16일 발표한 경제정책 방향의 에너지 관련 부분에는 아예 포함되지도 못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전기요금이 싼 상황에서 수요 효율화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한국이 세계 10번째 에너지 다소비국이면서도 에너지를 비효율적으로 쓰는 대표적인 나라가 된 것도 이런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산업부의 이날 발표 자료를 보면, 한국의 에너지원단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36개 중 중 33위)이고, 주요국들과 달리 개선 속도도 둔화되고 있다.
사단법인 에너지전환포럼 공동대표인 전영환 홍익대 교수(전기공학부)는 “시민들이 에너지를 아껴 쓰고 효율화를 하려면 먼저 그런 필요성을 느껴야 하는데, 지금은 전기요금이 워낙 싸서 그런 필요성을 느끼기 어렵다. 수요 효율화를 위해서는 전기요금 정상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전력거래소 이사장을 지낸 조영탁 한밭대 교수(경제학)도 “전기요금이 시장 원가를 반영하지 못하는데, 수요를 절약하겠다는 자체가 어폐가 있다. 수요 효율화를 위해서는 요금 정상화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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