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리는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회의장에서 기후 활동가들이 선진국에 기후 금융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화석연료를 몰아내자.” “선진국은 기후위기 피해에 책임져라.”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리는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개막 나흘째인 9일(현지시각), 총회장 곳곳에서 환경·기후단체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개막 때부터 대체로 조용한 분위기였던 총회장에 활기가 돌았다. 다만, 시위 규모는 크지 않았다. 활동가 10여명이 모여 30분 이내로 진행했다. 이집트 당국이 최소 36시간 전에 신고된 집회에 대해서만 지정된 장소에서 하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회 시간에도 제한을 둬, 활동가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집회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는 당사국총회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글래스고에서는 10만명이 행진했는데, 올해 샤름엘셰이크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시민단체가 거의 참여하지 못하고 있어 활동가로서 우려스럽습니다.” 지난 8일 회의장에서 만난 미국의 시민단체 활동가 마거릿 콰텡이 말했다. 당사국총회에 세번째로 참석한다는 네덜란드 시민단체 활동가인 사너 판더프로트도 “앞선 총회들과 달리 이번에는 대규모 시위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며 “당사국총회가 성공적으로 열리기 위해서는 개최국이 시민단체에 공간을 내주고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려는 시도는 곳곳에서 이어졌다. 파키스탄 기후 활동가 아나 파티마 파샤는 최근 1700여명이 숨진 파키스탄 홍수 피해를 알리기 위해 발에 파란 물감을 칠하고, 일회용품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페트병 등이 달린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지구를 죽이고 있다’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이번 당사국총회에서 드디어 (기후변화로 피해를 본 개발도상국의) ‘손실과 피해’에 대해 말하게 됐다. 책임이 있는 선진국이 나서서 논의가 진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9일 파키스탄 기후 활동가 아나 파티마 파샤가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리는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홍보관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해수면 상승 피해를 겪고 있는 남태평양 섬나라 투발루의 정부 대표단으로 참석한 기후 활동가 버나드 에웨키아는 가라앉고 있는 투발루를 알리기 위해 투발루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화관을 쓰고 조개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는 “투발루는 전세계 탄소배출량의 1%도 배출하지 않고 있지만, 조국이 사라지는 절망을 겪고 있다. 피해 대응을 위한 (선진국의) 보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정상회의 보안을 이유로 이집트 당국이 부대 행사를 모두 취소시킨 각국 홍보관에서도 분위기 변화가 감지됐다. 8일부터 관련 행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특히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된 곳은 올해 처음 홍보관을 꾸린 우크라이나였다. 우크라이나 홍보관에는 러시아군의 총알이 박힌 나무가 전시돼 있었고, 이 전시품에는 ‘대규모 포격으로 40% 이상의 숲이 손상됐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이날 우크라이나 홍보관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럽 기후정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토론회가 열리자 의자가 부족할 정도로 청중이 몰리기도 했다. 한국 홍보관에서는 재생에너지, 탄소 포집·활용·저장, 플라스틱 열분해 기술 등 각 산업 분야에 적용하고 있는 친환경 기술과 정책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리는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우크라이나 홍보관에 전시된 총알 박힌 나무
참가자들은 이번 당사국총회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드러냈다. 나이지리아 정부 관계자 아이샤 압둘아지즈 아다무는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각국이 하루빨리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강화하고, 약속한 목표를 이행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미비아의 기후 활동가 이나 마리아 시콩고는 “기후위기로 인한 홍수, 산불, 가뭄이 집중되는 아프리카는 북반구 선진국의 미래”라며 “기후위기에 따른 손실과 피해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길 바라지만, 그동안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큰 기대는 없다”고 했다.
시민사회를 위한 공간으로 총회장과 떨어져 별도로 운영되는 ‘그린존’에는 여러 조형물이 설치됐다. 그 가운데 ‘약속의 나무’ 조형물에는 여러 쪽지가 달려 있었다. ‘채식을 합니다.’ ‘나무를 더 심을 것입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한 작은 변화를 만들어나가겠습니다.’ 참가자들의 다짐이 적힌 쪽지였다.
샤름엘셰이크/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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