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맛있는 맥주를 먹기가 힘들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후위기의 영향으로 맥주 핵심 원료인 홉의 생산량이 감소하고, 품질이 떨어지고 있어서다. 맛없는 맥주를 비싸게 사 먹게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체코과학아카데미(CAS)와 영국 캠브리지대 과학자들로 구성된 공동 연구팀은 지난 10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게재한 논문에서 유럽의 홉 재배량이 2050년까지 최대 18% 줄어들 것이라 전망했다. 연구팀은 홉의 품질을 좌우하는 알파산 함량도 최대 31%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홉은 유럽과 아시아 일부 온대 지역에서 자라는 덩굴식물로, 솔방울 모양의 꽃은 맥주 특유의 쌉싸름한 맛을 내는 데 쓰이는 핵심 원료다. 지역에 따라 다양한 품종의 홉이 재배되는데 꽃향기부터 과일 향까지 저마다 특유의 향을 내서 맥주의 풍미를 더하는 데 쓰인다. 이 맛을 좌우하는 건 홉의 알파산 함유량이다. 알파산 함유량이 떨어질수록 홉 특유의 향이 약해진다.
문제는 홉이 기후에 매우 민감한 작물이라는 점이다. 기후위기가 심해지면서 기온이 오르고 강수량이 요동치면 홉 재배량과 품질이 악화할 것이라는 게 연구팀의 결론이다.
연구진이 홉의 품종 가운데 하나인 아로마 홉의 재배량을 1971∼1994년과 1995∼2018년으로 나눠 살펴보았더니, 1995년 이후 유럽 주요 재배지에서의 연평균 수확량이 최대 20%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아로마 홉의 알파산 함유량 역시 최대 35% 가까이 감소했다. 연구진은 기온이 오르면서 2018년 홉 재배 시기가 1971년 대비 13일 가량 앞당겨졌고, 이것이 수확량과 알파산 함량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기온이 오르는 등 기후위기가 계속될 경우 2021년에서 2050년 사이 홉 수확량이 1989∼2018년 대비 최대 18.4% 줄어들고, 알파산 함량은 최대 30.8% 감소할 것이라 전망했다. 이에 대비해 홉 재배법을 개발하고 재배 면적도 20%가량 늘려야 한다고 연구팀은 제언했다.
마틴 모즈니 체코대 생명과학대 교수는 “이 같은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일부 지역에선 홉 재배가 수익성을 잃게될 수 있다”며 “그 결과 맥주 양조업자들은 더 많은 비용과 생산량 감소를 떠안아야 할 것”이라고 영국 비비시(BBC)에 말했다. 홉 수확량 감소와 품질 저하로 재배 농가가 줄어들면 맥주 생산에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이라는 이야기다.
남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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