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서 열린 한일 스타트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전 세계 61개 기후단체 등이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해외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공적 금융 지원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낸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일본과 한국은 해외에서 진행되고 있는 석유·가스·석탄 등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공적 금융 지원을 가장 많이 하는 1, 2위 국가다. 기후단체들은 지구의 온도 상승폭을 1.5°C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선 두 나라가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대신 재생에너지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기후솔루션과 ‘지구의 벗 재팬’, ‘미래를 위한 금요일’ 등 전 세계 61개 환경·시민단체들은 지난 17일 한·일 두 나라 정상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양국의 위험한 화석연료 투자는 자국민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 전체에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이렇게 촉구했다.
미국의 기후환경단체 ‘오일 체인지 인터내셔널’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과 한국은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해외에서 유전 및 가스전을 운영하거나 석탄을 채굴하는 각종 프로젝트에 공적 금융 지원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다.
일본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화석연료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연평균 102억9천만달러(약 12조130억원)를 지출했고, 한국도 71억4천만달러 이상을 지출했다. 한 예로, 프랑스에 본사를 둔 ‘토탈에너지’가 주도하는 모잠비크 엘엔지(LNG) 프로젝트(가스전 개발 사업)에 일본은 2020년 총 50억 달러, 한국은 5억달러 금융 지원을 한 게 대표적이다.
두 나라의 뒤를 중국(7조7922억원)과 캐나다(6조 863억원), 미국(4조2440억원) 순으로 따랐다. 2022년도 수치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다.
현재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선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보조금 등 지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세계로 점점 더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2년 전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선 영국·덴마크 등 34개국이 해외 화석연료 부문에 대한 직접 투자를 끝내고, 청정에너지 전환 지원을 최우선 순위로 둘 것을 내용으로 하는 ‘글래스고 선언’에 합의한 바 있지만, 한국과 일본은 이 선언에 참여하지 않았다.
기후단체들은 이에 “양국의 기후 정책은 명백히 뒤처지고 있다”며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영향력이 막중한 한국과 일본은 재생에너지로의 공적 금융 지원 전환을 통해 아시아의 에너지 전환을 주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는 △화석연료에 대한 해외 공적 금융 지원 중단 △정의로운 청정에너지 전환을 위한 지원 확대를 요구했다.
이번 공동서한에는 세계 각국의 시민사회단체가 동참해 힘을 실었다.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속한 청소년 기후단체 ‘미래를 위한 금요일 스웨덴’의 소피아 악셀손 활동가는 “기후변화는 전 세계적인 문제이며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중단해야 한다”며 “새로운 화석연료에 투자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말했다.
한편, 한·일 정상은 지난 17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스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도중 만나 양국 간 수소·암모니아 공급망을 함께 구축하는 등 경제 안보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아유미 후카쿠사 ‘지구의 벗 재팬’ 사무국장은 이와 관련 “일본 정부는 암모니아 및 수소를 화석연료와 섞어서 태우는 혼소(co-firing)를 ‘저감’ 조치로 홍보하고, 이러한 기술이 배출량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혼소는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연장시킬 뿐”이라며 “이제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생각으로 이런 ‘잘못된 해결책’을 홍보하는 모양”이라고 지적했다.
기민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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