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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4대강 이포보 공사현장에서 만난 귀신

등록 2011-08-22 16:29수정 2012-05-26 23:14

뻗치기 하며 바라보는 이포보의 밤하늘엔 달이 밝았다.
뻗치기 하며 바라보는 이포보의 밤하늘엔 달이 밝았다.
새가슴 PD가 ‘뻗치기’ 중일 때 몰래 다가와 누운 사람, 얼굴을 돌려보았더니 입에…
‘국민의 소리를 들어라’고 적힌 노란 현수막이 비에 젖은 채 천천히 펄럭이고…
난 새가슴이다. 뜨거운 현장 한복판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위해 싸우고 싶은데 겁이 많다. 영상 구하는 전화를 할 때 목소리가 떨려서 복도로 나가고. 용역깡패가 ‘찍지마 씨x’ 하면 카메라가 역기처럼 무거워진다. 심장이 떨리는 일을 하라고 하는데 뭘 해도 심장이 떨린다. 작년 이맘때도 마찬가지로 덜덜 떨렸다.

  2010년 여름. 정부의 4대강 공사를 막겠다고 환경운동연합 세 명의 활동가가 새벽녘 이포보 제1교각 위로 올랐다. 한 달이 지난 8월20일. 한 언론사에서 이들의 르포를 내보냈다. “…야간엔 공사장 서치라이트를 환하게 밝혀 잠을 못자게 만들고, 자정 넘어 시끄러운 음악을 틀며 괴롭히고 있다.”

[%%HANITV1%%] 우울한 기사였다. 저 모습 담으려면, 밤새 물가를 바라봐야 한다. 카메라 가방을 매고. 회사에서 준 바람막이 잠바를 입고, 여주군 천서리 이포보로 갔다. 강 옆엔 환경연합운동가분들이 천막을 치고서 강제퇴거를 막으려 사수대를 서고 있다. 저물녘 부모님과 함께 이곳까지 찾아온 4학년 남자애가 “아저씨들 안녕히 계세요” 외치니, 강 중간쯤에서 손전등 불빛이 뱅글 돌았다. 그 분들이었다. 날이 저물자 밤새 지킬 줄 알았던 사수대분들이 천막을 걷었다. 밤엔 이포보 공사 찬성 측에서 집회신고를 냈기 때문에 매일 치고 걷고를 해야만 했다. 시내로 나가 저녁을 먹고, 사수대 한 명이 되돌아올 거라며 작별을 했다.

 “소음공격은 밤이 더 깊어야 하는 갑다….”

 승합차가 떠난 뒤로 내달리는 트럭 소리만 간간히 들렸다. 뻗치기 잘하는 법을 따로 배운 적은 없다. 강에 혼자 남겨진 후부터 시간이 멈춘 듯 손목시계만 자꾸 봤다. 자정이 가까워오자 카메라 끈을 팔에 감고 기울어진 의자에 누워버렸다. 시끄러운 소음 공격은 잠이 들어도 깨워줄 것이다. 누운 채 보는 하늘엔 달이 밝았고, 낮에 봤던 느티나무는 검은 머릿발처럼 잎을 흔들었다. 나무잎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가 꼭 빗줄기가 떨어지는 것 같다.

 회사에서 폭풍예보를 들을 땐 안전하지 않은 보 위로 올라간 농성자가 걱정됐는데, 막상 강 앞에 있으니 내 걱정만 된다. ‘별일 없을거야. 여행 왔다 치지 뭐.’ ‘내일부턴 안 혼나야지.’ ‘강 중간에 있는 분은 뭐하고 있을까?’ ‘거긴 세사람이니 무섭지 않겠지…’ 강가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낯설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무렵에 흰 옷 입은 사람이 곁으로 다가왔다. 남자였고. “혼자서 선다는 사수대분인가…” 생각했다. 의자 옆으로 오더니 척 눕는다. 흐릿한 얼굴을 돌려 봤는데 좀 이상하다. 거품을 입에 물고 있다. 귀신인가.

‘국민의 소리를 들어라’ 현수막을 걸어둔 채 환경운동가 3명이 41일동안 이포보 1번교각 위에서 4대강 사업 저지농성을 펼쳤다(위). 저물녘 부모님과 함께 이포보까지 찾아온 4학년 남자애가 “아저씨들 안녕히계세요” 외치니, 강 중간쯤에서 손전등 불빛이 뱅글 돌았다. 그 분들이었다(아래).
‘국민의 소리를 들어라’ 현수막을 걸어둔 채 환경운동가 3명이 41일동안 이포보 1번교각 위에서 4대강 사업 저지농성을 펼쳤다(위). 저물녘 부모님과 함께 이포보까지 찾아온 4학년 남자애가 “아저씨들 안녕히계세요” 외치니, 강 중간쯤에서 손전등 불빛이 뱅글 돌았다. 그 분들이었다(아래).

 놀라 깼다. 후다닥 의자에서 일어났다. 전화 배터리가 바닥을 쳤다. 용기를 내 사수대분에게 언제 오시나 전화를 걸었다. “오늘 원고를 보내야는데 마감이 늦어져서요. 거기 혼자 계세요?” 나는 걱정 마시라며 전화를 끊었고. 웅크린 채 큰 숨쉬며 떨었다. 카메라를 들고 강 옆 다리를 건너기로 했다. 서치라이트 공격이라고 봐야 하나 고민되던 노란 조명을 담으려 했다. 무성한 풀들과 거미줄로 오가는 사람이 없었던 듯 보이는 외딴 다리는. 저 노란 조명 덕분에 날파리가 강도래가 늘어났고, 그걸 노리는 거미가 밤새 거미집을 짓고 있었다. 입을 벌리면 거미줄이 와닿는 다리를 웅크린 채 지나는데 갑자기 달이 숨더니 비가 철철 쏟아졌다.

 ‘국민의 소리를 들어라’고 적힌 노란 현수막이 비에 젖은 채 천천히 펄럭인다. 일하러 왔는데 겁나 죽겠다. 배터리가 바닥나지 않았다면 전화라도 할 텐데. 12시가 넘은 뒤부터 머릿속엔 소음 공격도 조명도 사라졌다. 카메라는 바람막이 잠바 속으로 넣고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미친듯이 숙소를 찾으러 다녔다. 도로 옆 경찰 마네킹이 야광봉을 들고 있는 모습에도 나는 비명을 질렀다. 강 옆 숲을 헤집고 다닌 끝에야 간신히 주차장 커튼이 찢겨진 낡은 여관을 발견했다. 밤새도록 에어컨에 젖은 옷을 말리고 오돌오돌 떨며 돌아왔다. 편집실에서 테이프를 꺼내보는데 야간 영상은 돌려보지 못했다. 때문에 이포보 한 달 풍경엔 사수대가 떠난 장면과 달빛만 남았다.


지난해 8월20일 취재영상

 2009년 8월 이후 4대강 사업현장에서 18건의 사고로 노동자 20명이 희생됐다.

보 위로 올라갔던 세 명의 환경운동가들은 열흘이 지난 뒤 농성 41일째가 돼서야 “국민적 공감을 얻어낸 것 같다” 고 전하며 땅으로 내려왔다. 4대강 이포보 공사는 그후에도 멈춘 적이 없고, 나는 여전히 무섭다 무섭다 하면서 현장을 나간다. 뭘해도 떨리는 심장은 어쩔수 없다.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일년 뒤 이포보 공사현장을 다시 찾았다. 밤새 농성현장을 지키던 장소는 나무 한그루만 남기고 공사 구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일년 뒤 이포보 공사현장을 다시 찾았다. 밤새 농성현장을 지키던 장소는 나무 한그루만 남기고 공사 구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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