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 | 송전탑과의 전쟁, 밀양의 사람들
대선 주자님들, 이 ‘움막’에 신경 좀 써주소
대선 주자님들, 이 ‘움막’에 신경 좀 써주소
▶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은 지방 노인들의 외로운 싸움이다. 한진중공업의 김진숙 전 민주노총 지도위원이나 제주 강정의 문정현 신부처럼 스타도 없고, 4대강 사업에 반대한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처럼 서울에서 가깝지도 않다. 대량 전력 생산·소비 체제는 원자력발전소와 송전탑 건설을 불러온다.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등 동해안 원전 지대의 전력을 수도권으로 공급하는 ‘신울진~강원~북경기 765㎸ 송전선’이 2019년 들어서는 등 앞으로도 원전과 송전탑은 지방 노인들의 투쟁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밀양의 밤은 어두웠다. 도시에 흔한 가로등도 네온사인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 21일 밤 9시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화악산은 시내보다 더 캄캄했다. 차량용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멈춰선 포클레인 옆으로 비닐을 씌운 움막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 머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나왔다. 진시골에 사는 윤여림(74)·정임출(70)씨 부부 그리고 그 옆에 곽정섭(64)씨가 서 있었다. 이들이 입은 주홍 티셔츠에 ‘765㎸(킬로볼트) out’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피난시설 같지요? 총칼만 안 들었지 이건 전쟁입니다.” 정씨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곳은 ‘전선’이었다. 울산시 울주군 신고리원자력발전소부터 경남 창녕군 북경남 변전소까지 이어지는 765㎸ 송전선로의 162개 송전탑 중 69개(청도면 18개, 부북면 7개, 상동면 17개, 산외면 7개, 단장면 20개)가 밀양시 5개면에 세워질 계획이다. 밀양시 청도면과 창녕군 등 다른 지역 주민들은 이미 한국전력과 송전탑 건설에 합의했고, 밀양의 나머지 4개면이 남아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교육운동가 이계삼씨의 후회와 투쟁
윤씨 부부와 곽씨는 127번 철탑 예정지를 지키고 있었다. 지난해 11월부터 공사를 하지 못하도록 주민들이 순서를 정해 밤샘농성 중이다. 움막 옆으로 공사알림판이 찌그러진 채 누워 있었다. 주변에 웃자란 호박잎이 무성했다.
문을 열자 진한 모기향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그릇과 수저, 행주까지 한 집 살림이 들어차 있다. “이게 직장이고 직업이야.” 움막을 만든 건 평생 농사만 지은 윤씨였다. 나무랑 텐트 기둥을 얼기설기 엮었다. 한겨울 막대기 하나 들고 싸우는 게 추워서 비닐움막을 만들었다. 여름이 오자 음식물이 빨리 쉬어서 전기선을 연결해 냉장고까지 들여놨다. 한전은 지난 7월 윤씨와 마을주민 이남우(70)·서정범(54)씨가 공사를 방해했다며 3명을 상대로 10억원씩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싸움 속에서 노인들은 ‘전사’로 거듭나고 있었다. ‘탈핵’ 전사였다. 집앞이나 마을 뒷산으로 지나는 최대 높이 147m의 송전탑을 막기 위해 신고리원전도 가보고, 다른 송전탑이 지나는 지역으로도 원정을 다녔다. 고압의 전기가 지나는 송전탑에서 유해한 전자파가 나오면 생명이 살 수 없다, 원전 수를 줄이는 에너지정책이 필요하다 등 많은 말을 쏟아냈다. “처음에는 몰랐지. 송전탑 안 들어오게 할라카다 보니 전기 원전 박사가 다 됐어. 보상 때문이 아니지.” 곽씨가 말했다. 그는 남편을 경운기 사고로 잃고 미혼의 아들 둘만 있다. 콩이나 들깨 농사를 짓는 곽씨는 자신의 명의로 된 땅이 없다.
그날 밤 11시 무렵, 며칠째 맑았던 밀양에도 무섭게 비가 내렸다. 무료함에 민화투를 치거나 돌멩이로 공기놀이를 하던 이들도 잠자리에 들었다. 후두두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와 투쟁 현수막을 펄럭이는 바람소리만이 산 속에 가득 찼다. 간간이 마을 주민 차량만 오갈 뿐 인부를 싣고 산으로 들어오는 공사차량은 없었다. 또 하루의 승리였다. 동시에 지루한 전쟁의 연장이었다.
지난 1월16일 철탑공사에 반대하던
이치우 할아버지의 분신
한전은 그 뒤 한 삽도 뜨지 못했다
대신 이장 등과 따로 접촉에 나섰다 주민 두려움은 포기, 분열, 무관심
5개면 중 1개면은 이미 합의
오랜 싸움에 지친 이들도 있다
“전자파가 나오면 생명이 못 살아
총칼만 안들었지 전쟁이야”
싸움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밀양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70대 농민 이치우(73)씨의 분신 이후였다. 지난 1월16일 이씨는 자신과 동생의 논에서 하는 공사에 분노해 자기 몸을 스스로 불살라 숨졌다. 밀양에서 교사를 하면서 교육운동 및 지역운동을 하다 분신 이후 참여하게 된 이계삼(39) ‘밀양 765㎸ 송전탑 반대 고 이치우 열사 분신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이 말했다. “부채의식이 있었어요. 내가 사는 곳에서 73살 할아버지가 분신자결을 했는데 풀뿌리 지역운동을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와드렸으면 분신까지는 안 하셨을 텐데 하는 후회요.”
분신한 이치우 할아버지의 힘으로 버티는 싸움이었다. 그의 분신 이후 한전은 산외면에서 한 삽도 뜨지 못했다. 지난 21일 오전 산외면 보라마을에서 만난 이상우(72)씨는 부인 김종남(69)씨, 형수 현종숙(73)씨와 함께 하우스에서 깻잎을 솎고 있었다. 이상우씨는 분신한 이치우씨의 동생이다. 형님이 모시던 96살 노모는 이제 동생이 모신다. 옷도 다 추스르지 못한 채 자전거를 타고 마을회관으로 나온 이씨가 말했다. “송전탑 없앨 수 있음 좀 없애주소.”
헬기 막기 위해 새벽 6시에 산꼭대기로
동생 이씨는 다리 너머의 자기 논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102번 철탑이 내 논 한가운데 서요.” 그 논은 형님이 분신한 논이기도 했다. 한전의 보상기준에 따르면 철탑 부지와 선하지(송전선이 지나는 땅)만 보상받을 수 있다. 철탑 부지는 매매가대로 보상한다 해도 선하지는 공중 공간 사용에 따른 재산감소분만 보상한다. 시가의 25~30% 정도다. 인접 토지에 대해 보상하라는 법적 근거는 없다. 법과 한전의 규정대로라면 이씨는 논 5950㎡(1800평) 중에 철탑 부지 496㎡(150평)와 선하지 1322㎡(400평) 정도만 보상받을 수 있다. 시가 4억5000만원짜리 땅에서 7200만원만 보상받았다. 이씨는 2010년 농협에서 이씨의 논에 대해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토지라 담보대출을 반려한다”고 통보받았다. “돈도 없는데 누가 나가노? 이제 다 늙었는데 (송전탑 있는)여기서 우예 살겠노?” 밭으로 돌아가는 길 이씨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분신 이후 7달, 가장 두려운 적은 ‘포기와 무관심’이었다. 밀양의 4개면 중 상대적으로 주민 조직력이 취약한 단장면이 ‘최전선’이다. 이 사무국장과 주민 2명이 지난 20일 낮 단장면 사연리 사연마을로 송전탑 반대 유인물을 들고 찾았다.
“765가 뭐꼬?”
80살 할머니가 부엌에서 전을 부치면서 대답했다. 이 집 아랫집에 사는 할머니였다. “젊은 사람이나 알지. 나는 내 이름도 몰라요.” 83살인 주인 할머니는 유인물을 거절했다. 반대쪽 주민이 활동 내용을 설명하자 할머니가 말했다. “거짓말하네. 반대집회 열심히 안한다카대. 회관에 놀러 가니 하는 말들이 그러타 안카나.” 답답한 반대쪽 주민이 목소리를 높여봐도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동장이 우예 (한전과 합의)하는지 할매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정구지나 좀 먹고 가라.”
부추전을 내온 할머니가 다시 물었다. “백지화면 몬되게 하는 건가?” 할머니는 자신의 땅에 송전탑이 선다면서 말했다. “그건 팔아먹지도 못해. 무자재물(쓸모없다는 의미)이지. 딱 그 자리만 주게 돼 있어.” 할머니들이 계속 말했다. “우리야 시키는 대로 하지 아무것도 모른다.”
사연마을의 다른 집에서 만난 60대 할머니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린 대형 시민이 아닌 소형 시민이란 말입니더. 한마디로 힘이 없다 아이가. 주민 절반이라도 백지화 쪽으로 가면 가능성 있어 보이는데 너무 적어요.” 할머니는 인근 마을 뒷산에 있는 96번 철탑 공사 현장을 지키기 위해 새벽에 산을 오르는 게 힘들었다며 말을 끝맺었다. “싸운 기간에 비해 진전이 너무 없었어요.”
한전은 주민 대표를 통해 송전탑 건설 찬성 의견을 이끌어낸다는 게 원칙이다. 21일 오후 만난 한전 부산경남개발처 유에이치브이(UHV)개발팀 윤상훈(54) 처장의 말이다. “주민 모두가 다 찬성할 수는 없습니다. 최대한 많은 수의 주민이 찬성하도록 면 대책위원장과 이장 등을 접촉중입니다.” 반대쪽 주민들은 일부 대책위원장과 이장 등이 한전의 회유에 넘어가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연마을과 달리 옆 마을인 동화마을은 송전탑 반대에 열심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7월26일부터 서너명씩 돌아가며 새벽 6시에 해발 500m인 마을 뒷산에 올랐다. 따로 야간조를 정해 밤에도 현장을 지켰다. 96번 철탑 부지인 정상에 자재를 싣고 오는 헬기를 막기 위해서다. 지난 20일 오후 3시에도 마을 어르신 10여명이 등산에 나섰다. <한국방송>과 <한겨레> 취재진이 촬영 나왔다며 주민들은 부산을 떨었다. 허리가 굽은 이헌희(80)씨도 그중 한명이었다. 이씨는 가장 뒤에 처졌다. 등산로에 붙은 ‘765 반대’ 노란 리본이 이씨를 안내했다.
“내 노력 아니가. 누룬밥 먹고 이런 것도 안 하면 안 되재.” 이씨가 비탈에 걸터앉은 채 부채질하며 말했다. 땀에 젖은 셔츠는 벗어 수건으로 꽁꽁 싸매 손에 쥐었다. 풀을 손으로 잡아끌면서 이씨가 계속 산을 올랐다. 솔향이 진동했고 물기 머금은 흙이 꽤 미끄러웠다. 땀냄새를 맡은 벌레들이 이씨 얼굴 주위에 가득했다. “이쪽 길 다섯번 올랐고, 저쪽(95번 철탑)길 세번 올랐어.”
생업 포기할 수 없는데…가을이 두렵다
그런 이씨를 마을 대책위원장 김정회(39)씨가 열 걸음 앞에서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밀양의 전사들 중에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 경기도가 고향이고 창원에서 직장을 다니던 김씨는 2002년에 밀양으로 귀농했다. 결혼 5년차였다. 김씨는 그동안 자신이 외지인이고 젊고 할 일도 많아서 가만히 있었는데, 기존 대책위원들이 한전과 협상하는 모습을 보고 직접 나섰다고 했다.
“여름은 비수기지만 가을 오면 일 많아지는데 생업을 포기할 수는 없고… 그게 가장 걱정입니다.” 8600㎡의 땅에서 당근, 감자, 브로콜리 등 유기농 농사를 짓고 남의 집에서 포클레인 정비 일을 하는 김씨는 오는 가을이 두렵다. 유치원생 막내를 포함해 애가 넷이었다. “포클레인 일을 해주다 왔는데 해 지기 전에는 다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씨가 서둘러 산을 내려갔다.
10여명의 주민이 올라온 산 정상에는 이미 기둥이 잘린 나무들이 가득했다. 공사를 하다 만 듯 장비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해가 질 무렵 산을 내려온 주민들은 수박 한통과 멸치국수를 나눠먹었다.
지역에서 외롭게 싸워오던 주민들은 최근 외부에서 보이는 관심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후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게 한몫했다. 21일 오후 4시50분 민주통합당 문재인 경선후보의 부인 김정숙씨가 밀양시 가곡동 한전 밀양지사 마당에 차려진 천막농성장을 방문했다. 부북면 이사라(81), 손희경(80) 할머니가 김씨 품에 안겨 울었다. 평밭마을의 한옥순(65)씨가 하소연했다. “제 꼬라지 좀 보이소. 움막 짓고 생활합니다. 한전이 강탈해서 전 재산을 가져가고 생명까지 위협합니다. 우짜든지 도와주십시오. 민주국가가 이런 국가가 어딨습니까?”
김씨는 어두운 표정으로 무릎을 꿇은 채 할머니들의 말을 들었다. 김씨는 “원전, 핵은 문 변호사도 신경쓰고 있다”며 주민들을 위로하고 농성장을 떠났다. 기자가 김씨에게 방문 이유를 묻자 “너무들 어려워하시니까”라고 짧게 대답했다.
“어얼씨구 저절씨구/ 한전 땜에 내가 내가 못살겠다/765 송전탑 백지화”
지난 22일 저녁 7시30분 밀양시 삼문동 밀양두레기금 너른마당에 할아버지 할머니 50여명이 모여 노래를 불렀다. 56번째 수요 촛불문화제였다. 문화제 말미에 이 사무국장이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다음주 화요일 밀양 송전탑 건설 관련 진상조사단 결성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고 하자,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얼굴에 살짝 기대감이 스쳤다.
한전은 올해 안에 “모든 장비와 인력을 동원해서” 공사를 마무리지을 계획이다. 국민 전체에 전력을 공급할 의무가 있고, 송전선로는 전기의 유통망·설비일 뿐이라는 게 한전의 설명이다. 반면 주민들은 이 싸움의 기한을 정해두지 않았다.
3박4일 머문 밀양의 밤은 도시의 밤과 달리 내내 어두웠다. 밀양에는 전기가 필요하지 않다는 듯이.
밀양/글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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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수요일 저녁, 밀양시 삼문동 너른마당 2층에서 열린 56번째 수요 촛불문화제가 끝나고 주민 50여명이 모여 단체사진을 찍었다. 크레파스로 스케치북 종이에 ‘꼭 이길 낍미데이!’라고 적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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