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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쥐에 문제없다고 인체 무해?…가습기메이트 ‘면죄부’

등록 2016-05-10 19:39수정 2016-05-11 00:49

살균제 원료 CMIT·MIT 미스터리

시험관·동물실험서 인과관계 드러난
원료 PHMG·PGH 계열만 수사
CMIT·MIT 사용한 가습기메이트는
쥐 실험선 폐섬유화 증상 없어 제외
가습기메이트 사용자도 폐질환 사망

“쥐는 괜찮은 페스트균, 사람엔 치명적”
독성학자들 ‘쥐실험’ 과대평가 우려
국내에서 유통되는 화학물질은 약 4만3000종에 이른다. 매년 300여종이 시장에 새로 진입한다. 2011년 기준으로 유해정보가 확인된 화학물질은 전체의 15%인 6450여종에 불과했다. 과학의 속도는 시장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터진 것도 그 지점이다. 사태 이후 진행된 독성실험에서도 옥시싹싹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가습기메이트에 대해선 모호한 결과가 나와 혼란이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화학연구소 부설 안전성평가연구소는 10일 가습기메이트에 들어간 화학물질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의 세포 독성실험 결과 면역세포를 파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 밝혀져야 할 게 많다.

2011년 8월 가습기 살균제 파동이 터진 직후 질병관리본부는 국내 주요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독성실험에 나선다. 일반적으로 독성실험은 시험관 실험(생체 밖·in vitro)과 동물실험(생체 내·in vivo)의 두 단계에서 다수의 실험을 거친다.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계열의 옥시싹싹은 모든 실험에서 인체 독성과 폐질환과의 인과관계가 밝혀졌지만,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MIT) 계열의 가습기메이트는 실험마다 결과가 엇갈렸다. 이 때문에 검찰은 가습기메이트를 판매한 애경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수사를 벌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독성학자들의 의견도 갈린다.

가습기메이트 ‘면죄부’ 받았나

질병관리본부가 주관한 첫번째 실험은 시험관 내 세포 독성실험이었다. 정상 폐세포(BEAS-2B)에 가습기 살균제를 노출시켰다. 결과는 모든 가습기 살균제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옥시싹싹(PHMG), 세퓨(PGH), 가습기메이트(CMIT/MIT) 등에서 독성이 나타났다.

다음은 ‘노출 재연 실험’이었다. 47.2㎡(14평)짜리 방 안에서 취침시간 8시간 동안 가습기를 틀었을 때, 대기에서 얼마나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발견되는지를 알아봤다. 결과는 판이하게 갈렸다. 옥시싹싹과 세퓨의 PHMG/PGH는 사용량이 많아질수록 공기 중 농도가 늘어났지만, 가습기메이트의 CMIT/MIT는 측정하기 힘들 정도로 낮은 양만 검출됐던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부 학자들은 가습기가 공기 중으로 뿜어내는 물 입자가 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수준으로 크기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가 폐 안까지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실제 평가를 해본 결과 30~50㎚(나노미터·10억분의 1m) 수준의 에어로졸이 발생했다. 일단은 살균제 입자가 에어로졸에 실려 폐 안에 도달한 것이 분명했다.

마지막 남은 것은 동물흡입 실험이었다. 냉장고처럼 생긴 밀폐된 흡입체임버 안에 실험 쥐를 넣고 가습기 살균제가 든 에어로졸을 투입했다. 결과는? 쥐는 천천히 몸이 야위었으며 걸음걸이가 이상해졌다. 1개월, 3개월째 부검을 해보니 폐와 기관지에서 염증과 섬유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가습기메이트를 쐰 쥐는 그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PHMG/PGH의 문제이지, CMIT/MIT에서는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동물실험의 역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이에 관해 <한겨레>는 독성평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전문가들에게 문의했다. 평가는 미묘하게 엇갈렸다. 모두 현재 관련 연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익명을 요청했다. 한 독성학자는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CMIT/MIT 계열 가습기 살균제가 폐질환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PHMG/PGH는 찰싹 달라붙는 성질이 있다. 에어로졸로 실려 들어와 폐 내피에 달라붙어서 폐섬유화를 일으킨 거다. 반면 CMIT/MIT는 그렇지 않다. 폐를 지나서 면역체계 안에서 공격을 받거나 분해됐을 가능성이 크다.”

다른 독성학자의 말을 들어보자.

“동물과 사람은 (화학물질에 대한) 민감도가 다르다. 쥐를 죽이는데 사람에겐 전혀 문제가 없는 물질도 있고, 그 반대도 있다. 동물실험은 인체 영향에 대한 참고사항일 뿐이지 그대로 적용해선 안 된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CMIT/MIT 계열의 살균제를 쓴 사람이 숨졌다는 게 확인되지 않았나?”

가습기메이트를 쓴 환자들도 폐질환에 걸렸다. 지난해 4월까지 취합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제2차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습기메이트를 단독으로 쓴 환자는 3명이 보고됐고, 그중 1명이 숨졌다고 당시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가 10일 말했다. 다른 가습기 살균제와 50% 이상 섞어 쓴 피해자도 3명이다.

그러나 ‘과거 어떤 제품을 썼느냐’는 질문에 기억을 더듬어야 하는 점, 여러 제품을 섞어 썼기 때문에 기억에 한계가 있는 점 등 역학조사에 수반되는 설문조사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반론도 있다. 현재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살균제 구매 영수증이나 사진 혹은 ‘일관되고 신뢰할 만한 진술’이 있어야 인정된다.

1950~60년대 임신부들의 ‘입덧 방지제’로 팔렸던 탈리도마이드는 바다표범처럼 팔다리가 짧은 수만명의 장애아(해표지증)를 탄생시켰다. 동물실험은 경고등을 울리지 않았다. 설치류에서 이상 증상이 없어서 시판됐다가 인체 위해성 논란이 제기되자 다른 종으로 확대된 동물실험에서 화이트뉴질랜드종의 토끼가 반응했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는 10일 “우리가 ‘쥐 실험’의 가치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 페스트균과 한타바이러스는 쥐에게 아무 증상을 나타내지 않지만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흑사병과 유행성출혈열을 일으킨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처럼 대량 노출사고는 역학조사를 통해서만 인체 독성을 밝혀낼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가습기 살균제 실험 결과가 엇갈린 이유는 여러가지로 추정된다. 인간과 쥐, 그리고 개체간 화학물질에 대한 민감도 차이 등 동물실험의 근본적 한계 외에도 흡입체임버 안에서 에어로졸 흡입량이 적었거나 균질한 농도가 아닌 양이 뿌려졌을 가능성 등 기술적 문제도 제시되고 있다.

10일 안전성평가연구소에서 내놓은 세포독성 실험 결과는 CMIT/MIT가 어떻게 폐손상을 일으키는지 기초적인 메커니즘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세포 단위의 실험 결과라는 점에서 실제 흡입 환경에서 동물실험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여전히 존재한다. 실험 대상인 쥐를 죽이지 않으면서 저농도로 흡입시키며 폐섬유화를 나타낼 때까지 장기간 지켜보는 기술이 관건이다. 반면 광범위한 역학조사로도 충분히 위해성 여부를 밝혀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CMIT/MIT 계열 살균제만 단독으로 사용했다가 숨진 피해자도 있다. 임상, 역학, 독성학 전문가들이 모여 어떻게 규명할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이근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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