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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참혹히 도륙당한 사자 세실, 내가 마지막 목격자입니다

등록 2016-06-26 22:49수정 2016-06-30 14:52

세실의 전설

세실 목에 GPS 달고 마지막 사진
짐바브웨 사자 참수사거 이후
아프리카사자 ‘파수꾼’으로

10살 때 철창속 사자와 만남
황게의 야생으로 들어간 내 삶과
세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철길이 지나가는 황게국립공원의 경계 지역 인근에서 사자 사냥꾼들이 판을 쳤다. 공원 경계가 중요하지 않은 사자는 이곳에서 종종 위험에 빠졌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철길이 지나가는 황게국립공원의 경계 지역 인근에서 사자 사냥꾼들이 판을 쳤다. 공원 경계가 중요하지 않은 사자는 이곳에서 종종 위험에 빠졌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2015년 7월의 아침, 세계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을 신문과 텔레비전에서 들으며 깨어났다. 처음에는 속삭임이었지만 지붕에서 외치는 함성으로 커졌다. 그 이름은 사자 ‘세실’. 마이클 잭슨이나 데이비드 베컴처럼 유명한 동물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나는 짐바브웨의 황게국립공원에서 일하는 그냥 평범한 사자 연구원이었을 뿐이다. 세실로 인해 나의 인생도 거대한 파도에 휩쓸렸다. 가장 마지막으로 세실의 사진을 찍고 세실의 목에 위성위치추적장치(GPS)를 걸어둔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다. 미국인 트로피 사냥꾼(박제를 만들거나 과시하기 위해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사람)의 총탄에 스러진 세실의 죽음은 전세계 시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렇게 극적인 동물 이야기는 없었다. 그렇게 많은 언론이 황게국립공원과 나를 찾아온 적도 없었다. 국립공원구역과 사냥허가구역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철길 위에 서서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도대체 이 인터뷰를 몇번째 하고 있는지 몰랐다. 세실에 대한 나의 마지막 기억은 세계로 퍼져나갔고, 지금 우리는 아프리카사자를 보전하기 위한 거대한 여론의 파도를 목도하고 있다.

이 글은 나의 인생과 사자 세실에 대한 사랑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세실의 죽음이 어떻게 시작됐고 무엇을 남겼는지에 대한 글이다.

오줌 맞고 고양이가 따라오고

내가 사자를 처음 본 건 10살쯤이었다. 우리는 전형적인 ‘도시 가족’이었지만, 야생에 나가 캠핑이나 낚시하는 시간을 사랑했다. 어느 주말, 부모님은 우리 형제를 차에 싣고 수도 하라레(Harare)에서 한시간 정도 떨어진 ‘민간 야생공원’(private wildlife park·아프리카에서는 광활한 사유지에 동물을 반야생 상태로 관리하는 공원이 많다)에 갔다. 동물을 볼 수 있는 공원이었다. 발 하나가 잘린 표범, 목 주위가 얼룩덜룩한 수달과 가족을 잃은 야생동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큰 나무 아래 있는 정원에서 잼과 크림이 어우러진 스콘 빵, 고급 차를 먹으며 우아한 티파티로 투어를 준비하고 있었다. 낡은 도요타 트럭 한 대가 먼지를 내뿜으며 다가왔고, 우리는 트럭에 올라타고 공원을 탐사했다. 코끼리와 버펄로와 눈을 마주쳤고 바위 위에서 햇볕을 쬐는 비단뱀과 도로 주변에 깔린 알갱이 사료를 먹는 검은 영양도 지켜보았다.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큰 무화과나무 아래서 멋진 점심을 먹은 우리는 오래된 농장을 방문했다. 학교 갈 생각에 집에 가기 싫었던 나는 마침 철창 우리 안에 갇힌 사자를 발견했다.

지금은 그 사자의 이름도, 어떻게 그곳에 오게 됐는지 우여곡절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철창에 몸을 비벼대고 있던 사자가 너무 순해 보였던 나머지 귀 뒤로 다가가 몸을 만져보고 싶었다. 철창에 붙어 몸을 구부려 가까이 다가간 나는 사자와의 조우에 황홀해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사자가 꼬리를 곧추세우더니 뒤돌아보는 것이었다!

“비켜나요!”

사파리 가이드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얼어붙은 듯 몸은 반응하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있던 나는 피할 수 없었다. 사자는 열살짜리 꼬마아이의 몸을 자기의 영역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뜨겁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내 얼굴 코와 귀 밑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자동차 뒷좌석에 던져놓았고, 자동차는 사자 오줌 냄새를 풀풀 풍기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는 그날 줄곧 나를 따라다니며 관심을 보였다. 당시엔 몰랐지만, 일생의 과업으로 연결된 사자와의 강력한 인연의 끈이 그때 시작된 것 같다.

세월이 흘러 나는 열일곱살이 되었다. 학교 선생님은 어느날 어머니를 불러 “브렌트는 직업을 일찍 갖는 게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내가 공부에 적성이 없으니 학교를 떠나 하루라도 빨리 사회생활을 시작하라는 말을 선생님은 그렇게 정중하게 했다. 나는 이른바 ‘야생 보호센터’라고 불리는 사파리 파크에서 일을 얻었다. 다친 채 발견된 야생동물을 수용한 보호센터였지만 실상은 작은 체험형 동물원(petting zoo)이었다. 나의 일은 사자 새끼들과 몇시간씩 놀아주는 것이었다. 얼마나 신났을지 생각해보라. 일자리를 얻었다고 어머니에게 말하자, 어머니는 카키색 제복을 다림질해 입히고는 자동차로 나를 새 직장에 떨궈 주었다.

지난해 사자 ‘세실’의 죽음으로 야생동물 사냥이 논란이 될 때까지 내가 이렇게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사자 보전운동에 뛰어들게 될지 몰랐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지난해 사자 ‘세실’의 죽음으로 야생동물 사냥이 논란이 될 때까지 내가 이렇게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사자 보전운동에 뛰어들게 될지 몰랐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나는 사자를 동물원에 가둬 사육하는 것은 사자 보전과는 거의 관련이 없고 오락·여흥에 더 가깝다는 걸 알기 때문에 찬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에는 나무 그늘 밑에서 새끼 사자 두 마리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게 너무 즐거웠다. 사자의 사회성을 직접 체험한 것도, 사자가 인간과 친숙해질 수 있는 유일한 대형 고양잇과의 동물이라는 걸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나는 사자와 한 ‘가족’이 되었다. 사자의 가족은 여러 암컷과 새끼들 그리고 소수의 수컷으로 구성된 ‘프라이드’를 이룬다. 새끼들의 아버지(들)는 다른 무리의 수컷이나 경쟁자들로부터 프라이드를 보호한다. 특히 대형 초식동물을 사냥한 뒤 새끼들이 먹을 때 빼앗기지 않도록 주변을 살핀다. 그러나 내가 돌본 새끼들은 완전한 야생동물이 아니었다. 2년을 그곳에서 일했지만 야생동물은 배우지 못했다. 내 커리어를 넓히고 싶었다. 황게국립공원에는 우연찮게도 ‘사자’라는 이름의 삼바 로지가 있었다. 나는 정말 야생에서 사자를 보고 싶었다.

사자 앞인데, 자동차는 쿨럭쿨럭

황게국립공원에서 내가 얻은 직업은 야생에서 사자를 찾아내 관광객들에게 보여주는 ‘사파리 가이드’였다. 사자에서 무슨 냄새가 나고 사자의 거친 혓바닥이 내 몸을 핥을 때 드는 이상한 느낌에 대해서 한참을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사실 그때까지 나는 한번도 ‘야생’ 사자를 본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을 이끌고 사파리 투어에 나갔다. 코끼리와 누, 얼룩말과 많은 새들을 보여주고, 해 질 녘 다시 공원을 나가려던 참이었다. 저 멀리 수풀 속에서 조그만 새끼들을 몰고 암사자 한 마리가 초지로 나오고 있었다.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나는 사자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랜드로버의 시동을 껐다. 암사자는 성큼성큼 다가와 우리가 탄 랜드로버를 지나치더니 도로 위에 올라서 저벅저벅 걸어갔다. 다시 시동을 걸려고 열쇠를 돌렸지만 랜드로버는 ‘끼이끼이’ 소음만 내며 쿨럭거릴 뿐이었다. 아차! 캠프를 떠나기 전 시동이 안 걸리는 경우가 많다며 절대 시동을 끄지 말라고 주의를 주던 매니저가 생각났다. 가장 중요한 순간 가장 중요한 원칙이 머리에서 떠나버린 것이다.

불쾌한 소음이 신경에 거슬렸는지 암사자는 고개를 돌려 노란 등 너머로 우리를 쳐다보더니, 다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기회는 이때다! 나는 관광객들에게 나가 차를 밀어달라고 했다. 다시 시동을 켜고 암사자를 따라가보자고. 그러나 사자 앞에서 밖으로 나가라는 말이 관광객들에게 정상적으로 들릴 리 없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사자는 야생 사파리에서 가장 값진 존재였고, 매니저의 당부를 잊은 내 실수 때문에 사자를 놓칠 순 없었다. 관광객들에게 손이 닳도록 사과를 해, 우리는 결국 차의 시동을 켰고, 해 질 녘 사이로 멀어지는 암사자 가족의 뒤를 천천히 밟았다.

사실 황게국립공원은 사파리를 하기에 좋은 곳이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트로피 사냥꾼들이 통제되지 않은 채 공원 경계구역에서 사자를 마구 잡아댔기 때문이다. 벨기에 정도의 면적인 황게국립공원에는 단 270마리의 사자만 남아 있었고, 연간 사냥 쿼터는 너무 많아서 지속적인 생존 가능성이 의심받는 상황이었다. 일년에 약 30마리의 사자가 국립공원 경계구역 주변에서 사냥됐다. 불안한 사자의 운명은 사파리 산업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사파리 산업은 그나마 야생에서 얻은 소득으로 야생동물 서식지를 관리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였다. 당시만 해도 나는 아는 게 없었지만, 나중에는 결국 상황을 바로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황게국립공원 사자 연구원.
브렌트 스타펠캄프 황게국립공원 사자 연구원.
황게에서 나는 즐겁게 일했다. 사자에 대한 사랑은 점점 커져 나를 사로잡았다. 트로피 사냥꾼을 둘러싼 온갖 소란 때문에 사자를 보고 공부할 기회는 적었다. 사자를 만나는 건 일주일에 한번 정도였다. 그리고 나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혈기왕성한 젊은이가 왕왕 그러듯이, 애인을 따라 영국으로 갔다. 그때만 해도 황게에서 몇달 떨어져 있겠거니 생각했었다. 7년 뒤 나는 야생관리 학위를 받고 새로 사귄 여자친구와 함께 황게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브렌트 스타펠캄프(39)는 영국에서 야생관리학을 공부한 뒤 옥스퍼드대 ‘황게 사자 연구 프로젝트’의 현장 연구원으로 일했다. 황게국립공원에서 사자를 모니터링하며 사자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자 ‘세실’과 아프리카사자에 대한 이야기는 격주로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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