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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덫에 걸린 사자야, 조금만 기다려…산타클로스가 갈게

등록 2016-07-25 10:11수정 2016-07-25 10:24

[미래] 세실의 전설
2008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우리는 꽤 흥분해 있었다. 9월에 아들 올리버가 태어난 뒤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였다. 돈을 아껴 오리고기를 사고 작은 아카시아나무를 꾸며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다. 나뭇가지에는 줄을 달아 소원이 담긴 편지를 걸었다. 얼마 전에 덫에 걸려 목 주위가 철사로 감긴 사자를 보았다. 우리는 그의 안녕을 비는 글을 써서 걸었다.

기회주의 사자가 걸리는 덫

사냥꾼들은 철제 올가미(덫)를 야생동물이 잘 다니는 나무에 걸어둔다. 야생동물은 아무 의심도 없이 걸어가다가 갑자기 목이 조이는 것을 느끼고 놀라서 황급히 뛰어다니지만 철제 올가미는 더욱 목을 조이게 된다. 그렇게 동물은 목이 졸려 숨지게 되는 것이다. 동물에게는 아주 폭력적인 죽음이다. 사람들에게는 야생동물 고기를 얻는 아주 비효율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사자는 때때로 기회주의적인 청소동물이 된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맹금류를 보면 그 새를 따라다니며 (새가 발견한) ‘공짜 식사'를 기다린다. 범죄자들이 몇 개의 덫을 쳐놓은 곳에는 사체가 득시글대기 마련이다. 사자는 그 사체에 끌려들어왔다가 그만 올가미에 목에 걸리고 만다. 올가미는 야생사자에게 가장 큰 위협 중의 하나다.

사자 연구원들이 설치한 ‘지피에스(GPS) 목걸이’를 목에 건 사자도 예외는 아니다. 어떤 사자는 절박하게 올가미에서 빠져나가려다 보니, 목이 움푹 파이고 털이 다 뽑혀버려 사자 갈기 주변에 지피에스 목걸이만 남아 앙상하게 발견된다. 한번은 올가미에 걸린 한 사자를 봤는데, 지피에스 목걸이가 달려 있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잇따랐다. 그날 저녁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위성신호를 보면서 사자를 찾아다녔다. 주변으로 다가가 숲에서 기다렸다. 해가 질 즈음 사자가 나타났다. 사자는 긴 철제 올가미를 모래바닥에 끌면서 먼지를 풍기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석달 된 아기를 태우고 사자의 땅에 들어가야 했다. 위험천만한 일도 있었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석달 된 아기를 태우고 사자의 땅에 들어가야 했다. 위험천만한 일도 있었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맹금류 따라 사체 찾던 사자
철제 올가미에 목에 걸리면
철사 질질 끌고다니며 죽는다

사자 구하러 간 초원은
크리스마스 앞두고 홍수가…
석달 된 아이와 아내와 나
사자의 먹잇감이 될 수도!

올가미에 걸린 사자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트리에 메시지를 써서 걸었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올가미에 걸린 사자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트리에 메시지를 써서 걸었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우리는 최대한 빨리 국립공원 캠프로 돌아가서 우리를 동반해줄 레인저(요원)를 찾았다. 사자를 올가미에서 빼내려면, 마취제가 달린 다트를 사자에게 쏘아야 했다. 그러려면 우리를 보호해줄 무장요원이 필요했다. 국립공원 캠프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공휴일이어서 어디론가 가버렸고 있어도 취한 사람뿐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우리끼리라도 작업을 시작해야 했다. 내가 장비와 마취제를 챙기는 동안 아내는 다른 트럭에 올라 아기를 보조석에 태우고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각각 트럭을 몰고 올가미에 걸린 사자가 있는 현장으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사자와 가까워지면서 지피에스가 보내는 신호가 희미하게 감지됐다. 차장에는 후드득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문제의 사자 그리고 그 형제로 보이는 사자, 이렇게 두 마리가 도로 밖 저만치 떨어져 서 있었다. 도로 밖으로 나가야 했다. 12월의 황게국립공원은 우기의 절정이다. 여기저기 홍수가 나 있어서 오프로드를 운전하기엔 공포스러웠다. 그래도 차 안에는 무선통신기가 있었다. 로리에게는 내가 부를 때까지 차를 도로 위에 두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해두었다. 사자를 쫓아 약 200m쯤 들어갔을까. 우당탕. 미끄러져 진흙탕에 빠졌다. 사륜구동이었는데도 말이다!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작은 빛의 세계에 사자 두 마리는 잠깐 나타났다. 두 마리는 어슬렁거리며 내 트럭을 지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후진 기어를 넣고 액셀을 밟았지만 사륜구동차의 바퀴는 헛돌기만 했다. 전진 기어를 놓고 똑같이 해봐도 꿈쩍도 안 했다. 아무 데도 못 갈 것만 같았다. 무선통신기에선 탁탁 튀기는 소리 사이로 로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 괜찮아요?”

사자가 어느 정도 떨어진 것을 확인한 나는 셔츠를 벗어던지고 헤드랜턴을 머리에 쓴 뒤 차 밖으로 나갔다. 사실 아프리카에서 차가 구덩이에 빠지는 일은 흔했다. 그때에는 잭(타이어 교환 등을 위해 쓰는 소형 기중기)으로 자동차를 들어 올린 뒤 나무토막이나 스페어타이어를 구덩이에 넣고 차를 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쉬지 않고 내리는 비 때문에 자꾸 잭이 진흙 속으로 잠겼기 때문이다. 삽을 가져오지 않았던 터라 나는 맨손으로 진흙 구덩이를 팔 수밖에 없었다. 작업 도중 쉬려고 잠깐 차 안으로 들어가면 라디오에서는 약간 짜증이 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데… 점점 추워져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나는 아내에게 우리 차가 진흙 구덩이에 갇혔으니, 내가 지나온 길(오프로드)을 따라와서 우리 차를 견인해달라고 말했다. 이내 ‘부르릉’ 하고 아내의 차가 출발하는 소리가 라디오를 통해 들렸다. 하지만 2초도 안 되어 아내의 외침이 전해졌다.

“아~ 나도 갇혀버렸어!”

아내의 차 또한 진창에 빠졌고, 이제는 우리 둘 다 곤란한 상황에 빠져버린 것이다.

“내가 지금 거기로 갈게”

시간은 이미 밤 11시가 지나 있었다. 석달 된 자식 올리버도 있었다. 세 시간쯤 지났을 때, 아내가 라디오를 통해 소리쳤다.

“크리스마스 때까지 올리버와 여기 갇혀 있어야 한다면, 아이 데리고 떠나버릴 거야!”

마치 뼈와 살이 진흙에 파묻힌 것처럼 나는 지쳐 있었다. 신발 두 짝도 진흙탕과 씨름하는 사이 잃어버렸고, 진흙과 비와 눈물이 뒤범벅된 액체가 내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사자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로리에게 ‘내가 지금 거기로 가겠다’고 말한 것이 자살행위와 다름없다는 것을 당시에 알기나 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비가 내리는 어둠 속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희미하게 깜박이는 내 헤드랜턴 불빛을 몇 시간 전 사자를 보았던 곳에서 보는 것 말고는 없었다.

사자 밀렵꾼들이 설치한 덫에 걸린 사자. 철제 올가미가 목에 걸리면, 그것을 질질 땅에 끌고 다니다가 죽는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사자 밀렵꾼들이 설치한 덫에 걸린 사자. 철제 올가미가 목에 걸리면, 그것을 질질 땅에 끌고 다니다가 죽는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천신만고 끝에 아내의 차에 도착했을 때, 차가 물웅덩이에 살짝 갇힌 게 아니라 차의 전면부가 닿을 정도로 호수 쪽으로 처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물웅덩이가 아니라 호수였다! 차 안에 들어갈 정신도 없이 나는 차가운 호수에 달려들어갔다. 덜덜덜 떨면서 스페어타이어를 뒤로 던져넣고 잭으로 트럭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잭은 진흙 속으로 계속 가라앉고 스페어타이어는 계속 물 위로 뜨고… 정말로 나는 울부짖으면서 일했고, 그 말도 안 되는 작업을 새벽 1시가 되어서야 포기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트럭 안으로 들어갔다. 아기처럼 웅크리고 잠을 청했다. 해가 뜰 때까지 우리는 한마디도 없었다. 잠에서 깨어 밖으로 구조를 요청하러 나간 건 크리스마스 아침이었다. 무선통신기와 호신용 머셰티(칼의 일종)를 들고 공원 캠프가 있는 곳까지 10㎞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자가 주변에 있는지 지피에스 장비를 통해 확인하면서 1㎞를 걸었을 즈음, 첫번째 관광객이 나타났다. 여성 한 명이 운전하는 작은 세단이었는데, 그녀는 나를 중심으로 크게 한 바퀴 원을 돌더니 그냥 가버렸다! 큰 커브를 돌며 나타난 두번째 차량은 시내에서 온 가족이 타고 있었는데, 나를 칠 것처럼 쌩하고 지나쳤다. 그러다 급히 멈추더니 창문을 내리고 물었다.

“도움이 필요하세요?”

크리스마스 아침에 국립공원에서 사자 대신 한 남자를 볼 거라고 그들이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것도 짧은 반바지에 신발도 셔츠도 없이 진흙을 둘러싸고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을 말이다. 아내와 석달 된 아기가 호수에 있다고 하는 말을 그들은 믿지 못하는 듯 보였다. 어쨌든 결말은 괜찮았다. 우리는 사자를 발견했고 이튿날 오리고기를 먹었고 그녀는 나를 떠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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