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의 소동 끝에 사자 ‘수피’에게 마취제를 놓는 데 성공했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4. 사자와의 왈츠
햇볕이 아름답게 비치는 오후였다.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초원에서 나는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몇 달 뒤 런던마라톤에 출전하기 위해 나는 연습을 하던 중이었다. 런던마라톤에 뛰면서 사자 보호 프로젝트를 위해 기금을 마련할 생각이었다. 야생 사자로 인한 소, 염소 등 가축 피해를 막기 위해 국립공원 주변 마을의 몇몇 주민들과 한 팀을 만들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외국에 알려 지원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규칙적으로 초원을 달렸고 그 이야기를 블로그에 써서 적잖은 독자를 거느렸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언덕에서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헉헉대는 소리가 내 귓가에는 음악처럼 들리는데, 임팔라(뿔이 달린 소과의 초식동물) 떼는 경고음으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임팔라 떼는 내 앞에서 도로를 우르르 건너갔을 때 나는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다. 셔츠 없는 맨몸통에 꽉 끼는 반바지를 입은 남자의 모습이 누구에게나 위협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덕 아래에 도착해서 달리기를 멈추고 숨을 골랐다. 손으로 무릎을 짚고 가슴에서 몰아쳐오는 숨을 내뱉는데, 아뿔싸! 4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젊은 수컷 사자 한 마리가 호박색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잖아도 꽉 끼는 작은 반바지가 더욱 조였다.
임팔라 떼가 우르르 지나간 게 이놈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나 또한 도망쳐 올라갈 만한 키 큰 나무가 있는지 찾고 있었다. 그러나 뭐가 있을 리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뒤돌아 사자를 보면서 말을 거는 것뿐이었다.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그러나 사자가 혹시 공격 자세를 취하지 않을까 민감히 주시하면서 말을 걸었다. 여느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사자의 행동을 읽기는 쉽다.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사자는 두 귀를 뒤로 젖히고 ‘쉬’ 하는 소리를 낸다. 흥분할 때는 긴 꼬리를 좌우로 내리친다. 공격할 생각이 있을 땐 꼬리를 위아래로 찰싹 친다. 다행스럽게도 이 사자는 아무 신호도 보내지 않고 있었다.
“어, 괜찮아. 사자야.”
천천히 뒷걸음을 치면서 말했다. 가만히 서 있던 사자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어, 괜찮아. 사자야.”(목소리가 좀 높아짐)
나는 다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사자는 한 걸음 성큼 다가섰다. 우리 둘은 이렇게 떨어져 ‘왈츠’를 추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뒷걸음질을 멈추고 내 몸을 조금 크게 보이려고 애썼다. 사자가 가만히 앉았다. 왼쪽에 작지만 우거진 수풀이 나타났다. 잘하면 몸을 감출 수도 있어 보였다. 게처럼 옆으로 걸어가 수풀에 도착! 몸을 숨긴 나는 사자가 딴청을 피우는 기회를 엿봐 집으로 죽어라고 달렸다.
런던마라톤 참가를 위해 연습을 하고 있는 필자.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사자 보호기금 마련을 위해 사람들에게 알렸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독립할 나이가 된 사자
가족과 함께 다시 그 사자를 만난 곳으로 자동차를 몰고 갔다. 사자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고, 기록용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사자의 앞날을 생각하자니, 잠깐 마음이 아렸다. 이렇게 젊은 수컷 사자가 혼자 다닌다는 것은 그가 이제 막 어미와 프라이드(사자의 무리)로부터 독립해 나와 자신의 영역을 찾고 있다는 얘기였다. 지금 막 독립을 할 나이였고, 이런 사자들은 대개 인간 거주지로 들어와 소떼를 습격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프라이드에서 갓 나온 사자가 홀로 생존하는 건 만만치 않다. 초원에는 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자기 영역을 굳건히 지키는 어른 수컷 사자들이 있다. 이들과 충돌을 피하다 보면 다른 사자들이 없는 땅에 정착한다. 그러나 그런 곳은 대개 사람들과 가축이 사는 곳이다. 이런 상황은 으레 인간에게나 사자에게나 불행한 결말로 끝나고, 사실 아프리카에서 사자 개체수가 가파르게 감소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몇 주 뒤, 사자 한 마리가 염소와 소들을 공격해 피해를 주고 다닌다는 주변 마을 주민들의 신고가 접수됐다. 소떼를 공격했다고? 이건 대개 경험이 미숙한 젊은 사자가 벌이는 짓이었다. 지난번에 만난 사자가 떠올랐다. 우리는 그 사자를 잡아 목에 위성위치추적장치(GPS)를 달기로 했다. 그의 이동 경로를 지피에스로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다면 마을 주민들의 피해를 예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을사람들은 “사자 무서울 거 없다”곤 했지만, 사실 우리가 도와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기회는 결국 찾아왔다. 아들 학교 가는 길에서 사자가 갓 지나간 흔적을 발견했다. 동네 정육점에서 썩은 고기 몇 통을 산 뒤, 장비를 챙겨 우리 팀과 함께 사자를 잡으러 출발했다. 한밤중이 되자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썩은 고기 더미를 자동차에 끌고 다니면서 고기 냄새를 흩뿌렸다. 나무에 덫을 설치하고 시끄러운 스피커도 설치했다. 동물이 고통스러워하는 소리를 들으면 기회주의자인 사자는 기꺼이 달려온다. 나는 염소가 고통스럽게 우는 소리를 틀어놓았다. 악몽처럼 울부짖는 소리가 축축한 밤공기 사이로 떨어지는 이슬비를 타고 전해졌다. 동료들에게는 조용히 앉아만 있으면 사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의 낙천주의는 언제나 그랬듯 틀리고 말았다. 지옥 같은 소리와 썩은 살 냄새를 접한 지 한 시간이 지났지만 사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차를 타고 사자를 찾아보기로 했다. 첫 번째 커브를 돌자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서 사자가 나타났다! 그는 우리 자동차 왼편에서 덤불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나는 조수석에 기대어 서둘러 총을 겨눴다. 첫 번째 다트(화살)가 휙 날아가 사자에게 퍽 하고 꽂혔고 사자는 덤불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스톱워치를 꺼내 시간을 쟀다. 마취제가 온몸에 퍼져 효과를 나타내는 데는 20분이 걸린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사자를 맞혔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이틀 같은 20분이 흐르고 우리는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동료인 로이는 보호용으로 권총을 챙겼다. 나는 머리를 땅에 박고 사자의 흔적을 더듬었다. 가는 비가 내렸기 때문에 흔적이 선명해 사자의 경로를 따라가긴 어렵지 않았다. 사자 발자국이 덤불 더미 밑을 향하자 우리는 무릎을 땅에 대고 사자처럼 기었다. 불빛이라고는 이마에 단 헤드랜턴밖에 없었다. 그때 우리 앞에서 ‘다다닥’ 하고 무언가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쉬~”
사자가 우리를 공격하려는 건지, 아님 도망가려는 건지, 상황 판단이 필요하다는 듯 로이가 조용히 하라고 속삭였다. 발굽 소리가 굉음처럼 커지자 우리는 거의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똑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어둠 속에서 쫓고 있던 사자는 하나도 마취되지 않았어! 이 발굽 소리는 사자에게서 도망치는 당나귀 소리야!”
‘곤경’이라는 뜻의 사자 ‘수피’.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이 사자를 뭐라고 부를까요?”
일단 동료들과 헤어진 나는 트럭을 가지고 돌아왔다. 헤드라이트가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자 미친 듯이 팔을 흔들며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 춤을 추는 세 명의 동료가 나타났다. 사자를 발견했다는 이야기였다. 바로 앞에서 당나귀가 창자를 드러낸 채 죽어 있었다. 사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차가운 밤공기 사이로 퍼졌다. 트럭이 가까이 다가오자 사자는 멀찍이 떨어졌다. 우리는 당나귀 뒷다리를 트럭 뒤에 묶어놓고 달리기 시작했다. 사자는 저녁식사를 따라 빠른 속도로 쫓아왔고, 나는 트럭 짐칸에서 정확히 사자를 겨눠 맞혔다. 20분 뒤, 우리는 사자를 트럭 짐칸 위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나는 위성위치추적장치를 사자 목에 단 뒤, 마취제 한 방을 더 주사하고 사자를 국립공원 경계부까지 데려갔다. 사자를 떨어뜨려 놓으면 사자는 다시 같은 위치로 되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지피에스로 사자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됐고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 사자 관리인인 템보에게 물었다.
“이 사자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그가 답했다.
“수피(Shupi)요.”
배가 터질 듯이 우리는 킥킥댔다. 왜냐하면 ‘수피’는 짐바브웨 말로 ‘곤경’(trouble)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곤경에 빠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