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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사자들의 파티, 코끼리를 베고 누운 ‘백수의 왕’

등록 2016-08-29 14:15수정 2017-12-14 18:55

[세실의 전설]
나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와일드크루(WildCRU·야생보전연구팀)의 연구원으로 10년 가까이 일했다. 수천시간 동안이나 사자를 보는 건 특권이 아니었다. 그냥 내 일이었다!

이번에는 내 직업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나는 엄청 운이 좋은 편이다.

사자 가족을 보통 ‘프라이드’라고 부른다. 프라이드란 수컷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다수의 암컷과 새끼들로 구성된 하나의 무리다. 우리는 황게국립공원의 프라이드마다 사자 한두 마리에게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목걸이를 걸어두었다. 이 장치는 브이에이치에프(VHF) 신호를 발신하는데, 우리는 집에서 이 신호를 잡아내는 원격측정 장치를 이용해 사자들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 어떤 때는 1만4600㎢에 이르는 황게국립공원에서 사자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몇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는 성공하고야 만다. 어떤 사자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무얼 하는지, 몸 상태는 어떤지, 몇 마리가 있는지 우리는 다 기록을 해낸다.

짐바브웨 사자 ‘세실’의 프라이드가 코끼리를 사냥하고 파티를 벌였다. 충분히 먹었는지 새끼들은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우두머리 세실은 죽은 코끼리를 베고 낮잠을 잤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짐바브웨 사자 ‘세실’의 프라이드가 코끼리를 사냥하고 파티를 벌였다. 충분히 먹었는지 새끼들은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우두머리 세실은 죽은 코끼리를 베고 낮잠을 잤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구경하는 독수리, 이것은 어떤 신호

사자 얼굴 양쪽에 붙어 있는 갈기에는 저마다 고유한 패턴이 있다. 19세기 동아프리카에서 사자를 연구하던 과학자는 이것을 사진으로 찍으며 개체를 식별할 수 있다고 봤다. 마치 사람의 지문처럼 말이다. 내가 하는 일 중 하나도 바로 사자 개체마다 사진을 찍어 누구인지 구별하고 기록하는 것이었다. 멋진 일 아닌가?

2012년 10월의 어느 날이 생각난다. 황게국립공원에는 야생 사파리업체가 들어와 있는 지역이 있다. 사자로 가득 찬 아주 매력적인 곳이다. 낮 기온이 섭씨 40도까지 이르는 건기의 절정, 그 지역의 링크와샤에 있던 내게 사파리 차량이 다가왔다.

“세실 프라이드가 코끼리 한 마리를 잡았어요. 저기 몇 킬로미터 밖에서요.”

세실과 그의 가족들의 웅장한 자태가 머릿속에 스치자 심장이 쿵쾅쿵쾅 빨라졌다. 몇 가지 장비를 챙겨 도요타 랜드크루저에 뛰어올랐다. 내 옆에는 사자 보전 프로젝트의 기부자이자 오랫동안 사자 사진 작업을 함께 해온 친구가 있었다. 사람이 탄 차량이 자기 옆으로 다가와도 세실은 가장 느긋하게 대하는 사자 중 하나였다. 마치 세실이 우리에게 포즈를 취해주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는 ‘스콧의 늪’이라 불리는 작은 물웅덩이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커다란 코끼리 사체가 우리를 맞아줬지만 사자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무에는 독수리가 득시글거렸다. 그러나 그 어느 새도 코끼리 사체로는 다가가지 않았다. 이것은 분명히 주위에 사자가 있다는 신호였다. 나는 차문을 열고 나가 트럭 짐칸에 올라갔다. 브이에이치에프 안테나를 세운 뒤 수신기의 주파수를 세실 것으로 맞추었다. 삐삐삐. 날카로운 비프음이 울렸고 나는 방향을 더듬으며 안테나를 움직였다.

‘삐삐삐’ 신호 울리는 덤불 속에서
사자들은 코끼리 먹으러 나왔다
하나, 둘, 셋… 일렬로 22마리나!

링크와샤 프라이드의 지도자 ‘세실’은
며칠은 갈 ‘코끼리 파티’의 주인
하찮은 것 상관 않는 의연한 전사

세실은 황게국립공원 링크와샤에서 프라이드(사자의 무리)를 구성했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세실은 황게국립공원 링크와샤에서 프라이드(사자의 무리)를 구성했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사자들은 가까이 있는 게 분명했다. 늪지대 남쪽의 빽빽한 덤불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차를 조금 더 움직여 가까이 갔다. 그러나 빽빽한 수풀은 사자를 숨기고 있었고, 사자의 실룩거리는 동그란 귀와 휙휙 쳐대는 검은 꼬리만 잠깐씩 보여줄 따름이었다. 코끼리에게 다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사자가 다시 나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여기서 이 말을 꼭 덧붙이고 싶다. 아프리카의 태양 아래 쓰러진 죽은 코끼리에서는 역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냄새를 줄이기 위해 코끼리를 지나쳐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 차를 댔다.

태양은 서쪽 지평선으로 아름답게 지고 있었다. 온도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경이로운 생명이 하나씩 늪의 그늘에서 빠져나오는 걸 우리는 목격했다. 죽은 코끼리를 향하는 사자들의 긴 줄이었다. 처음에는 다 큰 암사자가 그다음에는 또 한 마리가 따랐다. 사자의 대열은 22마리까지 이어졌다. 카메라의 초점을 어디에 맞출지 몰라 당황할 지경이었다. 늪의 그늘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등장한 건 바로 세실이었다. 그는 자신의 무리에 대한 지배력을 이렇게 공포했으며, 그의 위세의 깃발은 자신의 사자들 위에 나부꼈다. 사실 세실은 다른 영토에서 밀려나 이곳 공원 남쪽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다. 그러나 정착하기도 전에 이미 꽤 큰 프라이드를 이룬 것이었다.

14마리의 새끼와 좀 큰 사자들은 세실의 자손이었다. 사이사이에 7~8마리의 암사자들도 끼어 나왔다. 라이벌 사자 연합과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서 패퇴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실은 다른 수사자와 함께 북부 링크와샤를 지배해왔다. 그러나 세실은 지금 혼자다. 그의 형제가 그 싸움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세실과 코끼리 사체 그리고 그의 프라이드를 하나의 프레임에 담기 위해 나는 트럭의 방향을 돌렸다. 직업이라는 것도 까먹은 채 나는 그냥 자동적으로 사자 한 마리 한 마리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사진을 찍어놓고 나중에 사무실에 돌아가 느긋하게 사자 수염의 패턴을 살펴보면 됐다. 어린 암컷 새끼가 거칠게 장난을 거는 오빠 사자에게서 빠져나와 죽은 코끼리 사체 위로 올라갔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그 새끼가 갑자기 사라졌다. 동생이 갑자기 사라진 것을 본 오빠 사자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내 카메라는 마침 오빠 사자의 다리 사이로 코끼리를 조준하고 있었고, 코끼리 몸 사이로 여동생이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이렇게 사자들은 서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생전 사자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처음 봐도 사자들은 서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장난기 어린 행동은 프라이드 내 사자들의 관계를 더 집중시켜주며, 다른 프라이드와의 영역 싸움 등 필요한 때에 효과를 발휘한다.

짐바브웨 사자 세실(왼쪽)과 그의 프라이드가 낮잠을 자고 있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짐바브웨 사자 세실(왼쪽)과 그의 프라이드가 낮잠을 자고 있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코끼리 파티’ 주인공의 낮잠

갑자기 암사자 한 마리가 일어서더니 세실한테로 다가갔다. 꼬리로 세실의 얼굴을 두드리다가 자신의 몸으로 세실을 비벼댔다. 앉아 있던 세실은 머리를 낮추어 이 암사자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이건 분명 세실을 집적거리는 것이었다. ‘백수의 왕’은 일어나 암사자의 뒤를 따라갔고, 그녀가 다시 꼬리를 들어 올리자, 왕은 코를 대고 킁킁거리더니 고개를 곧추세웠다. 우리가 ‘플레멘 행동’(냄새를 맡고 묘한 표정을 짓는 동물의 성적 반응)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세실은 암사자를 성적으로 시험한 것이었고, 몇몇 강한 자극에 반응한 뒤 그녀가 번식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세실은 다시 코끼리로 다가갔다. 죽은 코끼리를 중심으로 사냥감을 뜯어먹는 사자들로 둥근 원이 형성되어 있었다. 세실은 가장 넓게 드러난 코끼리의 개복부로 올라가 고개를 파묻었다.

어린 수사자가 다가왔지만 세실의 짧은 으르렁거림만으로도 굴복하는 자세를 취했다. 연방 터지는 카메라 셔터 소리만 정적을 찢고 있었고, 세실은 다시 고개를 파묻고 코끼리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우리가 좀 더 가까이 가자 조그만 새끼 한 마리가 코끼리 사체에 올라가 나풀거리는 귀를 가지고 놀기 사작했다. 처음엔 참는 듯하던 아빠는 다시 언짢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새끼의 장난은 끝이 나고 말았다.

세실은 무거운 머리를 들어 코끼리 사체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큰 눈을 감고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마치 이 큰 저녁 식사의 주인이 자기 것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처럼 그는 느긋하게 잠을 잤다.

우리는 사자들끼리 밤을 보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떠날 참에는 이미 수백장의 사진이 기록되어 있었다. 즐거운 파티는 끝났다. 그리고 우리에겐 많은 일(사자 수염을 통해 개체를 식별하는 것)이 새로 생겼다. 수사자는 한번에 60㎏의 고기를 먹어치운다. 해가 지는 지평선을 향해 우리는 떠났다. 며칠 뒤에도 이곳은 여전히 사자들의 파티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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