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농장에는 도사 믹스견이 많다. 철창 우리 밖을 내다보고 있다. 윤운식 기자
“청계천에 개 10마리만 풀어놓아도 난리가 날 걸. ”
“그럼. 난리 나지. ”
6일 오후 서울 도심 일대에서 열린 ‘100만 육견인의 생존권 사수 생존권 총궐기대회’ 행진 중 참가자 누군가 농을 했다. 갑자기 내린 폭우를 몸으로 맞으며 서울 종로1가 모전교 위를 걷던 이들은 그의 말에 동조했다.
“동보(동물보호단체)와 손잡은 언론과 정부는 각성하라! (13개 동물보호단체 이름을 하나씩 열거한 뒤) 박살 내자!”
사람들은 분노가 많았다. 이날 집회를 진행하며 구호를 선창한 주영봉 한국육견단체협의회 기획팀장은 3년 전 전라남도 담양에서 개 700~800마리를 키울 축사를 새로 마련하려다 이웃의 반대에 막혔다. 민원이 오고 가는 4개월 사이에 축사 허가가 날아갔다. 주씨는 모든 일이 외국생활을 오래 한 동물보호활동가인 이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동물보호단체가 없었다면 주민 혼자 그렇게 오래 싸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개척교회 목사이기도 한 주 팀장은 “먹고 살려고 시작한 개 사육인데 남은 게 없다”라고 했다.
6일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는 개농장, 개고기유통업체 등이 중심이 돼 개곡기 합법화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6일 낮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집회를 시작하기 위해 모인 육견협회 회원들이 지역별 깃발을 들고 있다.
12일 초복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시장에서 건강원을 운영하는 손우식(50)씨도 동물보호단체때문에 피해를 봤다고 생각한다. 동물유관단체대표자협의회 회원들이 올해 2~6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감시하고 시위를 했고, 도축장, 가게들이 차례차례 문을 닫으면서 손님도 떠났다는 것이다. 손씨 가게 근처에서 6년째 고기를 팔아온 ㄱ씨는 “영업 방해해서 싸움도 났다. 동물보호단체가 시위하고 반대하는 여론이 많아졌다. (손님이 줄어) 우리도 피해자다”라고 억울해했다.
9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동물보호단체가 여는 ‘STOP IT! 그만 잡수시개’ 개식용 반대 집회에서는 개식용 반대 피켓을 든 시민 300여명이 빗속 도심 행진을 했다.
“살려주세요!”
“철창에 갇힌 개들의 자유를 기원하며 앞에 있는 줄을 당겨주세요.”
개회식에서 사람들이 줄을 잡아당기자 펑하는 소리와 함께 철창이 무너지고 갇힌 개들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기뻐 뛰어다니는 개들은, 얼굴에 개 분장을 하고 갈색 바지를 입은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다.
동물보호단체의 개식용반대 활동은 2000년대 이후 여론의 지지를 받으며 빠르게 퍼지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를 10년째 후원 중인 한순님(65)씨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전하려고 집회에 나왔다. 한씨는 “모란시장에 갔을 때 철창에 가둬둔 개들, 끌고가서 죽이는 장면도 본 적이 있다. 개식용은 없어져야 한다. 단 농장주가 다른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개식용 반대 목소리는 캠페인, 광고에서 최근에는 직접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물권단체 ‘케어’는 12일 서울 중앙시장 1개 업소와 모란시장 4개 업소의 업주와 종업원 15명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동물보호단체와 수의사단체 30여곳으로 이뤄진 동물유관단체대표자협의회(동단협)는 올여름 서울 경동시장에 캠핑카를 두고 숙식을 해결하며 24시간 개식용과 관련한 불법 행위를 감시, 순찰했다. 조소영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는 “정리가 많이 됐다고들 하지만 아직도 경동시장 안에서는 도축과 유통이 다 이뤄진다. 구청에서 단속하고 있지만 숨어서 하기 때문에 단속 안 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9일 낮 서울 중구 시청광장에서 열린 개식용 반대 집회 ‘STOP IT! 그만 잡수시개’에 참가한 시민들이 도심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9일 오후 서울시청광장에서 동물보호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이 개식용 금지를 요구하며 행진을 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개식용 논쟁에서 개를 먹어도 된다는 사람 중 상당수는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을 고수했다. 개식용은 한국의 고유한 전통이니 이해해야 한다는 논리가 대표적이다. 또 외국 때문에 우리 전통을 중단하는 식의 외국 문화를 무분별하게 따르는 문화사대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자는 주장도 힘을 받았다.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88올림픽을 앞두고 개고기식당을 거리에서 골목으로 강제로 숨긴 정권의 땜질식 처방이나,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개고기 먹는 한국을 ‘야만’이라고 비난한 사실을 ‘외세에 의한 민족의 수난’처럼 기억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생명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개식용 문화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개고기를 먹자고 하는 기사는 거의 없고, 개고기를 먹지 말자는 기사는 쏟아져 나온다. 2000년 한국식품영양학회지에 실린 안용근 충청대 교수(식품영양학부)의 ‘한국인의 개고기 식용에 대한 인식’ 을 보면 충청대 학생들과 지인 등 1502명 중 86.3%인 1171명이 개식용에 찬성했고, 13.7%인 186명만 반대했다고 조사됐다. 복수응답이 가능했던 개고기 식용 찬성 이유로는 ‘고유의 음식 문화인데 왜 남이 시비 거느냐’(753명), ‘맛있어서’(561명), ‘건강에 좋아서’(470명), ‘서양문화의 우월주의 때문’(429명) 순서였다.
15년이 지난 2015년 갤럽의 조사결과는 차이가 크게 난다. 전국 19살 이상 성인 1005명 중 37%만 개식용을 좋게 본다고 답했다. 좋지 않게 본다 44%, 응답거절 또는 모름이 19%였다. 대상자와 질문 항목이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개고기에 대한 인식은 많이 바뀌었다. 개고기를 찾는 사람이 줄어 개고깃값은 한 근에 2500~3000원대로, 2~3년 전보다 값이 절반 이상 떨어졌다.
결국 이런 변화로 문화상대주의를 고수하며 개고기를 죄의식 없이 먹어왔던 이들과 문화 충돌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박항주 정의당 이정미 의원실 비서관은 “예전에는 가정폭력을 가정의 일이라고 가정에만 맡기고 쉬쉬해왔다.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 여성인권 향상 등으로 사회 분위기가 달라지자 이제는 사회문제라고 여기고 외부 개입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개고기 문제도 지금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묵인해다”라며 “이제라도 이 갈등을 풀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육견협회와 동물보호단체 모두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육견협회는 농가의 현대화, 기업화를 위해서라도 개식용을 위한 사육을 합법으로 인정하고, 산업으로서의 개식용이 다른 축산업처럼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물보호단체는 개식용, 개사육을 불법으로 규제할 것을 요구한다.
개농장의 개들이 밖을 보고 있다. 윤운식 기자
둘다 쉬운 길은 못 된다. 함태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합법화하는 법이 만들어지려면 사회구성원의 공감을 토대로 해야하는데 눈에 띄게 개고기 먹는 사람들 줄고 있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동시에 “동물보호단체의 활동이 실효성 있으려면 개를 도살하는 과정을 동물보호법 위반이라 본 판례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아직 없다”고 분석했다.
끊어질 듯한 팽팽함 속에 정부만 묵묵부답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3일 개식용과 관련해 “여론을 따르겠다”고만 할 뿐 입장이 따로 없었다. 매년 똑같은 상황이니 청와대나 국무총리실에서 이야기하면 움직인다는 입장이었다. 위생관리를 해야 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도 12일 “식품이 아니기 때문에 시중에 유통되는 개고기에 대한 어떠한 검사도 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1978년 축산물가공처리법(현 축산물위생관리법)이 개정되면서 개와 개고기를 가축과 축산물에서 제외한 후, 개고기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음식이 됐다. 풀기 어렵다는 이유로 40년 가까이 묻어둔 개고기 문제를 이제는 풀어야 하지 않을까.
글·사진/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임세연 교육연수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