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용산소 발생기를 착용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서영철씨가 18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가습기살균제 전체 피해가정 대상 첫 조사결과 발표에서 발언을 마친 뒤 숨이 차자 호흡기를 사용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가습기살균제를 써보지 않은 사람은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하기가 어렵고 쓴 사람의 마음을 백분의 일도 헤아리지 못해요. 정말로 많은 질병에 시달리고 있거든요.”(피해자 ㄱ씨)
“난 잠들 때 그래요. 제발 아침에 눈 좀 안 뜨게 해달라고…. 얼마나 비참한 줄 알아요?”(피해자 ㄴ씨)
가습기살균제 성인 피해자 가운데 절반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고 10명 중 7명은 우울 또는 의욕 저하를 호소하는 등 신체적·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와 한국역학회는 18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가습기살균제 전체 피해가정 대상 첫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6월13일부터 12월20일까지 가습기살균제 전체 피해가구인 4953가구 가운데 1152가구(피해자 성인 637명, 아동·청소년 236명)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조사결과, 성인 피해자의 절반(49.4%)이 가습기살균제 노출 이후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고, 11%는 실제로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반 인구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거나(15.2%) 시도한 경우(3.2%)에 견줘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이후 정신질환이나 증상을 호소하는 비율도 높았다. 성인 피해자 가운데 ‘우울 또는 의욕 저하’를 호소한 경우는 72%, ‘불안·긴장’은 72%, ‘불면’은 66%, ‘분노’는 64.5% 등을 나타냈다. 아동·청소년 피해자의 67.2%는 신체건강 영역에서, 55.1%는 정신건강 영역에서 아동·청소년 준거집단 대비 하위 15퍼센타일(100명 중 하위 15번째 이하에 해당)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신체적인 피해는 단순히 폐 질환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뒤 폐 질환을 호소한 성인은 83%이었지만, 비(코)질환도 71%, 피부질환은 56.6%, 안과 질환은 47.1%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현재 정부는 태아 피해, 천식, 폐 질환 등에 대해서만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인정하고 있다. 임종한 인하대 의대 교수는 “피해양상을 보면 폐에 국한되지 않고 안과 질환, 비점막 질환, 심혈관 질환 등 다른 장기들의 질환으로 이어진다. 피해는 단순히 과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생애 말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국역학회가 피해가구 가운데 198가구에 대해 사회경제적 비용을 추산한 결과, 약 759억원(가구당 약 3억 8천만원)의 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의료비용 등이 18억원, 일하지 못해 발생하는 손실비용 등이 465억 3700만원, 조기 사망에 따른 손실비용이 275억 3600만원 수준이었다.
한국역학회는 피해자 범위규정, 인과관계 입증책임, 배·보상의 규모와 절차를 현실적으로 바꾸는 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가습기살균제 특별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가 있는 상태다. 이번 실태조사를 맡은 김동현 한림대 의대 교수는 “가습기살균제 노출 이후 발병한 질환이나 악화한 질환을 피해로 인정하고 입증책임을 기업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추가해 법사위에서 법안을 개정해야 한다”며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단일 장기 피해로 인식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가습기살균제증후군’으로 개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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