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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형형한 눈빛의 툰베리는 ‘탄광 속 카나리아’ 같았습니다

등록 2020-10-23 19:35수정 2022-01-03 13:38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 16일 <한겨레> 취재진과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 16일 <한겨레> 취재진과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기후위기 문제가 주목받고 있기는 하지만 벌써 이 문제를 식상해하는 분위기를 느껴요. 그레타가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다면 또 한번 사람들이 기후위기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요.”

지난 9일 금요일, 기후위기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이날 저녁 6시께(한국시각) 발표되는 노벨평화상에 쏠려 있었습니다. 이날 청소년기후행동의 김보림(27) 비청소년활동가는 17살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이 상을 수상하길 바란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밤에 ‘새 기사를 쓰느라 야근을 해도 좋으니 그레타가 이 상을 수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이 수상했고 저는 야근은 하지 않아도 됐습니다만, 김 활동가가 말했듯 그가 이 상을 받았다면 기후위기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인식이 또다시 단단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안녕하세요. 사회정책부 기후변화팀에서 일하고 있는 최우리입니다. 저는 노벨평화상 발표 일주일 뒤인 지난 16일 금요일 오후 6시(한국시각) 그레타 툰베리와 화상으로 인터뷰(▶관련기사: 툰베리 “기후위기 행동으로 보여달라” 문 대통령에 호소)를 했습니다. 외교부를 출입하는 ‘영잘알’(영어를 잘 알다) 김지은 기자와 함께였습니다.

그레타 툰베리의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는 1500만명 정도입니다. <한겨레>가 세계적인 셀레브리티인 그에게 인터뷰 요청을 한 것은 지난 4월입니다. 기후변화팀으로 인사가 난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그에게 영어 메일을 보낸 것이었습니다. 기후위기 담론을 이끌고 있는 그에게 기후위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묻고 싶었습니다. 그의 메일 주소를 알기 위해 수소문한 결과, 전세계 기후변화 분야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의 네트워크인 ‘기후미디어허브’를 통해 그의 미디어팀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아, 더듬거리며 영어 문장을 완성할 때의 간절했던 그 마음이 다시 떠오르네요….)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일정이 많아서 지금 인터뷰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라도 좋으니 꼭 인터뷰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6개월 뒤에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전세계 언론이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한겨레>와 인터뷰했던 이유는 <한겨레>가 국내 언론 중 유일하게 기후변화팀이 있고, 환경·에너지 뉴스를 활발하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해 들었습니다. 코로나19가 전세계를 덮치면서 그를 직접 만나 대화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웠지만, 온실가스 배출을 하지 않기 위해 비행기를 타지 않고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는 그이기에 오히려 온라인 인터뷰가 편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 16일 &lt;한겨레&gt; 취재진과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 16일 <한겨레> 취재진과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화면에 그가 등장하자 그가 항상 들고 다니는 빨간 물통을 누군가 전해줬습니다. 그가 음료를 마신 뒤 인터뷰가 시작됐습니다. 평소 그의 영상을 보면서 말을 참 잘한다고 느꼈는데, 그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아직 많은 나라들이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식과 정책의 전환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분명한 말투로 변화를 촉구했습니다. 환경과 경제·개발이 상충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일방적인 주장을 하지 않고 신중하게 답변했습니다. 그의 진지한 태도와 형형한 눈빛을 보고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으며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0대라는 표현은 그의 생물학적 나이를 나타낼 뿐이었습니다. ‘학교 가니 좋나요’라는 개인적 질문을 던졌을 때 17살 학생다운 해사한 표정도 살짝 보인 것 같습니다.

그의 얼굴이 떠 있던 작은 화면이 사라진 뒤 여러 감정이 들었습니다. 기사에도 적었지만, 지난해보다 야윈 그의 얼굴을 보면서 ‘탄광 속 카나리아’가 계속 생각났습니다. (그는 신경성 섭식장애가 있습니다.) 탄광의 일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가면 앞서 경고음을 울리는 이 작은 새처럼, 17살의 환경운동가는 ‘지구인들 중 가장 먼저 우주의 변화를 느끼고 경고음을 울리고 있구나’ 하고요. 다만, 그는 고통에 잘 대응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기후위기 문제로 우울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우울하지 않기 위해서는 행동하는 것이 좋다는 극복법을 소개했습니다.

기사를 쓴 날 그는 홍콩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 중국에 구금된 홍콩인 12명을 석방하라는 글을 자신의 에스엔에스에 올렸습니다. 여성인권 향상과 진보적 판결로 많은 지지를 받았던 미국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대법관의 추모글도 올린 적 있습니다. 그의 세계가 점점 넓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명인 그가 어떤 활동을 이어갈지, 그로 인해 세상은 또 어떻게 바뀔지 기대합니다.
<b>최우리 | 사회정책부 기자 </b>
최우리 | 사회정책부 기자

최우리 사회정책부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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