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령 원자력안전위원(원자력공학 박사). 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 내부에서 작성된 북한 내에 원전 건설을 검토한 문건을 근거로 보수야당이 “이적 행위”, “대북 원전 게이트”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데 대해 야당 추천으로 원자력안전위원이 된 원자력 전문가가 “한심하다”며 쓴 소리를 쏟아냈다.
이병령 원안위원(원자력공학 박사)은 4일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이 미국 동의 없이 북한에 원전을 짓는 것은 미국과 단교를 하고 한다고 해도 안 될 일”이라며 “‘이적행위’라는 얘기는 말이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틀린 얘기”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올해 74세로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온 원자력계의 원로다. 원자력연구원에서 한국형 경수로 개발책임자와 원전사업본부장을 역임하고 2018년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추천으로 원안위원이 됐다.
이 위원은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면 돈이 8조~10조원이 들고 공사 기간도 7~8년이 걸린다”며 “미국 주도로 모든 나라가 북한에 김정은 사치품이 들어가는 것도 막고 있는 마당에, 한국 정부가 미국의 적극적 동의 없이 북한에 원전을 세우는 것은 100% 불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슈퍼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 산업부의 과장 국장이 지금 공개된 내용보다 훨씬 더 나가서 ‘원전 당장 지어줘야 된다’고 결론을 낸 문서를 만들어서 위에 보고를 했든 안 했든 그게 무슨 대수겠느냐”며 “언론에 가십 정도로 다뤄질 일을 놓고 무슨 큰 문제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은 너무 생각이 짧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특히 김종인 국민의힘 위원장을 겨냥해 쓴소리를 했다. 산업부 공무원이 감사원의 월성 원전 감사를 앞두고 삭제한 문서 파일에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이 포함됐다는 검찰의 공소장이 지난달 29일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김 위원장은 “정부가 북한에 극비로 원전을 지어주려는 이적행위를 했다”고 주장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 문건은 이후 산업부가 전문을 공개하면서, 북한의 비핵화에 대비해 미·일 등과 공동 의사 결정을 통해 추진하는 방안 등을 검토한 자료로 확인됐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3일 비대위 회의에서도 “핵무기 재료가 될 수 있는 원전을 북한에 지어주는 계획이 사실로 드러났다”며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고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이 위원은 “그 분은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을 도입한 공로도 있고 해서 내가 존경해 온 분인데, ‘이적 행위’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듣고 깜짝 놀랐다. 제1야당의 대표인데 저렇게 경솔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나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 위원은 “북한 원전 건설은 비핵화를 전제로 한다는 얘기는 굳이 할 필요도 없이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설령 그 문서가 산업부 국장 과장이 아니라 청와대에서 누가 만들어 보라고 해서 만들었다고 해도 문제될 게 무엇이냐”며 “그런 일을 두고 제1야당과 언론이 난리를 치는 것은 기가 막히고 한심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열린 대북 원전 의혹 긴급 대책회의에 참석해 “정부가 진상을 밝히지 않으면 국회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 위원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질 때 한국이 북한에 원전을 건설해주지 않으면 중국이 지어주고 북한을 손아귀에 넣게 될 것이라는 논리다. 그는 “그렇게 되는 것은 민족의 비극”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회사가 호황에 불황을 대비하고 불황에 호황을 대비한 준비를 해놓는 것처럼 공무원은 남북 관계가 완전히 얼어 붙었을 때도 풀릴 때를 준비하고 공부하고 그러는 것이 바람직하다. 2018년 당시에 누가 그런 준비를 시켰다고 한다면 그 공무원은 사전 준비를 잘 하는 훌륭한 공무원”이라고 말했다.
산업부가 이 내부 검토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나와 있는 날짜(검찰 공소장 기준)는 2018년 5월14일로, 한반도가 전례 없는 평화 분위기에 빠져 있던 때였다. 3월5일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가 전격 발표되고, 4월27일 이뤄진 회담에서는 연내 종전선언을 천명한 판문점 선언까지 나왔다. 5월11일에는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개최 발표까지 나와 남북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안팎의 기대가 한껏 높아진 상황이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